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수상' 류샤오보가 해외치료 고집하는 이유

2017-07-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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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보는 잘나가는 작가였고, 해외에서 자주 초청을 받고 강연도 자주하는 민주화 연사였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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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61)가 간암 말기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해외 치료를 고집하는 것은 부인이라도 해외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기 때문이라고 영국의 BBC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는 류샤오보의 친구를 인용, “류샤오보는 자신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해외 치료를 고집하는 것은 자신이 죽더라도 부인은 해외에 남아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류샤오보의 친구는 특히 “자신이 죽은 뒤에 부인 류샤(劉霞)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그녀를 반드시 해외로 빼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귀띔했다고 BBC는 덧붙였다.

류샤오보와 류샤가 만난 때는 1996년이다. 류샤오보는 잘나가는 작가였고, 해외에서 자주 초청을 받고 강연도 자주하는 민주화 연사였다. 그는 1989년 뉴욕에서 유학 중 6.4 천안문 사건이 난 것을 알고 즉시 귀국했다. 귀국한 그는 즉시 당국이 잡혀 20개월 동안 비밀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수용소에서 나온 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바로 그 때 유망한 젊은 시인이자 화가였던 류샤를 만났다. 류샤오보는 늘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오롯이 한 여자에게 응축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말하곤 했다. 류샤는 류샤오보보다 6세 연하였다.

류샤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권의 고위 간부였다. 그녀 또한 공무원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자신이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부모는 류샤오보와의 결혼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1996년 천안문 인근에서 신접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대표적 반체제 인사였던 류샤오보는 항상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국은 끊임없이 이들을 괴롭혔다. 류샤오보는 류샤의 생일을 챙겨 줄 수도 없었다. 류샤의 생일날 친구들이 술 두병과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그러나 공안은 폭발물일 수도 있다며 반입을 금지했을 정도다.

류샤오보는 2008년 12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의 발표를 준비하던 중 발각돼 국가전복 혐의로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 2009년 6월 23일에 공식 체포돼 11년 형을 받았다. 그는 이후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 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던 중 2010년에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받자 류샤도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서방 언론들이 류샤에게 끊임없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류샤가 가택연금에 들어가자 면회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류샤오보의 죽음을 앞두고서다. 류샤오보는 올 초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류샤오보는 가석방을 받았고, 현재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의 제1병원에 입원해 있다.

류샤오보는 죽음을 바로 앞두고 류샤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둔 류샤오보의 마지막 소원은 부인이라도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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