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10번 출구에 붙었던 추모 포스트잇 15개

2017-06-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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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쓴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있다 / 뉴스

지난달 17일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쓴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있다 / 뉴스1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 20대 여성이 아무런 이유없이 희생돼 큰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지난 4월 범인 김 씨에게는 징역 30년형이 확정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흐른 지난달 17일, 수많은 추도객들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다시 찾았다. 추모제 행진 경로와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1100여 장이 넘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위키트리는 당시 붙었던 포스트잇 전체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읽게 될 기회를 얻었다. 1000여 개가 넘는 포스트잇에는 실로 다양한 슬픔, 분노, 아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본인이 겪었던 공포와 두려움을 실토한 포스트잇이 있었다. 희생당한 A씨를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앞으로 두렵다고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있었다. 물론 남성을 향한 혐오 메시지도 일부 있었다. 희생자 어머니가 직접 쓴 애절한 글도 있었다.

이 포스트잇 중 15개를 골라 싣는다.

1.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당신이 죽은 후로도 많은 것이 그대로이지만 나와 내 주변이 바뀌어 갑니다. 당신은 나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이하 범페미네트워크 제공

2. "작년 5월 17일 이후로 너무 두렵습니다. 어두운 곳에 혼자 있으면 혹시 내가 죽지는 않을까 너무 무섭습니다. 이런 공포가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그쪽을 잊고 살아가고 싶은데 그러기가 힘들군요... 계속 당신이 당한 폭력의 잔해가 일상에서 나를 겨눠옵니다"

4. "나에게 20대의 첫 봄은 두려움이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 "몇 시에 귀가해야 안전할지,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안전할지, 어떤 말과 행동, 표정을 지어야 안전할지 여성들이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6. "저에겐 당연한 현실이 당신과 당신들에겐 죽어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완전히 늦지는 않았다고 믿고 변해가겠습니다"

7. "두려움 대신에 용기를 보태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8. "편안히 쉬시고 계시길 바라요. 여성들이 편안히 차별받지 않는 세상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꼭 물려주고 싶은 워킹맘입니다"

9. "당신의 죽음을 기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10. "아버지는 밤늦게 들어오지 말라 했고 남자친구는 택시 번호를 찍어주었고 남사친들은 날 데려다주었습니다. 당신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항상 내가 잠재적 피해자였습니다. 그랬습니다"

11. "1년 전 그날 저도 바로 길 건너편 술집에서 남자친구랑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1년 후 이 자리에 다시 왔습니다. 그때와 지금 여성 혐오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언젠가는 여성 혐오 차별이 없는 세상이 올거라고 믿고 나 하나부터라도 공부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기억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행동하겠습니다"

12. "저는 초등학생 페미니스트예요 작년에는 너무 어리고 생각도 없어서 위로를 하고 추모를 하는 것이 뭔지 몰라서 추모를 해드리지 못했어요 오늘이나마 추모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13. "좀 더 안전하고 차별없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여자친구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14. "당신이 다시 여자로 태어나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15. "내일 여기는 작년 여기와 달라지겠지요"

지난해 5월 19일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 뉴스1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