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은 물론 질의 삶이 달라졌다" 생리컵에 쏟아지는 기대

2017-06-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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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현 씨 제공 대학원생 곽나현(28) 씨는 지난해 12월 생리컵을 구매하고 신세계를 경험

정주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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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곽나현(28) 씨는 지난해 12월 생리컵을 구매하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생리대와 결별하니 생리 기간마다 겪는 불편함도 줄었다. 곽 씨는 "나를 괴롭힌 건 생리가 아니라 생리대더라"며 "생리컵을 알게 된 후 '삶의 질'은 물론이고 '질의 삶'까지 달라졌다"고 했다.

생리컵이 오는 7~8월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된다. 생리컵 사용자 사이에서 "질의 삶이 달라졌다"는 후기가 나오면서 생리컵을 기다리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진 여성 용품이다. 오목한 컵 모양이며 생리 기간 중 질 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기구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안전성 검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지만 생리컵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지난 4월 10~60세 미만 가임 여성 102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41.4%가 생리컵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10~20대 중 생리컵을 안다고 답한 비율은 61%에 달한다.

해외 직구나 공동구매로 생리컵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생리컵이 '신세계'라고 말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생리컵 사용자 199명 중 82.4%가 "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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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컵을 사용해 본 여성들이 가장 만족하는 것은 생리 기간 때마다 느끼던 불편함이 줄었다는 점이다. 대학생 최지원(22) 씨는 생리 기간에도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잘 때 생리혈이 흐를까 한여름에도 속바지를 껴입고 잤다는 최 씨는 생리컵을 쓴 뒤로 생리 기간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생리혈이 샐 위험이 없어서다. 최지원 씨는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는 양이 많아 4~5시간에 한 번 생리대를 갈아줘야 했는데 생리컵은 8~10시간을 착용하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 모(26) 씨도 생리컵을 사용한 후로 일상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 많이 해결됐다고 말했다. 윤 씨는 "생리 기간에는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고 활동적인 운동도 하기 어려웠다. 누워서든 앉아서든 생리혈이 샜을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는데 생리컵은 몸 안에서 생리혈을 담으니까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윤 씨는 생리를 할 때 '굴 낳는 느낌'이 사라졌다고 했다. '굴 낳는 느낌'이란 생리혈이 덩어리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여성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곽나현 씨도 "일반 생리대를 쓸 때와 달리 생리혈이 몸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굴 낳는 느낌'이 사라졌다"며 "지인들에게 이것만 말해줘도 다들 '생리컵'을 사겠다고 한다"고 했다.

생리컵을 사용하니 특유의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여성도 많았다. 대학생 정주현(22) 씨는 "생리대에 생리혈이 묻은 지 오래되면 냄새가 났었는데 생리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씨는 "생리컵에 모인 생리혈 냄새를 맡아봤는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더라"라고 덧붙였다. 윤 씨도 "생리혈이 마르면서 나는 고약한 냄새와 안녕할 수 있다"고 했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축축하고 찝찝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박모(16) 양은 "일반 생리대를 하고 앉아있으면 축축하고 찝찝했는데 생리컵을 사용하니 생리를 할 때도 '뽀송뽀송'하다"고 말했다.

생리컵 사용자들은 생리 기간에 냄새가 나지 않고 찝찝하지도 않으니 생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일반 생리대를 사용할 때는 생리혈을 더럽다고만 느꼈는데 더이상 그렇지 않다는 게 이들 반응이다. 곽나현 씨는 "일반 생리대를 하고 있으면 생리혈이 몸에 묻고 냄새도 나는데 그런 불편함이 사라지니 내 생리혈이 더럽지 않다고 느껴진다"고 밝혔다.

'월경의 정치학'을 쓴 박이은실 작가는 "월경컵을 쓰면 월경에 대해 예전처럼 '더럽다', '혐오스럽다', '옷 입는 데에 불편하다', '티 날까봐 불편하다'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이은실 작가는 "월경혈을 일회용 생리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월경혈에 대한 선입견이 순식간에 벗겨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생리통이 완화되고 양이 줄었다는 후기도 많다. 신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의사회로 '생리컵을 사용한 뒤로 생리통이 완화되고 양이 줄었는데 의학적 근거가 있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조병구 에비뉴여성의원 원장(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은 "생리컵이 생리통을 완화시켜준다거나 생리혈의 양을 줄여준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며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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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생리컵은 제조사도 다양하다. 릴리컵, 레나컵, 플뢰르컵, 페미사이클 로우 등이 있으며 브랜드나 사이즈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개당 1만~4만원 사이고 해외 직구로 구매하면 배송료를 더 내야 한다.

생리컵 사용자들은 비용적 측면에서 생리컵이 덜 부담스럽다고 한다. 일회용인 생리대와 달리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생리컵은 소금물·식초 등을 활용하거나 끓는 물에 소독해주면 1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리컵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생리컵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꼽은 단점은 '질에 생리컵을 삽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박 양은 "처음에는 생리컵을 넣고 빼는 게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생인 이모(22) 씨 역시 "생리컵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은 넣고 빼는 과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담감뿐 아니라 실제로 '이물감'도 느껴진다. 정주현 씨는 "생리컵을 뺄 때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최지원 씨는 "생리컵을 접는 방법, 삽입하는 방법, 빼는 방법이 아주 간단하지는 않다"면서 "생리 전에 연습 삼아 삽입해 볼 것"을 권했다.

자궁 경부 길이(포궁길이)에 따라 사이즈를 선택해야 하는데 잘못 재서 구매하면 생리혈이 새거나 불편할 수 있다. 제조사에 따라 재질도 달라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골든컵'을 찾을 때까지는 돈만 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박 양은 "생리컵은 몇만 원씩 하는데 잘못 사면 '골든컵'을 살 때까지 몇 번을 구매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조병구 원장은 "출산 여부 등에 따라 여성마다 질 안쪽 넓이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생리컵을 해도 생리혈이 샐 수 있다"며 "본인이 편안하다면 상관없지만 생리컵이 모든 여성에게 맞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생리혈이 응고될 가능성도 있다", "생리혈이 역류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조병구 원장은 "생리혈은 절대 응고되지 않는다. 생리혈이 밖으로 배출되는 과정에서 응고되지 않는 인자들이 몸에서 분비된다"고 했다. 또, "다만 생리혈이 뭉치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 하고 있어서 막힐 정도로 생리컵을 오래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조 원장은 "의학적으로 생리혈이 역류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지앤모어
이지앤모어

편리하고 저렴하며 단점이 별로 없지만 한국에서 생리컵 제조에 뛰어든 업체가 없었다. 식약처 허가를 받으려면 자체적으로 임상 실험을 해야 하는데 억대 비용이 든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억대 비용을 들여 허가를 받아도 생리컵이 반영구 제품인 만큼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저소득층 여성들에 월경 용품을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가 총대를 멨다. 안지혜 대표는 '블랭크 컵 프로젝트'를 주관해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약 1800명이 모였고 '이지앤모어'는 현재 생리컵 제작 단계에 들어갔다. 안지혜 대표는 "현재는 내년 6월 정도에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이지앤모어가 임상 실험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게되면 동일한 원재료로 생리컵을 제작하는 다른 업체들은 별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리컵을 제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안지혜 대표는 "처음 제조를 하는 업체에서만 임상 실험을 하면 되는데 임상 실험 비용만 약 1억이 든다"며 "다들 눈치 게임만 하며 어느 업체에서 먼저 하기를 기다렸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지앤모어가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제조업에 뛰어드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식약처는 오는 7~8월이면 생리컵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달 한 수입업체가 생리컵 수입허가 사전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생리컵 수입・제조 소식이 전해지면서 생리컵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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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컵 사용자들은 생리컵이 자신을 조금 더 자주적으로 바꿨다고 말한다. 윤 씨는 "무조건 싫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월경에 선택지가 생겼다"고 했다. 윤 씨는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고르는 것처럼 오늘을 탐폰을 쓸지 생리컵을 쓸지, 생리컵을 쓴다면 어떤 생리컵을 고를지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리 기간을 그냥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덧붙였다.

최지원 씨는 '몸'과 더 친해졌다. 최 씨는 "생리컵을 몸에 직접 삽입하면서 내 질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최 씨는 "생리컵을 쓰면서 몸과 한층 더 친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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