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출몰부터 샤워실 몰카까지" 한인민박 때문에 유럽여행 망친 사연

2017-07-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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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묵은 한인 민박은 한국에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은 무허가 업체였다.

“씻다가 문득 이상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환기하는 창문 틈으로 눈이 딱 마주쳤어요. 카메라 렌즈가 절 향하고 있더라고요.”

지난달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20대 여성 박윤지(가명) 씨가 한인 민박에서 겪은 일이다. 꿈꾸던 유럽 여행은 ‘한인민박 몰카 사건’으로 악몽이 됐다.

최근 해외에서 성행하는 한인민박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 세계 한인민박 1000여 곳 중 유럽에만 700곳이 몰려있다. 특히 파리나 로마, 런던 등 인기 관광지가 많은 서유럽에만 584개 한인민박이 운영되고 있다. 한인 민박은 호텔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외국어 대신 한국어로 현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외국 여행 중 한식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20~30대 여행객에게 인기다.

해외 숙박 업소 (※기사에 등장하는 곳은 한인 민박이 아닙니다) / 이하 셔터스톡
해외 숙박 업소 (※기사에 등장하는 곳은 한인 민박이 아닙니다) / 이하 셔터스톡

문제는 ‘배짱 장사’를 하고 있는 일부 한인 민박들이다. 일부 한인 민박은 여행객이 실제로 가 보니 홈페이지에 광고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민박 측 광고와 이용객 후기에 의존하다보니 과장·허위 정보에 피해를 입기 쉬운 탓이다.

◈ “한인 민박 남자 사장이 숙박객 샤워하는 거 몰카”

‘한인 민박 몰카 사건’ 피해자인 박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옷을 벗고 씻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를 봤다. 일단 물을 잠그고 대충 옷을 입은 뒤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확인을 하기 위해 창문을 보면서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밝은 색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가 다시 틈새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 씨는 샤워실에서 나와 옆에 있는 주방 쪽으로 갔다. 주방 옆에는 창고가 있었다. 박 씨는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 창고와 연결된 샤워실 환풍구를 봤다. 그 옆에는 민박집 남자 사장도 있었다고 박 씨는 말했다. 박 씨는 “환풍구 창문 밑에는 발판으로 쓸만한 간장통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민박집 주인에게 당장 휴대전화를 달라고 했지만, 민박집 주인은 어두운색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박 씨는 “민박집 주인이 전부터 계속 ‘술을 먹자’고 치근대서 너무 불편했다. 은근슬쩍 내 몸을 만져서 매우 기분이 나빴던 적도 있지만, 참았다가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고 했다. 박 씨는 결국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를 옮겼다. 박 씨는 “민박집 다른 남자 사장이 다른 숙소를 잡아주긴 했지만, 우리가 이미 지불한 숙박비와 투어 비용은 되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남은 여행 기간 내내 현지 대사관과 경찰서를 찾아 다니다가 귀국해야 했다.

귀국한 박 씨는 경찰서와 성폭력 상담 센터를 전전했다. 현지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사건이 접수되고 조사하는 데만 반 년이상 걸린다는 대답을 받았다.

추가 피해자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박 씨는 유럽 여행 정보 커뮤니티에 ‘한인민박 몰카 사건’에 관한 글을 올렸다. 박 씨가 쓴 글에는 해당 민박집에서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는 네티즌 댓글이 줄을 이었다. 박 씨는 “해당 민박집 사장이 오히려 나를 진상 고객으로 몰며 ‘명예훼손’이라고 했다”며 “커뮤니티에도 고소하겠다면서 글을 다 삭제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 공간은 비좁고, 외벽은 부서지고

지난 5월 5일 이탈리아 로마에 간 김은희(25) 씨는 “한인 민박 열악한 시설은 둘째치더라도 무책임한 장사 태도를 문제삼고 싶다”고 했다.

김 씨 말에 따르면 9㎡ 남짓한 방 한 칸에는 싱글 침대 5개가 놓여 있었다. 여행 가방을 펼칠 틈도 부족했다. 김 씨는 “생수를 제공한다더니, 이미 뚜껑을 딴 페트병에 물을 담아놓은 것이었다. 화장실 쪽 벽은 부서져 돌가루가 나뒹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화장실에 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샤워실에 들어가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뒤에야 겨우 씻었다”고 덧붙였다.

비좁은 방 / 이하 김은희 씨 제공
비좁은 방 / 이하 김은희 씨 제공

외벽이 부서져 돌이 나뒹굴고 있다
외벽이 부서져 돌이 나뒹굴고 있다

김 씨는 “민박 측에 ‘화장실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건 왜 공지 안 하셨냐’고 묻자 ‘그런 걸 다 어떻게 공지하냐’고 말해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 잘못해놓고 오히려 당당한 민박 주인

한지은(가명) 씨는 지난달 초 프랑스 니스에 있는 한 한인 민박 여자 전용방을 예약하고 갔다. 그는 니스에 도착해 체크인 직전에서야 자신이 남녀 공용방에 배정돼있다는 걸 알았다.

한 씨는 “홈페이지에도 여자 전용방에 자리가 있다고 떠서 화면을 보여주니 사장이 ‘홈페이지 관리가 안 된다’는 말을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여자 전용방은 남녀 공용방보다 가격도 비쌌는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관리가 안 된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씨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씨는 “보증금을 내고 키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키를 준 거였다. 문이 열리지 않아 사장이 돌아올 때까지 30분 가까이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고 토로했다. 한인 민박 측이 광고했던 ‘프랑스 가정식 아침 식사’는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 시리얼 1종류와 우유, 오렌지 주스가 전부였다.

한 씨는 “위생상태도 엉망이었다. 쓰레기통조차 없어 투숙객들이 면세점 비닐봉지로 쓰레기통을 만들어서 썼는데, 그마저도 주인이 치워주지 않아 악취가 풍기고 날파리가 꼬였다”고 말했다.

◈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인 민박?

홈페이지에는 한인 민박이라고 해놓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인 민박을 이용한 A씨는 “한국말도 잘 못 하는 조선족이 사장이었다”고 했다.

A씨가 묵은 한인 민박은 한국에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은 무허가 업체였다. B씨가 막상 도착했을 때 민박은 예약이 초과한 상태였다. B씨는 결국 첫날 숙박비 절반쯤을 돌려받고 바닥에서 자야 했다.

A씨는 “바닥에서 잔 건 둘째치고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할 때 주방에서 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사업자도 없고 어디에 이걸 말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신문고에나 이걸 호소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저분한 주방(※기사에 나오는 한인 민박이 아닙니다) / 셔터스톡
지저분한 주방(※기사에 나오는 한인 민박이 아닙니다) / 셔터스톡

◈ 외교부 “현지에서 민사소송”… 한국 소비자원 “실질적 제재는 불가능”

후기, 광고와 전혀 다른 한인 민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구제받을 방법은 현지에서 직접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외교부에 문의한 결과, 현지 경찰이나 현지 변호사 도움을 얻어 고소하는 방법뿐이었다. 외교부 측은 “총영사관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안내했지만, 국제전화와 외국 행정 절차 등 개인 소비자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영역이었다. 특히 이미 귀국한 다음이라면 구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는 개인 SNS 등에 후기를 남기는 게 최선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은 합법, 불법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고 합법적인 영업이어도 제재가 어렵다고 했다. 한국 소비자원 국제거래지원팀 관계자는 “실제 사업 허가증이라고 게시한 서류가 알고 보니 현지 식품 판매업 허가증이었던 사례도 있다”며 “해외 한인 민박 중 상당수는 불법 운영되고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한인 민박을 이용하고 싶다면, 직접 계약하는 것보다 예약 대행업체 거치는 방법이 더 좋다고 했다. 예약하고 결제한 기록을 남겨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증빙자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계약 약관을 확인하고 사업장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라는 원론적인 말씀 밖에 드릴 수 없어 안타깝다”며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 외국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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