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가 걸려 있다“ 레진 웹소설 작가진,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에 분노

2017-08-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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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코믹스 웹소설 작가는 100명이 넘는다.

레진코믹스 웹소설 화면
레진코믹스 웹소설 화면

"그동안 레진-웹소설을 사랑해주시고 감상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지난 25일 레진코믹스에 웹소설 종료 공지가 올라왔다. 레진코믹스는 오는 10월 1일 자정을 기해 서비스를 종료하며 위 시간부터 웹소설 에피소드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웹소설 서비스 시작 2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레진코믹스는 2013년 6월 시작한 한국 최초 웹툰 유료 서비스다. 처음엔 스타트업 느낌이었지만 웹툰 시장이 인기를 끌며 빠르게 성장했다. 레진코믹스 2014년 매출은 103억 원, 2015년 매출은 318억 원이었다.

2015년 9월, 레진코믹스는 웹소설 서비스를 열었다. 이후 레진코믹스는 로맨스, 판타지, BL, 백합, 무협 등을 가리지 않고 몰려든 장르 소설 작가 터전이 됐다. 레진코믹스는 창업 4주년인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만화 5996편, 소설 1243편, 회원 수 1045만 명, 누적 조회수 35억 회를 돌파한 한국 대표 서브컬쳐 플랫폼으로 도약했다.

레진코믹스 웹소설 작가는 100명이 넘는다. 작가 대다수가 지난 24일까지 연재 종료 사실을 듣지 못했다. 일부는 며칠 전에 담당 PD로부터 귀띔을 받았으나 그렇지 않은 작가가 훨씬 많았다. 한 작가는 바로 전날 연재를 시작했다.

◈ "적자" 이유로 웹소설 종료한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 웹소설 작가 유지나(가명·28) 씨는 지난 19일 서비스 종료 소식을 접했다. 유지나 씨 담당 PD가 돌아가는 상황을 알린 덕분이었다. PD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지난 16일 모든 게 결정됐다"라고 설명했다.

레진코믹스는 8월 말에 작가들에게 서비스 종료 통지를 할 예정이었다. PD들은 그보다 훨씬 전인 지난 19일부터 지속해서 작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작가 한 명이라도 소식을 빨리 접하길 바라는 도의적인 이유였다. 이후 웹소설 담당 PD 3명 중 2명이 퇴사했다.

레진코믹스는 지난 24일 오전 작가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난 25일에는 레진코믹스 전체 사용자를 위한 공지를 올렸다.

레진코믹스는 웹소설 종료에 대해 "적자"를 이유로 들었다. 지난 28일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위키트리에 "서비스 시작 후 2년간 계속 적자가 있었다"라며 "종료만은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더는 지속해서 웹소설을 유지하며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했고 회사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불가피하게 종료를 선택했다"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뼈를 깎아내는 마음으로 웹소설 종료를 결정하지 않으면 단단한 콘텐츠 플랫폼을 개척하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라고 밝혔다.

작가들은 레진코믹스 해명을 반박했다. 적자 상태에 놓인 회사가 특정 사업을 축소할 수 있지만, 종료 결정이 지나치게 급했다는 지적이었다. 유지나 씨는 "정말 적자라면 종료 몇 달 전부터 상황을 작가들과 공유하며 점진적으로 철수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작가 김마리아(가명·30) 씨는 8월에 연재를 시작했다. 김마리아 씨는 "정말 웹소설이 수익이 나지 않아 사정이 힘들었으면 적어도 7, 8월부터는 새 작품을 유치하거나 연재를 시작하면 안 됐던 게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7일 레진코믹스에 항의하는 작가로 이루어진 레진웹소설작가진 트위터 계정은 레진코믹스 지난 2달 운영 일정을 공개했다. 8월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만 6편에 달했다. 소설 'S황녀와 장난감들'은 레진코믹스가 작가들에게 종료 공지를 하기 하루 전인 23일 연재를 시작했다.

레진코믹스 웹소설 작가진 트위터 계정
레진코믹스 웹소설 작가진 트위터 계정

◈ "연재 약속 믿고 취업 미뤘는데..." 꿈 꺾인 신인들

이하 레진코믹스 공모전 페이지
이하 레진코믹스 공모전 페이지

유지나 씨는 "가장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게 공모전에 당선된 신인 작가들"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당선자 중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말한 분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레진코믹스는 지난 3월 29일 BL 공모전을 열었다. 5월 31일까지 원고를 받았다. 상금이 2750만 원에 달하는 대형 공모전이었다. 레진코믹스는 수상자에게 정식 연재 기회와 일러스트레이터 표지와 내지, 상금을 약속했다. 웹소설 지망생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지난 6월 22일 당선자 6명이 발표됐다. 이들은 공모전에 낸 글을 바탕으로 정식 연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웹소설 종료' 소식을 접했다.

공모전 당선자 김지영(가명·28) 씨는 아기 엄마다. 육아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 생계가 빠듯하지만, 레진코믹스 공모전을 위해 취업을 미뤘다. 레진코믹스에서 자리를 잘 잡기만 하면 안정된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김지영 씨는 "이번 한 번만 레진코믹스 공모전에 도전하고, 실패하면 깔끔하게 취업을 알아볼 예정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지영 씨는 연재를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 김 씨는 "원고료 들어올 걸 다 계산하고 생활비 계획을 짰다"라며 "갑자기 이렇게 되니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연재 시작하면 아기에게 장난감도 사주고 미뤘던 여행도 함께 갈 생각이었어요. 지금까지 취업도 못 하고 고생했으니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족에게 너무 미안해요. 특히 아기에게..."

또다른 당선자 한은우(가명·26) 씨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한은우 씨는 취업 준비 중 우연히 레진코믹스 공모전 공고를 봤다. 평소 장르 소설에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씨는 '레진코믹스 정도로 알려진 회사면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취업 준비를 멈췄다.

결과는 좋았다. 한은우 씨는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취업 준비를 완전히 접고 레진코믹스 연재 준비에 들어갔다. 한 씨가 공모전에 제출한 분량은 10화까지였다. 한 씨는 11화부터 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를 시작하려면 최소 15화 이상 원고가 확보돼야 한다.

지난 21일 한 씨는 작업을 18화까지 끝냈다. 봄부터 밤낮으로 한 작품에 공을 들인 결과였다. 한 씨는 바로 다음 날인 22일 웹소설 종료 소식을 들었다. 한 씨는 충격에 빠졌다. 취업도 미루고 '올인'한 작업이 세상에 공개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당선됐을 때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거든요. 레진코믹스는 크고 이름있는 회사니까요. 이렇게 쉽게 버려지니 견딜 수가 없어요. 저 27살이에요. 회사 다녀본 적 없어요.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27살에 신입 취업을 하는 게 쉬울까요...막막해요"

◈ "레진은 귀책사유가 없다" 황당한 계약 해지 합의서

레진코믹스는 작가들에게 '계약 해지 합의서'를 건넸다. 작가들은 합의서 3조가 레진코믹스 측 책임 소재를 은폐한다고 주장했다. 제3조 계약 해지 사유 2항은 "'원 계약' 해지의 사유는 '원 계약'에 명시된 계약해지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와 관련하여 '레진'과 '작가'는 공히 '원 계약'의 합의해지에 대한 귀책사유가 없다"다.

이주영 씨는 "당장 생계가 급한 작가는 다른 회사랑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 합의서에 사인하는 수밖에 없다"라며 "해당 합의서는 레진코믹스에 귀책사유가 없다는 구절을 포함하고 있기에 한 번 사인하고 나면 손해 배상 청구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당장 내야 할 카드 값이 모자랐던 작가님이 있어요. 그분은 어쩔 수 없이 합의서에 사인하고 계약을 조기 해지했어요. 다른 곳이랑 계약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분도 우리에게 정말 많이 미안해하셨어요. 같이 싸우지 못하니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4조는 '비밀유지 의무'를 담고 있다. "'작가'는 본 해지 합의서 체결 사실을 포함해 계약 내용, 이행에 관해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부수적으로 알게 된 모든 정보를 상호 협의 없이 어떠한 목적으로든 제3자에게 누설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유지나 씨는 "우리 탓도 아닌데 이런 계약서에 왜 순순히 사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분노했다.

◈ 작가들 "적자 내용 공개하라"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지난 28일 위키트리에 "작가님들 심정을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어려울 듯하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작가님들 처우를 신경 쓰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레진코믹스는 추가적인 합의안을 제안했다. 레진코믹스는 작가들에게 "계약 종료일이 속하는 월 직전 3개월 평균 수익배분금액을 기준으로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 종료일이 속하는 월의 다음 달 20일에 지급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레진코믹스는 후속 연재처 타사 플랫폼도 제안했다. 웹툰과 장르 소설 플랫폼 코미코였다. 이날 코미코는 공식 블로그에 '레진 웹소설 후속 연재처 지정 관련' 공지를 올렸다. 코미코는 "작품은 코미코가 검토하고 각 출판사가 심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웹소설 작가들은 레진코믹스 측 보상이 수익배분금액 증대, 연재처 이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주영 씨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한 방향은 아니며 우리 얘기를 제대로 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레진코믹스에 7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내용은 ▲간담회 열고 웹소설 누적 적자 설명 ▲레진 귀책사유로 웹소설 작품이 연재 중단된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고지 ▲공모전 당선작가 외 계약된 작가들 작품을 끝까지 연재 ▲작가진이 제시하는 합리적인 보상안 수용 ▲대표 사과문 발표 등이다.

유지나 씨는 "이번 사태는 작가들 생계와도 연결된 문제"라며 "쉽지 않겠지만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유 씨는 "피해 작가 수는 최소 100명이다. SNS상에서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50명,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작가가 28명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 "레진만 문제가 아냐" 문화예술계 '갑질' 성행

레진코믹스 같은 사례는 문화예술계에 비일비재하다. 지난 6월 12일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학로 연극센터에서 문화예술 정책토론회를 열고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가 만화, 웹툰, 일러스트 전문 예술인 834명을 대상으로 연 조사였다. 조사에서 만화, 웹툰 작가 35.9%, 일러스트 작가 54.9%가 부당한 계약해지를 겪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부당한 계약해지에 관해 '거래업체의 일방적인 통보, 폐업, 파산, 담당자와 불화' 등 거래업체 측 귀책사유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하 서울시
이하 서울시

문화평론가 성상민 씨도 레진코믹스 사태가 문화계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상민 씨는 "레진코믹스가 특별하게 못난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라며 "기존 출판사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성 씨는 "레진코믹스는 새로운 플랫폼을 추구하며 나타났지만 지금 하는 행동은 기존 출판사와 별 차이가 없다"라며 "기존 악습을 유료 플랫폼에 맞게 변형했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80, 90년대 만화잡지 시절부터 작가는 출판사에 '을'이었어요. 잡지에서 웹툰, 무료 웹툰에서 유료 웹툰으로 매체 환경만 바뀐 겁니다. 여전히 작가는 수동적인 위치예요"

계약 환경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화예술계 '갑질' 요인 중 하나다. 성상민 씨는 "정부가 만든 표준계약서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5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만화가를 보호하고 창작자와 사업자 간 공정한 거래 질서 형성을 위해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 6종을 제정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만화, 웹툰 분야 예술가 중 단 23.9%만이 표준계약서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3.8%, "표준계약서를 모른다"는 응답은 42.3%나 됐다.

성 씨는 서브컬쳐 작가들이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화가 길드, 예술 노조 등 교섭 단체가 활발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정책적인 지지도 필요하고요. 작가들 자신도 어떻게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