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엔 없고, 여자화장실엔 있다는 '구멍'... 정체는?

2017-07-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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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원생 이하은(가명·여)씨는 최근 공중화장실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20대 대학원생 이하은(가명·여)씨는 최근 공중화장실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양변기칸 벽면에 손톱 절반 크기 구멍들이 수십 개나 뚫려 있었다.

이씨는 '몰래카메라'를 의심했다. 실제로 몰카 수법은 진화하고 있다. 샤워기 구멍, 환풍구 등 미세한 틈만 있어도 몰카를 설치할 수 있다. 1㎜ 초소형 카메라부터 나사, 모자, 물병, 시계 모양 몰카까지 외형과 크기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이씨가 할 수 있는 건 의심 말곤 없었다. 증거가 없어서다. 이씨는 "심증은 충분히 가지만, 그런 거까지 신경 쓰다 보면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화장실 벽에 난 '정체불명' 구멍들 때문에 불안함을 호소하는 건 이씨뿐만 아니다. 최근 트위터 등 SNS에는 여자 화장실 양변기칸에서 발견했다는 수십 개의 구멍을 촬영한 인증샷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남성들이 몰카 설치를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멍에 카메라를 넣는 식으로 은밀한 장면을 찍었다는 것이다.

구멍이 '몰카' 흔적?... 전문가 "위생용품 수거함, 비상벨 설치 흔적 가능성 높아"

화장실문화시민연대(대표 표혜령)는 지난 17, 18일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 2호선 강남역 여자 화장실 양변기칸에 정체불명 구멍 여러 개가 나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 모니터링을 나갔다. 그 결과, 위생용품 수거함이나 비상벨을 설치하면서 생긴 못 구멍으로 확인됐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편의와 안전 문제로 인해 여자 공중화장실 양변기칸에 위생용품 수거함과 비상벨을 달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해 지역 여자 공중화장실에 1억 5000만 원을 들여 여성 위생용품 수거함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시내 모든 유원지 여자 화장실에 비상벨을 구비하겠고 밝혔다.

수거함과 비상벨은 보통 양변기칸 벽면에 못질로 고정시킨다. 때문에 위치를 옮기는 등 다시 달아야 할 경우 다른 곳에 또 못질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양변기칸 벽면엔 알 수 없는 '못 구멍'들로 가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반대로 수거함, 비상벨을 따로 설치하지 않는 남자 화장실에는 이런 구멍이 생길 일이 없다.

표혜령 화문연 대표는 "(여자 화장실에 있는 정체불명 구멍은) 수거함과 비상벨을 못질로 박았다 뗐다 하면서 생긴 흔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도 이에 대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설명"이라고 답했다.

◈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몰카에 공포심 갖게 하는 환경이 더 문제"

SNS를 뒤흔든 '여자 화장실 구멍'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상황이 초래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20일 "여자 화장실에 난 구멍이 몰카 증거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화장실에 그런 몰카가 설치됐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하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몰카 범죄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몰카 범죄 발생 건수는 7623건으로, 2011년(1523건) 대비 약 7배가 뛰었다. 지난해에는 5185건으로 예년에 비해 2000건 가량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몰카에 대한) 일상적 두려움이 계속 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구멍 하나에도 여성들이 공포감을 갖게되는 상황"이라며 "실제로 많은 여성이 그런 공포와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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