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선덕여왕 생애에 얽힌 6가지 이야기

2017-07-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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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이자 신라 최초,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다.

선덕여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6가지 추렸다.

1. 딸로 태어나서 다행

선덕여왕 부친인 진평왕과 모친인 마야부인은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학설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혼인을 전후해 석가모니 부모 이름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선덕여왕 복식 재현 / 연합뉴스
선덕여왕 복식 재현 / 연합뉴스

문제는 진평왕 부부가 아들을 낳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석가모니는 부처여서 환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진평왕 부부가 아들을 낳으면 부처가 환생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불교 교리와 어긋날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진평왕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렇게 태어난 딸이 선덕여왕이다.

2. 본명에 얽힌 신화

불교 / 셔터스톡
불교 / 셔터스톡

선덕여왕 본명인 '덕만'은 불교 열반경에서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보살이다. 덕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진평왕의 뒤를 이으면서 불교의 신성성을 강화했다.

3. 성차별

선덕여왕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역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 태종은 사신을 보내 "신라는 여인을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의 멸시를 받는다.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왕족 중 한 사람을 보내 왕으로 삼으면 어떻겠는가"라며 조롱했다.

당시 상대등이었던 비담은 "여자가 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여자라서 당한 멸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려 유학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어찌 늙은 할미로 하여금 규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하게 하였는가.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했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며,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적었다.

선덕여왕에게 공양하는 불교 행사 / 이하 뉴스1
선덕여왕에게 공양하는 불교 행사 / 이하 뉴스1

4. 첨성대를 지은 이유

경주 여행 필수 코스인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세워졌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용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에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덕여왕 때 천문을 기록한 내용이 급증한 사실도 첨성대가 천문 관측용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첨성대
첨성대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세운 이유는 "백성에게 하늘을 보여 주겠다"는 애민 정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동시에 하늘의 뜻을 읽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5. 지혜로움

선덕여왕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모란'에 관한 내용이다.

모란 / 셔터스톡
모란 / 셔터스톡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모란 그림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선덕여왕은 모란 그림과 씨앗을 받았는데,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음을 알아맞혔다고 전해진다.

또 선덕여왕은 개구리 떼가 운다는 소식을 듣고 백제군 공격을 예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된 설화에 나오는 장소이다. 선덕여왕이 신라의 궁성 서쪽 영묘사 옥문지에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서 삼사일을 울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각간 알천과 필탄을 여근곡으로 보내서 그곳에 잠복하고 있던 백제군과 백제장군 우소까지 모두 쏘아죽였다고 한다. / 이하 연합뉴스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된 설화에 나오는 장소이다. 선덕여왕이 신라의 궁성 서쪽 영묘사 옥문지에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서 삼사일을 울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각간 알천과 필탄을 여근곡으로 보내서 그곳에 잠복하고 있던 백제군과 백제장군 우소까지 모두 쏘아죽였다고 한다. / 이하 연합뉴스

6. 죽음에 관한 예언

선덕여왕은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던 중 죽음을 맞았다. 대내외적으로 남성이 우대받던 시대에 한민족 최초로 여왕이 된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선덕여왕은 건강했을 때 죽은 뒤 누울 자리를 예견한 일화로 유명하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의 신령한 지혜에 감탄했다"며 이 일화를 소개했다.

선덕여왕은 어느날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신하들에게 청했다. 도리천이란 불교 교리에서 '하늘에 있는 산'이었기에 신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선덕여왕은 신하들에게 도리천은 낭산이라고 일러줬다.

경주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
경주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

선덕여왕(27대)이 죽은 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30대)은 낭산 기슭에 사천왕사를 세웠다. 사천왕사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낭산 꼭대기는 도리천이 되는 셈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 본 것 같은 선덕여왕의 지혜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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