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콩 배설 기계'가 된 동물들

2017-09-0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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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귀하신 몸의 루왁 커피에는 사실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잡식동물인 사향고양이는 철장에 갇혀 커피 열매만 먹게 되면서 영양실조와 카페인 중독에 빠지고 자해행동까지 한다.(사진 어웨어 제공) / 뉴스1
잡식동물인 사향고양이는 철장에 갇혀 커피 열매만 먹게 되면서 영양실조와 카페인 중독에 빠지고 자해행동까지 한다.(사진 어웨어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한 TV예능프로그램 촬영지인 길리트라왕안(Gili Trawangan)섬을 품고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여행지다. 발리를 비롯해 롬복, 빈탄, 코모도 등 숨은 보석 같은 섬들은 전세계인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일명 '고양이똥 커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산 루왁 커피(Kopi Luwak)는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발효되는 것이라고 해서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최근에는 커피 마니아들을 위한 특별한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세계 3대 커피로 손꼽히는 루왁 커피의 원산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커피를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처럼 귀하신 몸의 루왁 커피에는 사실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루왁은 커피 브랜드나 생산지가 아닌 동물의 이름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사향고양이를 '루왁'(Luwak)이라고 부른다. 사향고양이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분포하는 야생동물로 야행성 잡식동물이다.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가 배설한 커피콩으로 만든다. 사향고양이가 들에서 따 먹은 커피 열매는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위산과 효소 작용으로 단백질이 분해되고 커피콩이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사향고양이가 1kg의 열매를 먹으면 30g의 루왁 원두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생산량이 적기에 그만큼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루왁 커피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면서 커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696년 무렵. 17세기 말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커피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며 커피 수확량의 대부분을 유럽과 미국 등지로 공급했다.

이미 커피 맛을 경험한 인도네시아인들이 생두조차 구경하기 어렵게 되자 들과 산을 헤매며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섞인 커피 생두를 주워 마시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초 커피 무역업자들에 의해 서구에 소개된 루왁커피가 인기를 끌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야생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케이지에 가두고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여 커피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사진 어웨어 제공)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사진 어웨어 제공)

국내에서 대부분의 산란계가 좁은 철장에 갇혀 평생 알만 낳는 것처럼 사향고양이도 마찬가지로 겹겹이 쌓인 좁은 철장에 갇혀 사육됐다. 꼼짝하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사향고양이는 강제로 급여되는 커피 열매를 먹고 원두를 배설하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곤충, 작은 포유류, 새의 알, 열매와 과일 등을 먹고 사는 잡식동물인 사향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커피 열매만 먹게 되면서 영양실조와 카페인 중독에 빠지고 자해행동까지 한다.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를 포획하고, 감금하고,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여서 얻어낸 동물학대 상품이다.

이처럼 사향고양이의 눈물로 생산된 루왁커피는 450g에 100~600달러에 판매되는데, 현지 농장주가 무역상에게 팔 때는 1kg에 13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루왁 커피가 높은 값에 거래되자 베트남은 족제비(Weasel) 배설물에서 골라낸 '위즐 커피'와 다람쥐에게 커피 열매를 먹여 생산한 '다람쥐똥 커피'까지 내놓았다.

또 필리핀에서는 토종 사향고양이가 만든 '알라미드(Alamid) 커피', 태국과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끌어들여 '아이보리 커피'를 만들었고, 예멘의 '원숭이똥 커피', 에티오피아 '염소 커피', 서인도제도 '박쥐 커피'까지 등장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동물은 자신의 선택은 하나도 없이 살고 있지만 인간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라면서 "사향고양이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루왁 커피를 안 마시고, 동물의 가죽과 털로 된 옷과 액세서리 구입하지 않고, 동물을 학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등 욕구를 조금만 줄이면 지구 반대편의 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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