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 20cm...?” 교복 치마는 왜 점점 짧아질까

2017-08-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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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도 교복 치마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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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원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문예랑(14·중3) 양은 4~50대 남성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적이 많다. 무릎에서 약 7cm 올라간 짧은 교복 치마 탓이다. 일부는 문 양에게 직접 "학생답게 좀 입으라"고 설교를 늘어놓기도 했다.

문 양 치마 길이는 일부 '노는' 학생 얘기가 아니다. 기자가 지난 1주일 간 이화여고, 이화외고, 창덕여중, 예원학교 네 곳이 몰려 있는 서울 정동에서 학생들을 관찰한 결과, 학생 대다수가 무릎 위로 5cm 이상 올라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무릎 위로 10cm 이상 올라간 치마도 흔했다. 15cm 이상 올라와 겨우 허벅지를 가리는 짧은 치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도 '짧은 치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한 학생들은 입을 모아 "지나치게 짧은 치마는 예쁘지도 않고 활동하기에 불편하다"고 반응했다. 교복을 입는 당사자들도 불편해하는데, 왜 교복 치마는 짧은 걸까?

◈ "실루엣은 아찔하게..." 더 짧고 아찔한 교복 만드는 업체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는 한 모(여·27) 씨는 모교 교복을 입고 지나가던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치마가 무릎을 덮는 길이였다. 일부러 줄이지 않으면 무릎이 드러나지 않았다. 요즘은 교복을 줄이지 않은 학생들도 무릎이 다 보이더라"라고 말했다.

영등포구 모 중학교에 재직 중인 30년 차 교사 김 모(여·52) 씨는 “실제로 예전보다 교복이 짧아졌다”고 했다.

교복 업체 홈페이지
교복 업체 홈페이지

학생들은 일부러 치마를 줄이는 게 아니라, 원래 치마가 짧게 나온다고 항변한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서연(17) 양은 "(친구들과) 어디가 제일 짧게 혹은 작게 나오는지 얘기도 더러 한다"고 말했다. 박 양은 "치마를 사서 입었을 때 생각보다 짧게 나와서 놀랐었다"고 했다.

실제로 교복업체 홍보 문구를 살펴보면 '교복 치마 라인'을 강조하는 말이 많았다. 교복 제조 업체 A사는 '슬림 라인으로 다리는 더욱 길어지고 실루엣은 아찔하게'라는 문구로 자사 치마를 홍보했다.

B사는 '슬림 Y라인 + 환상 H라인 콘솔지퍼로 완벽한 실루엣 연출'이라는 문구로 짧고 딱 붙는 치마 라인을 강조했다. C사는 '스커트가 발끝까지 시선을 이어 실루엣마저 완벽하게' 라는 광고 카피를 사용했다.

고교 2학년 이채은(16) 양은 "저 처럼 살이 찐 경우는 몸매가 드러나는 게 싫다"며 지나치게 짧게 나오는 치마가 예쁘지 않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복업체들은 교복이 짧아지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교복업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 몸에 맞춘 핏"을 강조하고 있다.

◈ 점점 짧아지는 미디어 속 교복

(좌) KBS2 '학교 1' / (우) KBS2 '학교 2017'
(좌) KBS2 '학교 1' / (우) KBS2 '학교 2017'

교복 치마가 짧아지는 데는 미디어 영향도 컸다. TV에선 예쁜 연예인들이 교복 치마로 날씬한 몸매를 뽐내곤 한다.

KBS 장수 드라마 시리즈 '학교'를 보면 그 극명한 차이가 잘 드러난다. 1999년 방송된 KBS2 드라마 '학교 1'에서 학생들은 무릎을 덮거나 무릎 위로 약 5cm 정도 올라온 치마를 입었다.

같은 '학교' 시리즈 최신작인 KBS2 드라마 '학교 2017'에선 학생들이 무릎 위로 약 20cm 올라온 치마를 입는다. 18년 사이에 15cm가 짧아진 셈이다.

Mnet '아이돌학교' 출연진 / 이하 뉴스1
Mnet '아이돌학교' 출연진 / 이하 뉴스1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출연진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출연진

예능 프로그램 속 교복도 마찬가지다. Mnet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과 '아이돌학교' 출연자들은 모두 무릎 위로 20cm 이상 올라온 짧은 교복 치마를 입었다.

이유진 양은 방송에서 짧은 교복이 예쁘게 비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양은 “방송이나 SNS에서 짧은 치마와 그런 옷차림을 한 연예인이 인기가 많은 모습을 보며 학생들 인식 자체가 그렇게 고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광역시 한 청소년 기관에 근무하는 활동가 임 모(27·여) 씨는 "청소년기는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시기다. 화려하고 멋있는 아이돌을 동경하고, 예쁜 것들을 모델로 삼으며 닮아간다"며 "학생들이 (TV 속 치마)를 따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짧은 게 예쁘다는 고정관념, 깨고 싶지만..."

'짧은 치마'가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도 또 한 쪽 측면에선 '짧은 교복이 예쁘다'는 이중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학교 3학년 학생(14)은 “짧은 게 예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나도 흐름에 따라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닌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교복을 짧게 입는 행위 자체를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긴 치마를 입어 답답한 모범생으로 비치는 것보다 짧은 치마를 입고 개성을 드러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이 모(13) 양은 “‘치마가 길면 모범생’ 이런 인식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일부러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활동가 임 씨는 "청소년 시기에는 교사나 가족보다 주변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주변 친구들이 교복을 줄이면 소외받지 않기 위해, 친구들에게 동참하기 위해 교복을 줄이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모범생'을 답답하고 머리만 똑똑한, 기성세대에 순종적인 아이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가 작용해 화장을 하거나 치마를 줄이게 된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활동에 불편하고 민망한 짧은 치마보다 몸에 딱 맞는 교복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유진 양은 "본인의 핏에, 개성에 잘맞는 옷이 예쁘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의 몸에 맞는 교복의 핏은 다 다르다"며 짧은 치마 일색인 현상을 지적했다.

문예랑 양은 “치마가 짧고 몸에 딱 달라붙는 교복이라고 해서 예쁜 교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양은 "미니스커트는 어른들을 흉내내는 것 같다"고 했다. 문 양은 "10대, 20대, 30대 마다 보이는 모습이나 생각이 다르다. 학생일 때는 학생다운 교복을 입는 게 생기 있고 발랄해서 예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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