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말고 공유” 옷을 돌려 입는 젊은 여성들

2017-10-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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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렸더니 오히려 입을 게 많아졌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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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요? 소유말고 공유해 보세요"

직장인 배수연(여・31) 씨는 지난 8월 의류 공유 서비스에 가입했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 서서 '옷을 사도 왜 입을 게 없냐'고 푸념하다 내린 결정이다.

서비스 내용은 이렇다. 매달 8만 원씩 낸다. 한번 빌린 옷은 10일 동안 입을 수 있으며 옷을 반납하면 또 다른 옷을 빌릴 수 있다. 한 달 동안 빌릴 수 있는 옷은 총 4 벌이다.

배수연 씨는 "처음에는 한 달에 8만 원이나 내는데 내 것이 되는 옷이 없으니까 오히려 낭비 아닌가 싶었다"며 "서비스를 이용해 보니 옷장에 옷이 많든 적든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배 씨는 "옷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렸더니 오히려 입을 게 많아졌다"고 했다.

더클로젯 제공
더클로젯 제공

최근 20대 후반, 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의류 공유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SK텔레콤 자회사인 SK플래닛이 지난해 9월 론칭한 의류 공유 서비스 '프로젝트앤'은 회원이 30만 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두 달 동안 가입자 수가 약 10만 명이 늘었다.

지난해 9월 1일 서비스를 시작한 패션 공유 플랫폼 '더클로젯'도 1년간 매출 성장이 30배나 늘었다. 특히 최근 3개월 동안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 '의류 공유 서비스'가 최근 '핫'한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젊은 여성들은 의류 공유 서비스를 두고 '신세계'라고 한다. 과거에도 정장, 한복 등을 대여해주는 업체들이 있긴 했지만 평상시에 입는 '데일리룩'을 빌려주는 서비스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근래의 일이다.

'일회성 대여'로 그치지 않는 것도 차별점이다. 의류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옷을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빌릴 수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월 정액권을 구매하고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에서 원하는 옷을 주문하면 된다. 주문한 옷은 박스에 포장돼 배달되며 다른 옷을 받을 때 반납하면 된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번 주문할 때마다 한 벌씩만 빌릴 수 있다. 요금을 더 내면 추가 대여도 가능하다.

의류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세탁과 포장이다. 전문 세탁업체와 제휴를 맺어 청결 상태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새 옷처럼 포장해 배송한다. 의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취지다.

의류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이모(여・34) 씨는 "잘 관리돼 오기는 하지만 새 옷과 차이는 있다"고 했다. 이어 "친언니와 옷을 공유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며 "서로 옷장을 개방하는 순간 불편함도 생기지만 그만큼 입을 옷도 많아진다"고 덧붙였다. 이용자들 후기에 따르면 "새 옷인 듯 새 옷 아닌 새 옷 같은" 셈이다.

지난해 12월 '프로젝트앤'은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프로젝트앤은 팝업스토어에서 방문 고객들에게 스타일링에 대한 상담을 해줬다 / 프로젝트앤 제공
지난해 12월 '프로젝트앤'은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프로젝트앤은 팝업스토어에서 방문 고객들에게 스타일링에 대한 상담을 해줬다 / 프로젝트앤 제공

SK플래닛이 만든 의류 공유 서비스 '프로젝트앤'의 이교택 매니저는 의류공유서비스를 '스트리밍'에 비유했다. '스트리밍'처럼 음원을 구매하지 않고 잠깐 사용하는 데만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 매니저는 "과거에는 음반을 구매해서 음악을 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다"며 "패션 시장에도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봤다. 많은 옷을 소장해봤자 물리적인 공간만 차지하지 않나. 패션 아이템도 소장하지 않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잭트앤은 유행에 민감한 여성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했다. 매번 선뜻 구매하기가 어려운 고가 브랜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구비해뒀다. 이교택 매니저는 "소비자들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면서 최근 의류 공유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클로젯 제공
더클로젯 제공

'더 클로젯'은 업체가 옷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서 옷을 받아 다른 일반인들에게 빌려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중간에서 수요자와 공급자를 중개하는 방식이다.

물론 '중고시장'처럼 빌려주는 이와 빌리는 이가 바로 만나 연결되는 건 아니다. 옷을 업체에 맡기면, 업체 측이 그 옷을 활용해 빌리는 사람을 선정하고 관리한다.

옷을 빌려준 이용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옷을 빌릴 수 있다. 만약 옷이나 가방을 빌리고 싶지 않다면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성주희 더클로젯 대표는 회사 설립 배경에 대해 "다들 '옷장을 열어도 입을 게 없다'고 하지만 실은 정말로 옷이 없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했다.

더클로젯이 처음부터 이용자에게 패션 아이템을 빌렸던 건 아니다. 성 대표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수요가 몰려 공급이 어려울 정도였다. 생각을 해보니 우리 모두에게 옷이 있더라. 이 옷을 나눠쓰면 어떨까 싶어 올해 2월부터 쉐어링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방 30개로 시작한 더클로젯은 현재 가방과 원피스를 포함해 600점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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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공유 경제를 기반으로 한 '의류 공유 서비스'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다. 공유 경제는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자동차, 책 등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러 명이 공유해 쓰는 것을 말한다.

대학생 한지희(여・23) 씨는 "패션도 양극화가 심하다. '평생 한 번 입어볼 수 있을까?' 싶은 고가 브랜드도 있는데 사지 않고 공유할 수 있다면 부담이 덜하지 않냐"며 "취업하자마자 의류 공유 서비스에 가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성장 시대인데 갖고 싶은 물건은 점점 많아진다. 공유 경제만이 이런 모순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공유 경제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연예인들은 오래전부터 패션 업체로부터 협찬을 받아왔다. 협찬도 공유경제라고 할 수 있다"며 "공유경제 개념이 의류 산업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용을 절약하면서 더 다양한 상품을 사용하는 게 전 세계적인 소비 트렌드다.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영국 걸 밋츠 드레스, 일본 에어 클로젯 등 해외 의류 공유 서비스는 큰 성공을 거뒀다.

오히려 한국은 아직까지 공유 경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편이다. 강성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존 사업자 반발 등에 가로막혀 아직까지 공유경제를 활용한 업체가 많지 않다"면서도 "공유경제는 '인터넷'이 중계 역할을 해준다. 한국처럼 SNS 등 플랫폼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공유 경제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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