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엄마들의 특별한 나들이...'엄마의 가을'

2017-09-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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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들의 특별한 휴가...'엄마의 가을'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장애아 어머니들이

장애아 엄마들의 특별한 휴가...'엄마의 가을'

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장애아 어머니들이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 밀알복지재단
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장애아 어머니들이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 밀알복지재단

지난 8일 오후 8시, 동해안 인근. 교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이들은 모두 중증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여가시간을 가져 본 적 없는 엄마들이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과 MBC나눔(대표이사 홍곤표)을 통해 ‘힐링여행’에 나섰다.

“저에게 ‘여행 가시겠어요?’ 했을 때 꿈 같았어요. ‘여행이요? 보내주세요!’ 그랬죠. 고은이 낳기 전에도 혼자만의 여행은 한번도 가 본적 없었거든요. 53년만에 처음으로 오로지 저를 위한 여행을 간 거에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구름을 나는 기분이었겠어요.”
52년만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이애숙씨(53). / 밀알복지재단
52년만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이애숙씨(53). / 밀알복지재단

뇌병변장애, 희소난치성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을 앓는 정고은(7)양의 어머니 이애숙씨(53). 딸 고은이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건 임신 7개월째였다. 병원 검진을 하다 뇌실이 확장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출산 후 상황은 달랐다. 갓 태어난 고은이의 뇌량(좌, 우뇌를 감싸고 있는 구조물)이 없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은이에겐 간질 증상까지 나타났다. 소아 간질 중 2%를 차지한다는 희소난치성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애숙씨의 삶은 쉴 틈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한부모가정으로, 홀로 고은이의 양육과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장애로 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은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의 몸 이곳 저곳엔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훌쩍 커버린 고은이를 안고 다니다 오른쪽 어깨 근육이 파열되고, 생업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엄마는 병원에 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고은이가 잠에서 깨는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해, 다시 잠이 드는 늦은 밤까지 엄마를 위한 시간은 몇 분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뇌병변장애와 웨스트증후군을 앓는 딸 고은이(오른쪽)와 이애숙씨의 모습 / 밀알복지재단
뇌병변장애와 웨스트증후군을 앓는 딸 고은이(오른쪽)와 이애숙씨의 모습 / 밀알복지재단
“고은이가 보통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요. 경기를 하면서 일어나는데, 그거 달래고 나서 밥 먹이고, 씻기고, 주간보호센터 보내고 나면 부업을 시작해요. 그렇게 일 하다가 오후 4시 30분이 되면 다시 고은이를 데리러 가요. 집에 돌아와서 고은이 밥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아주고 나면 9시쯤 됩니다. 고은이가 잠이 들면 그때부터 부업을 시작하는데, 고은이가 잘 때 몇 차례 경기를 일으키거든요. 그래서 고은이 곁을 지키며 일을 해요. 보통 새벽 1-2시까지 하고, 어쩔 땐 밤을 새기도 해요.”

장애아동을 둔 대부분의 가정이 이애숙씨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2014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장애아동 및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아동의 주양육자는 평일 평균 12.34시간, 주말과 공휴일에는 18.43시간을 자녀를 돌보는 데 사용한다고 나타났다. 이는 2009년 기준 우리나라 부모의 자녀 돌봄 시간이 56분이라는 통계청 자료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이에 밀알복지재단과 MBC나눔은 이애숙씨와 같은 상황을 겪는 부모들에게 ‘힐링’을 선물하고자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9월 7일부터 9일까지 동해안 인근으로 장애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정의 어머니 13명을 초대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날 모인 어머니들은 동해안 일대 관광은 물론, 메이크오버와 스냅사진 촬영, 토크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양육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이들은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다지기도 했다.

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장애아 어머니들이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 밀알복지재단
모처럼만의 휴가를 갖게 된 장애아 어머니들이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 밀알복지재단

여행에 참여한 이애숙씨는 “장애아를 둔 엄마들의 고충을 알아주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여행을 다녀온 후, 여전히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느라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기쁘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를 돌보느라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는 시간만큼은 엄마가 아닌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위로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는 “중증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개인적인 여가는 물론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십여 년을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부모들에게 특별한 휴가를 선물해주고 싶어 이번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며 “이번 여행이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지치고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장애아 어머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힐링여행은 28일 목요일 낮 1시 10분 MBC 나눔 특집 <엄마의 가을>을 통해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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