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침해” vs. “역사의 심판” 로힝야족에 관한 이야기 9가지

2017-09-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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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와 방글라데시가 만나는 접경 지역인 라카인주에 사는 소수 민족이다.

구호 물품에 손을 뻗는 로힝야족 난민들 / 방글라데시 = 로이터 뉴스1
구호 물품에 손을 뻗는 로힝야족 난민들 / 방글라데시 = 로이터 뉴스1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사이에 끼어 있는 소수부족 로힝야족(Rohingya people)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와 방글라데시가 만나는 접경 지역인 라카인주에 사는 소수 민족이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에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로힝야족을 '불법 이민자'라고 규정하며 손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미얀마인들은 과거 자신을 핍박해온 로힝야족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첨예한 갈등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로힝야족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1. 로힝야족이 미얀마에 둥지를 튼 배경

로힝야족이 미얀마에 살게 된 계기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이하 셔터스톡
이하 셔터스톡

미얀마인들은 로힝야족이 영국 식민 지배 시절 불법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 살던 무슬림들이 조금씩 미얀마로 몰래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본다.

로힝야족은 자신들의 조상이 7세기 미얀마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무슬림 상인이라고 주장한다.

2. 갈등의 씨앗은 영국?

영국은 식민 지배 시설, 미얀마를 쌀 생산 기지로 전락시키며 로힝야족을 이용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인들과 종교, 언어, 외모 등이 달랐다. 영국은 미얀마인들의 농경지를 몰수해 농장을 만들고 이를 로힝야족에게 경영하도록 했다. 로힝야족이 미얀마 사람들에게 적이 된 건 이때부터였다.

3. 로힝야족과 미얀마인들 갈등에는 일본도 개입돼 있다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미얀마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일본군에는 협조적으로 대했다. 일본군은 로힝야족이 갖고 있던 농경지를 빼앗아 미얀마 사람들에게 주었다.

영국은 일본군과 미얀마인을 향해 쌓이는 로힝야족의 반감을 알았다. 영국은 로힝야족에게 무기를 지원하며 일본에 맞섰다.

로힝야족은 영국의 지원으로 일본군 대신 미얀마인들을 공격했다고 전해진다. 미얀마인을 학살하고 미얀마 종교인 불교 사찰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4. 종교갈등

영국 쪽에 선 로힝야족과 일본 쪽에 선 미얀마인들의 감정의 골은 종교 갈등으로 증폭됐다. 무슬림 교도인 로힝야족은 영국에게 지원받은 무기 등으로 불교 사찰을 파괴하면서 승려도 학살했다고 알려진다.

5. 로힝야족 처지를 바꾼 건 미얀마 군사 쿠데타

미얀마는 1948년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미얀마 독립 초기 로힝야족은 독립 조건 덕분에 탄압을 면했지만, 1962년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면서 처지가 바뀌었다.

로힝야족은 농장 경영계급에서 탄압받는 소수 부족이 됐다. 군부정권이 시민권법을 개정한 1982년, 로힝야족은 시민권마저 박탈당했다. 이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해방 운동도 제한됐다.

6. 싸우거나 탈출하거나

가난과 핍박에 몰린 로힝야족은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미얀마군에 맞서거나, 미얀마 밖으로 탈출했다.

1978년 미얀마 군부는 무슬림 반군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로힝야족을 대거 탄압했다. 이때 로힝야족 20만 명가량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이후 미얀마를 떠나는 난민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배를 타고 미얀마를 탈출한 일부 로힝야족은 동남아 어느 국가에서도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

탈출하지 않은 로힝야족 일부는 미얀마 군부에 맞섰다. 지난 2012년,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로힝야족 남성이 미얀마 라카인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원인이었다. 이때 200여 명이 숨졌는데, 대부분은 로힝야족이었다.

지난달 25일에는 미얀마군과 로힝야족 반군 사이에 사상 최악의 유혈 충돌이 있었다. 로힝야족 반군이 경찰 초소를 습격하면서 발생한 충돌이었다. 이 사태로 희생자가 급증하고 난민들이 급증했다. 유엔(UN)은 이 사태를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7. 로힝야족이 구호 물품을 받기 어려운 이유

최근 국제 구호 단체들은 고민에 빠졌다. 로힝야족에게 가야 할 구호 물품들조차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각)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는 로힝야족을 위한 구호 물품이 실려 있는 선박이 파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불교도 300여 명으로 이뤄진 시위대가 구호 물품이 담긴 선박에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 활동을 막았다.

로힝야 난민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한 달간 방글라데시로 넘어온 로힝야족이 45만 명에 이르면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8. 로힝야족 사태에 눈 감은 아웅산 수치

미얀마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최근 태도를 바꿔 로힝야족 사태에 관해 국제사회 감시와 개입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수치 자문역은 지난달 사상 최악의 유혈사태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유혈사태에 관한 소식이 '가짜 뉴스'라며 사태 책임을 반정부 무장집단에 돌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1991년 받은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비판이 이어지자 수치 자문역은 "난민 송환을 위해 신원확인 절차에 착수할 용의가 있다"며 "국제적 감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치 자문역을 향해 국제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미얀마 내부에서 수치 자문역은 오히려 인기도가 올라가고 있다.

9. 한국은 뭘 하고 있을까

한국 정부와 현지 한국 교민 단체도 로힝야 난민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주재 한국대사관은 지난 21일 "피난민 지원을 위해 국제이주기구(IOM)를 통해 150만 달러(약 17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지 교민 단체도 성금과 생필품, 의류 등을 기증하기로 했다.

한편, 지난 7월 25일 기준 한국이 수용한 로힝야 난민은 90명 가까이 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22명, 지난해 34명, 지난 7월 30명이 난민으로 수용됐다.

지난 7월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미얀마 재정착난민 난민 가족들이 여행증명서를 흔들어 보이며 입국심사장을 통과하고 있다. 이날 입국한 재정착난민은 4가족 34명으로 지난 3월부터 심사를 거쳐 선발, 주 태국한국대사관으로 부터 한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기초 적응교육을 마치고 입국했다 / 뉴스1
지난 7월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미얀마 재정착난민 난민 가족들이 여행증명서를 흔들어 보이며 입국심사장을 통과하고 있다. 이날 입국한 재정착난민은 4가족 34명으로 지난 3월부터 심사를 거쳐 선발, 주 태국한국대사관으로 부터 한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기초 적응교육을 마치고 입국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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