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이제 어디 가면 되냥” 시행 앞둔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

2017-06-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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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반발도 있다.

"수술 안 해도 죽고, 수술해도 100% 살지, 못 살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가 수술을 결심했다. 자가 수술은 최후의 선택이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가 도마뱀에게 직접 제왕절개 수술을 해줬다는 일화가 관심을 모았다. 이용자는 수술 영상(☞바로보기)을 공개하며 "알이 (도마뱀) 뱃속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배를 갈라 알을 직접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했다고 한다. 도마뱀은 몸 상태를 회복해 밥도 잘 먹고 변도 잘 본다는 후일담도 전해졌다.

보호자가 직접 외과수술까지 감행하는 것은 다소 특수한 사례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가벼운 질병에 걸렸을 때 약을 사 먹이는 수준의 '자가 진료'는 흔히 볼 수 있다.

9년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박지은(가명·37) 씨는 (고양이가) 눈충혈이나 부종 등 가벼운 질병 치레에 시달릴 땐 약국에서 안약을 사 직접 투약한다고 했다.

박 씨는 "안약 같은 경우 약국에선 4000원 정도인데 동물병원에 가면 4~5배 정도 가격을 줘야 약을 받을 수 있다. 진료비 별도로 하고 약 값만 2만 원 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병원 비용이 부담스러워 직접 약을 산다는 얘기다.

김송혜, 박지은 씨 사례에 개정안을 적용해보자면 강아지를 위해 구충제를 구입한 김송혜 씨 행위는 법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박지은 씨가 구입한 안약은 수의사 처방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 박지은 씨 제공

풍산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송혜(35) 씨 역시 구충제 등 약품을 구입해 먹이는 건 직접 한다고 했다. 박 씨와 마찬가지로 '비용'을 이유로 들었다.

이처럼 의사 힘을 빌리지 않고 아픈 동물을 '직접' 보살피는 자가진료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자가진료 효용성과 그 가능한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비전문의가 자가수술을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있다.

다음달부터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가 법적으로 전면 금지되면서 이같은 논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돌봤던 보호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현행법에선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동물을 직접 치료(외과수술 포함)할 수 있었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르면 상처 치료·일반 의약품 투약 등을 제외한 '반려동물 자가진료'는 불법이다.

◈ 수의사계 "무분별한 자가진료도 동물학대"

지난해 방송한 SBS '동물농장' 한 장면, 당시 방송은 '강아지공장' 실태를 고발해 충격을 줬다. 다음달 1일부터는 이처럼 비전문가인 농장주가 개에게 인공수정을 시키고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 SBS '동물농장'
지난해 방송한 SBS '동물농장' 한 장면, 당시 방송은 '강아지공장' 실태를 고발해 충격을 줬다. 다음달 1일부터는 이처럼 비전문가인 농장주가 개에게 인공수정을 시키고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 SBS '동물농장'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해 5월 SBS '동물농장'에서 방영한 '강아지공장' 사건 여파로 마련됐다. 당시 '동물농장'은 개를 강제로 임신시키기 위해 발정 유도제 등 호르몬제를 투여하거나 수차례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등 일부 '강아지 공장' 실태를 고발해 충격을 줬다.

이러한 불법진료 수술 실태가 알려지면서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같은 해 12월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수의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다음달 1일부터 발효된다.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

동물에 대한 무면허 진료 행위는 1994년 가축에 한해 '자가치료' 허용이 필요하다는 축산업계 요구로 허용됐다.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반려동물 역시 자가치료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지난해 불법진료 실태가 알려지면서 법 개정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자가진료 가능한 범위를 가축으로 제한하는 걸로 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수의사법 시행령 12조를 보면 자가진료 허용대상에서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은 제외됐다. 이에 따라 다음달 1일부터 반려동물에 한해 자가진료를 할 경우 무면허진료를 금지한 수의사법 10조(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의거해 처벌받게 된다.

동물단체, 동물보호자…"비싼 동물병원비…이것부터 해결돼야"

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반발도 있다. 법 개정을 앞둔 지난해 6월 동물보호협회는 자가진료 금지보다는 무자격자의 외과수술행의를 막는 게 주가 돼야 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한동물약국협회 역시 지난 5월 집단성명을 내고 수의단체 의도대로 법령이 개정되면 서민보호자들 투약행위가 제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덧붙여 약국에 비해 현저하게 비싼 동물병원 진료비용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보호자가 다 떠안게 되고, 이것이 유기동물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때문이라도 진료비 청구문제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동물약국에서 복약지도를 받아 보호자가 직접 접종했을 때 (동물병원보다) 개는 5~10배, 고양이는 2~4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과거 통계도 있다. 지난해 11월 대한약국협회가 동물약국을 방문한 동물보호자 1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동물병원에서 개 백신 1회당 접종 비용은 5만원 이하가 71.1%, 5만원 초과는 16.2%로 나왔다. 고양이 백신은 5만원 이하가 69.4%, 5만원 초과는 17.7%였다.

이와는 달리 동물약국에서 개 예방접종 백신 판매가격은 국산 기준 개당 5000원 이하 수준인 걸로 조사됐다. 수입백신도 1만원 이하였으며, 고양이 예방접종 백신은 개당 2만원 이하 수준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애묘인 역시 "자가진료 금지보다는 우선 병원비 책정 문제가 개선돼야 하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9년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밝힌 제보자는 "아픈 고양이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본 경험을 살펴보면 병원마다 검사도 진단도 치료도 다 제각각이었다"면서 "같은 처치에 대해서 진료비도 제각각이었다"고 했다.

김송혜 씨가 키우고 있는 몽순, 몽선이 / 김송혜 씨 제공

무분별한 자가진료를 막기 위해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의약품을 확대하는 내용도 많은 반발에 부딪혔다. 대한약사회, 동물협회 등은 동물 백신과 심장사상충예방약을 예로 들면서 "사용량이 가장 많은 품목인 약들이 수의사 처방 범위에 들어가면 보호자들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농식품부는 마취제, 호르몬제, 항생항균제 등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동물용의약품 일부를 수의사 처방 대상 의약품으로 지정하고자 했으나, 이들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후 반려견 4종 종합백신과 고양이 종합백신 가운데 사백신은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게 됐다. 단 고양이 종합백신 중 생백신과 심장사상충 예방약 중 레볼루션과 애드보킷은 처방대상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 "동물 병원비 문제는 의료수가제, 동물의료보험으로 해결해야

수의사계도 동물병원 진료비용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 지난달 열린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정책제안 간담회에서 우연철 대한 수의사회 전무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병원비가 비싸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수의사들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선 '(동물) 의료보험' 이야기를 했다. 사람의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돼 상대적으로 진료비가 저렴해보이는 데 반해 동물의료보험은 사보험 영역에서 간혹 나오는 게 전부고, 그것 역시도 적용 분야가 매우 한정적이라 동물병원비가 비싼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영민 서울수의사회장 역시 "사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에게 많이 이뤄지는 진료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수가를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다.

따라서 동물 진료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우선 반려동물 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일반 보험처럼 반려동물 키우는 것과 동시에 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등 '동물의료보험'을 근본적으로는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셔터스톡

◈ 다음달부터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 시작, 이에 대한 혼란 우려도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 법안이 반려동물 보호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고양이 '푸치'를 1년째 키우고 있다고 밝힌 오지훈 씨는 "집에서 애가 아프면 내가 어디까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걱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반려동물 보호자의 '자가처치' 허용범위 기준을 담은 사례집을 지난 26일 공개하기도 했다.

사례집에 따르면 수의사 처방 대상이 아닌, 예방 목적의 동물 약품을 구입해 동물에게 먹이거나 바르는 행위는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수의사 처방과 지도에 따른 투약 행위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구입하고자 하는 약품이 수의사 처방 대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굳이 수의사 처방이 없어도 구입 가능한 약품이라면 바로 동물약국을 방문하면 되기 때문이다.

※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 동물용의약품 중 동물 및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어 약제특성이나 투약방법 등을 고려하여 사용상 신중을 기하여야 하는 약품으로써 수의사의 직접 진료 후에 수의사에게 직접 조제‧투약을 받거나 처방전을 발급받아 동물약품판매업소 등을 통해 구입 후 투약해야 함

⇒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종류에 관하여는 수의사나 약사에게 상담하면 된다.

하지만 사례집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사례집에 따라 자가처치를 해도 수의사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예방 목적의 동물 약품 투약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얼핏 보면 반려동물에게 예방주사 놓는 행위도 가능하다고 오해하기 쉽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약물 주사 투약에 대한 부작용 언급과 동시에 수의사가 직접 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공지했다. 또 실제 최근 판결사례를 보면 한 동물병원 복지사가 반려동물에게 주사를 놓은 게 법에 위배됐다는 게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 상 직접 주사 행위는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반려동물을 '아들딸'로 생각하면 된다는 조언도 있다. 지난달 한 경제지 기고에서 이학범 수의사는 "당신의 아들, 딸에게도 직접 주사를 놔주냐, (애가 아플 때) 연고를 발라주고 약을 먹이지만 백신이나 항생제 주사를 직접 놔주지는 않는다"면서 이는 반려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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