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호주서 피살'... 숨진 한국 여대생의 부모가 보낸 공개서한

2017-10-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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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참혹하게 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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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정의가 존재함을 믿고, 그 정의가 실현되기를 믿으며 기다려 왔지만 2017년 10월 5일 목요일, 우리가 마주한 믿음은 암담하고 두 번째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2013년 11월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살해된 한국인 대학생 반은지(당시 22세)씨의 부모가 최근 재판이 기약 없이 또 중단된 데 대해 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생생히 전하는 공개서한을 13일 호주 사회에 보냈다.

워킹홀리데이(워홀)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던 반씨는 새벽에 일터에 나가다 호주 청년 알렉스 맥이완(23)으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다.

하지만 가해자 맥이완은 지난 5일 법정에서 환청을 호소, 배심원단으로부터 심리 상태가 재판에 부적합하다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그에 대한 처벌은 현재로는 요원한 상태다.

반씨 부모인 반형규·정숙분 씨는 공동서한에서 호주 사법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보다는 가해자가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우선시되고 있는 현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반씨 부모는 재판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브리즈번에 입국, 지난 5일 배심원단이 재판 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줄곧 법정에 나가 재판을 지켜봤다.

두 사람은 서한에서 딸에 대한 사건이 "백인에 의한 아시아인의 죽음이었는데 배심원단(12명) 모두 백인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또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라는 피고인 측 주장에 "이미 몇 차례 정신 감정을 거쳐 '재판 심리가 가능한 상태'로 판별, 재판이 열리게 됐는데 이번의 중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동안의 치료나 정신감정의 신뢰도는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이번 재판의 중심이 유·무죄 판단보다 정신상태로 옮겨간 데 대해 "이 재판의 중심은 한 여성의 죽음과 당시 피고인의 정신상태가 어떠했던가이지, 현재 피고인의 상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딸의 죽음이라는 본래의 고통에, 재판의 중지라는 고통이 더해져 또 다른 기다림이 생겼다"며 "피고가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까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끝을 기다릴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반씨 부모는 딸 추모수가 성장해 있고 사건 현장 근처의 딸 사진과 꽃다발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데는 "많은 이의 사랑과 관심을 느낀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담당 판사와 검사, 피해자 지원센터 관계자 등 감사할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딸의 부재는 무엇도 대신할 수 없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딸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웃으며 살아갈 것"이라며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글을 맺었다.

아버지 반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재판의 결말을 보기 위해 왔는데 중단이 되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며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재판이 첫주만 하더라도 별 이상 없이 진행되는 듯하더니 며칠의 휴식 후인 2주 때부터는 갑자기 '환청이 들린다'거나 '이상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며 피고인이 후회나 반성의 빛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딸이 사건이 그대로 잊히지 않도록 양국 정부와 국민이 지속해서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아버지 반 씨는 주시드니 총영사관을 통해 호주 주요 언론사에 서한을 보냈으며 사건이 난 퀸즐랜드 지역지인 '쿠리어 메일'이 인터넷판에 편지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또 빅토리아 지역지인 '디 에이지'도 인터넷판에 서한의 전문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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