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군함도 미리 읽자"…영화 개봉 앞두고 나온 서적

2017-06-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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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군함도 포스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올여름 한국영화 기대작인 '박열'과

박열, 군함도 포스터
박열, 군함도 포스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올여름 한국영화 기대작인 '박열'과 '군함도' 개봉을 앞두고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두 작품이 소재로 삼은 일제강점기 가슴 아픈 이야기가 소설과 역사서, 동화까지 다양한 형식에 담겼다. '박열'은 28일, '군함도'는 내달 개봉한다.

손승휘의 '아나키스트 박열'(책이있는마을)은 이준익 감독이 재조명하는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과 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반(反)천황제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박열은 1923년 일왕 폭살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해방 이후까지 22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박열의 매력은 '대역사건'으로 붙잡히고도 법정에 설 조건을 내건 당당함에 있다.

박열은 '공판정에서는 일절 죄인 대우를 하지 않아야 하며 피고라고 부르지도 말 것', '조선 예복 착용을 허락할 것', '공판 전에 선언문 낭독을 허락할 것' 등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일절 신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소설은 박열의 이런 법정투쟁을 비롯해 가네코와의 만남과 옥중결혼 등을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1부는 가네코가 바라보는 박열을, 2부는 박열 자신이 사상과 행동을 직접 서술한다. 3부는 재판에서 두 사람의 변론을 맡은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관점이다.

책이 있는 마을, 해냄
책이 있는 마을, 해냄

김별아는 2009년 발표한 소설 '열애'의 원고를 가다듬은 개정판을 출판사 해냄에서 냈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항일운동과 함께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에도 비중을 실은 작품이다.

작가는 박열과 가네코의 만남이 필연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박열과 어린 시절 부모·친척·이웃들로부터 모진 학대에 시달린 가네코가 같은 운명을 지녔다고 본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이 법정에서 내건 조건과 함께 그의 꼿꼿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시는 1922년 일본 유학생들이 만드는 잡지 '청년조선'에 발표한 것이다. 가네코가 시를 읽고 전율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억압하는 일본인보다는 억압당하는 조선인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참하게 사는 존재들끼리의 공감이 있었다."

전기 형식의 역사서도 잇따른다. 노동소설 '파업'의 작가 안재성은 이달 초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인문서원)를 냈다. 작가는 아나키즘이니 박애주의니 하는 이념보다도, 박열이 추구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무게를 둔다.

작가는 "박열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재판정에서 보여준 그의 기개 때문"이라며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투쟁과 굴종 등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은 제 문제들을 고민하고 회의하고 또 질타하는 그의 연설문과 논문은 오늘의 현실에도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열 부부를 변론한 후세 다쓰지와 소설가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가 쓴 '운명의 승리자 박열'(현인)도 번역돼 이번주 출간 예정이다. 두 사람을 변호하기 이전부터 친분을 쌓았던 후세와 프롤레타리아 작가 나카니시는 법정에서 박열의 태도와 옥중투쟁 과정, 대역사건의 진상은 물론 박열의 사상적 배경과 가네코의 천황관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후세는 박열뿐 아니라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의 주역인 조선청년독립단, 의열단원으로 일본 궁성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은 인물이다. '일본의 쉰들러'로 불리는 그는 2004년 일본인 최초로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로 만든 '군함도', 즉 하시마(端島) 탄광은 섬의 기괴한 겉모습만큼이나 살인적인 작업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영화는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이야기다.

장성자 작가의 '군함도'(바우솔)와 김영숙 작가의 '지옥의 섬 군함도'(풀빛)는 모두 군함도를 경험하는 독자 또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다. '군함도'는 하시마에 역사수업을 받으러 간 도윤이가 일제강점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판타지를 통해 참혹한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지옥의 섬 군함도'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와 함께 탄광에 끌려간 근태의 일기 형식으로 참상을 되살린다.

곡괭이 자루로 등을 맞아가며 일하던 근태는 나가사키로 전출된다는 통지를 받는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하시마였지만 부모님과 또다시 생이별을 한다. 작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나가사키 피폭현장 처리에까지 동원된 조선인들의 고초를 전한다.

일본은 하시마를 '비서구지역에서 최초로 성공한 산업혁명 유산'으로 홍보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에는 애써 눈감고 있다. 군함도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재작년 일본 정부가 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다.

문단에서는 한수산 작가가 이미 2003년 5권짜리 대하소설 '까마귀'로 하시마 강제징용과 피폭 문제를 고발했다. 하시마와 나가사키에 10여 차례 방문하고 미국 네바다주의 원폭 실험장소까지 답사하며 15년간 취재·집필한 역작이었다.

작가가 지난해 두 권으로 펴낸 소설 '군함도'(창비)는 '까마귀'의 원고를 대폭 수정해 원고지 3천500매 분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에서 죽는 순간까지 차별받는 식민지 조선의 설움이 담겼다. 소설에서도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하시마 탈출이 그려지지만 영화 '군함도'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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