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계좌 개설' 가족끼리 얼굴 붉힌 사연

2017-08-22 16:50

add remove print link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기존 인증 절차를 보완해 예방할 조치가 없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뉴스1 최진모 디자이너
뉴스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 A씨는 최근 함께 사는 손자가 자신의 명의로 몰래 카카오뱅크 계좌를 개설해 소액 대출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은행 가기가 어려워 손자를 시켰는데, 비밀번호 등 모든 정보를 손자가 알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대출받은 돈으로 사버린 물건을 물릴 수도 없고, 어린 손자를 마냥 타박할 수 없어 대신 대출금을 갚기로 했다.

# B씨는 평소 재테크 목적으로 아내의 월급 통장을 관리한다. 몰래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봐 전전긍긍하던 참에 카카오뱅크 광고를 봤다. 아내 명의로 대출을 조금 받을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했는데, 며칠 후 다른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려던 아내에게 들통이 났다.

카카오뱅크 인기에 편승한 금융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자신도 모르게 계좌가 만들어지거나 소액 대출이 발생한 사례는 총 10건, 소액 대출 피해 규모는 1000만원 정도다. 모두 가족 명의를 이용한 경우다.

카카오뱅크는 쉽고 간편한 금융서비스를 등에 업고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계좌는 휴대전화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른 은행 계좌 입금 내용만 확인하면 10분 이내로 만들 수 있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소액 대출 상품 '비상금대출'은 19세 이상이면 휴대폰 본인 인증만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받는다. 이처럼 지나치게 쉽다 보니 곳곳에 허점이 나타났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소액 대출 관련해서는 가족 간에 합의 후 해당 명의의 가족이 대출금을 갚기로 했다"고 전했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으로 금융권은 속도전에 열을 올린다. 지난 4월 출범한 케이뱅크가 계좌 개설에 '15분'이 걸린다고 밝히니, 3개월 뒤 나온 카카오뱅크는 절반 수준인 '7분'이면 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 응수했다. 소액 대출은 '60초'면 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당연히 거쳐야 했던 절차를 대폭 없앤 것이 시간 단축의 비결이다.

하지만 인기와는 별개로 부작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가족 간에 금융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는 많다. 인증 절차가 적은 카카오뱅크에선 이를 악용해 명의를 도용하는 사례가 더 빈번하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카카오뱅크는 편의성을 높인 대신 얻게 된 부작용으로 가족 간의 분쟁까지 중재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 셈이다.

카카오뱅크 콜센터를 사칭한 신종 사기 사건도 발생했다. 구직사이트 '알바몬'에서 회사 말만 믿고 카카오뱅크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넘겼다가 지급 정지를 요청한 피해자도 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해도 카카오뱅크의 대응 여력은 부족하다. 쏟아지는 대출 신청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정부가 비대면 실명 인증을 허가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실명 확인을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유권 해석을 22년 만에 뒤집었다. 당시 업계에선 금융서비스의 편의성과 명의도용 등 부작용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카카오뱅크는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기존 인증 절차를 보완해 예방할 조치가 없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home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