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인 척 가슴 치고..." 성희롱에 시달리는 여교사들

2017-07-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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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SBS '신사의 품격'
SBS '신사의 품격'

'슬기 따먹고 싶다'

중학교에 재직 중인 강슬기(가명・여・25) 교사는 지난 6월 아침 조회시간에 독서활동을 지도하다가 복도 벽면에 적힌 낙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강슬기 교사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다른 남자랑 자봤어요?"라고 묻던 남학생들 모습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끼쳤다.

2년 차인 강 교사는 경력이 많은 동료 교사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이 나이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게 다 성적인 것이다. 모든 여선생님을 대상으로 성적인 상상을 하니 너무 상처받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료 교사는 "CCTV라도 찾아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교 복도에 설치된 CCTV는 화소가 낮고 저장 기간이 3일밖에 되지 않아 강슬기 교사는 결국 낙서를 한 학생을 찾아내지 못 했다. 가해 학생을 찾지 못해 교권보호위원회도 열지 못 했다. 강슬기 교사는 "낙서를 한 학생을 잡아내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더라도 그 학생은 교내봉사 정도 징계만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슬기 교사는 "그날 일을 잊고 살다가도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예쁜 누나'라고 부르며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라고 토로했다.

◈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일상이 된 성희롱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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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이 여교사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희롱하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점점 더 늘고 있다. 젊은 여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남자랑 자 봤냐", "첫 경험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을 늘 듣는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지며 초등학교 여교사들까지도 성희롱에 시달린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연주(가명・여) 교사는 "영어 수업 도중에 '침대가 침실에 있다'는 문장이 나왔다. 한 남학생이 '선생님, 침대에서는 뭘 해요?'라고 물어 '침대에선 잠을 자지'라고 답했더니 '오, 자지'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연주 교사는 "학부모한테 전화를 하거나 정식으로 문제 삼기 애매한 말들을 하고는 웃는데 지도하기 너무 어렵다"라고 전했다.

언어적 성희롱을 넘어 '몰카'에 찍히거나 '불쾌한 신체 접촉'을 당한 여교사들도 적지 않다. 중학교에 재직 중인 5년 차 남하늘(가명・여・30) 교사는 "남학생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치마 속을 몰래 찍고 카카오톡으로 공유를 했었다"라고 밝혔다. 남하늘 교사는 "문제 제기를 해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가 내려졌지만 한동안 학교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했다.

서울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던 김하나(여・24) 씨는 "실습을 나간 첫날 남학생들끼리 '새로 온 교생 가슴 크냐'라고 묻는 걸 들었다"라면서 "그날 이후 학생들이 실수인 척 가슴을 치는 일이 많았는데 '물증'이 없어 문제 제기도 못 했다"고 말했다.

◈ 학부모 "우리 애가 성범죄자냐..."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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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면 공론화하려는 여교사가 늘어나고 있다. 40대 이상 여교사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여교사가 학생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수치스러워서 문제 제기를 못 했다. 교사가 피해 사실을 학교에 알리면 '교사가 학생 발목 붙잡는다'라는 인식까지 있었다. 요즘에는 젊은 여교사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바른 정당 홍철호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권 침해 행위'는 2012년 7971건에서 2016년 2574건으로 줄었지만 '교사 성희롱'은 2012년 98건에서 2016년 112건으로 늘었다.

여교사들은 "교사 성희롱이 1년에 112건만 발생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면서도 "실제 성희롱 사례가 늘었다기보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여교사들이 많아졌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남하늘 교사는 "학생들이 몰카를 찍고 공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너무 컸다. 사건을 들추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라며 "선생님들이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 하면 학생들이 오히려 더 즐긴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남하늘 교사는 "교권보호위원회를 두 차례나 열어 학생들이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남 교사는 "학부모들이 '우리 애가 성범죄자냐'며 항의를 해 상처도 많이 받았다"면서도 "성폭력 피해자로서도 교사로서도 적절한 대응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교사들이 숨지 말고 나서서 학생들의 그릇된 성 인식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이제는 여교사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참고있지만은 않다.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려는 여교사들이 많다"라고 강조했다.

◈ '교직 사회'가 변해야 한다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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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문제를 공론화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제대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대전 한 중학교에서는 여교사가 수업을 하는데 남학생들이 집단으로 자위행위를 했다. 신고를 받은 대전시교육청은 "해당 교사를 대상으로 한 음란 행동이 아니라 영웅 심리에 따른 사춘기 학생들의 장난"이라고 판단했다.

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려도 학생들은 대부분 특별 교육, 교내 봉사, 출석 정지 등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원칙적으로는 퇴학 처분도 할 수도 있지만 퇴학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생들이 특별 교육이나 교내 봉사를 받아도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출석 정지'와 '퇴학' 사이에 중간 과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대변인은 "성희롱 피해를 당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 가해 학생을 계속 가르쳐야 하는 것도 문제"라며 "학급 교체 혹은 전학을 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회는 성희롱, 폭력 등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학급 교체하거나 전학시키는 조치를 담은 교권지위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교직 사회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중학교에 재직 중인 장한솔(가명・남) 교사는 "학생지도부장이 남교사인 경우가 많다"며 "여교사들이 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학생지도부장에게 고충 상담을 할 때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라고 말했다.

장한솔 교사는 "남교사들이 여교사가 느끼는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하거나 상담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경력 있는 여교사가 고충상담관 역할을 맡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애 위원장은 "교사들이 성희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교직 사회에서 살아남기 여전히 어렵다"라며 "특히 가해 학생 학부모가 반발해 처벌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교사들도 연수 등 교육을 받아 교사 공동체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학부모가 반발하고 교육청이 축소하려고 해도 동료들이 함께 해주면 문제 제기가 가능하고 좋은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 근본적 해결책은 '젠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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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들은 사후 조치도 필요하지만 젠더 문제를 포함한 성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하늘 교사는 "'여교사 성희롱'은 교권 침해이기도 하지만 젠더 문제"라면서 "성적 호기심이 성희롱으로 이어지는 것은 여성 혐오, 성차별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경수(18) 군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을 성희롱하고 훈장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며 "문제 의식을 전혀 못 느끼고 '센 척'을 하며 자신의 과시욕만 채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성적 호기심'은 무조건 부정하는 학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한솔 교사는 "지난해 재직했던 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여교사 수업 시간에 자위행위를 하고는 SNS에 올려 문제가 됐다"라며 "젠더 감수성, 공감 능력, 배려심 등이 부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철 교총 대변인은 "인성 교육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으로 안 된다"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성 평등, 예절 등에 대해 지도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해외에서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학부모 교육'을 도입해 학부모들이 자녀를 잘 지도하고 교육공동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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