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킨 박사, 매일 한 마리씩 먹어요” 치킨대학 주상집 원장

2017-10-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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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는 공부를 아예 하지 않았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이하 위키트리
이하 위키트리

"여기가 온 나라 치킨 박사가 모인 곳인가?"

BBQ 치킨대학 연구실 문을 열자 하얀 가운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몇몇 연구원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듯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구실 한쪽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중년 남성을 발견했다. '치킨 박사' 주상집(60) 치킨대학 원장이었다. 주 원장은 닭 볏이 그려진 파란 유니폼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연구실 내부 주상집 원장 개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벽 곳곳이 치킨 개발 연표로 도배돼 있었다. 진열대와 찬장에는 식용유와 소스 수십여 개가 올라와 있었다. 상상했던 '치킨 박사' 방 그대로였다.

주상집 원장은 33년째 식품 개발 연구를 했다. 제너시스 BBQ에는 18년 전인 2000년 5월 15일 입사했다. 그가 지금까지 개발한 음식은 2500여 개가 넘는다.

◈ "먹으면 딱 안다" 출근하자마자 치킨 먹는 남자

치킨대학은 경기도 이천시 미장면에 있다. BBQ가 외식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치킨 관련 지식과 경영 실무를 가르치기 위해 1999년 설립했다. 맥도날드 '햄버거 대학'과 비슷한 개념이다.

주상집 원장은 "지금까지 내가 먹은 닭이 몇천 마리는 될 것"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치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매일 어떤 치킨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팀장부터 불러 '오늘은 ㅇㅇㅇ 치킨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죠. 여러 메뉴를 함께 먹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연구 중이거나 트렌드와 부합하는 치킨을 먹습니다"

주상집 원장은 "세계 각지를 돌며 거의 모든 치킨을 먹어봤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웬만한 치킨은 먹어보면 딱 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타사 치킨도 먹습니다. 연구해야 하니까요. 신제품 소식이 들리면 바로 주문합니다. 먹으면 딱 압니다. 감이 옵니다. 제가 연구원들에게 말하죠. '야, 이 치킨 경쟁력 있네, 이 치킨은 경쟁력 무시해도 되겠다!'"

그는 치킨만큼이나 과자도 많이 먹는다. 과자 시장이 치킨 시장보다 유행을 앞서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좋은 치킨을 만들려면 대중이 좋아하는 맛을 알아야 해요. 맛을 연구하려면 과자 시장을 봐야 하죠. 해외 시장도 연구 대상입니다. 괌이나 일본만 가도 과자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얼마 전엔 일본에서 과자를 왕창 사 왔습니다. 다 먹고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와사비' 과자를 먹으며 '와사비' 치킨을 연구하는 거죠.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 '문제 소년'에서 '치킨 박사'로

아무리 치킨이 맛있어도 일 때문에 먹다 보면 힘들지 않을까. 놀랍게도 주 원장은 치킨이 지겨웠던 적이 없다.

"치킨은 내가 언제나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에요. 엊그제에도 부추를 삶아서 치킨이랑 먹었어요. (웃음) 물론 스트레스받을 때는 있지요.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만들지 고민하니까. 스트레스 무지 받습니다. 치킨에 대한 애정으로 버티는 겁니다. 저는 평생 치킨 하나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주상집 원장은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그가 사는 집은 산골짜기에 있었다. 학교에 가려면 호롱불을 챙겨 10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근성 하나만은 끝내주게 좋았던 그는 매일 그 거리를 다녔다.

중학교 때였다. 주 원장은 지역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체육 교사는 그에게 마라톤을 하라고 권유했다. 그는 그렇게 운동부가 됐다. 종일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공부는 아예 하지 않았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주상집 원장은 마라톤을 그만뒀다. 선수로 대성할 정도로 마라톤을 잘 하는 건 아니라는 냉정한 판단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운동을 그만뒀으니 공부로 대학을 가야 하는데 워낙 오래 연필을 놓은 탓에 기초가 아예 없었다. 4년제 대학에 갈 성적도 안 됐다. 주 원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먹는 일'이 내 전공이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제가 공부는 못했지만, 요리는 좀 했거든요. 12살 때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였어요. 꿩이나 참새도 잡아봤고요. 꿩고기 요리도 아주 잘 했습니다. 형들이 맛있다고 칭찬하던 기억이 납니다"

주상집 원장은 광주 소재 2년제 대학 식품과에 원서를 넣었다. 그는 운 좋게도 합격 통지를 받았다. 주 원장은 대학을 무사히 마쳤다. 졸업 이후에는 대상그룹에 입사했다. 청정원 등 각종 식재료를 만드는 회사였다. 그는 식품 연구 업무에서 두각을 발휘했다.

2000년 5월 그는 제너시스 BBQ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43살이던 주 원장은 만학도가 되기로 했다. '맛'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도움을 받아 대전 소재 4년제 대학교에 편입했다. 이후에는 관광호텔외식경영 석사에 도전했다. 53살 때 그는 박사가 됐다.

"고향 친구들이 제 얘기 들으면 놀라서 입이 벌어져요. 어렸을 때 완전 '문제아'였으니까. 맨날 담배 피우고, 서클 활동하고, 운동만 하던 주상집이 치킨 박사가 됐으니까. 전화도 와요. '야 주상집! 너 정말 치킨대학 원장이야? 문제아였잖아! 상상이 안 가!' 요즘도 이런 소리 듣습니다. (웃음)"

◈ "타협은 없다" 원칙주의자가 만드는 치킨은 다르다

주상집 원장은 자신이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치킨 하나로 자수성가 신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만든 치킨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10년쯤 전에 '황금 올리브 치킨'을 만들었어요. 우리 '베스트' 메뉴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입니다. 농담 아닙니다. 내가 세계 50개국을 가봤습니다. 미국, 베트남, 터키, 유럽... 안 가본 데가 없습니다. 어딜 가든 '황금 올리브 치킨' 먹고 엄지를 척 올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주상집 원장은 자기 성공 비결이 근성과 고지식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맛은 타협해서도 안 되고 양보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내가 프랜차이즈 사장님들께 피를 토하며 하는 얘기 하나만 하겠다"라고 말했다.

"치킨 옷 입힐 때 베타믹스랑 파우더가 필요하잖아요. 베타믹스는 옷을 입히기 전 쓰는 반죽을 말합니다. 이때 아주 차가운 얼음물을 써야 해요. 몇몇 사장님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정수기 물을 대충 받아서 씁니다. 물론 그 물도 시원하겠죠. 22도, 23도는 될 테니까"

주 원장은 "그 정도로 맛있는 치킨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정수기 물로는 안 됩니다. 훨씬 더 차가운 물을 써야 합니다. 손이 시릴 것 같은 찬 물이요. 그래야 옷이 바삭바삭해집니다. 색깔도 예쁜 황금으로 나오고요. 내가 이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몇몇 사장님은 안 지키더라고요. 얼음물 쓸 시간이 없다는 거죠. (이해는 하지만) 속상하죠. 아무리 바빠도 고집 있게 얼음물 쓰는 사장님들 가게는 매출이 확실히 다릅니다"

주 원장은 "첫째도 매뉴얼, 둘째도 매뉴얼"이라고 말했다. 주 원장은 연구실 한쪽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자물쇠가 달린 방이 나왔다. 그는 이곳에 2500여 개가 넘는 메뉴에 대한 조리법과 매뉴얼을 기록해두었다고 말했다.

"1995년에 내가 만든 조미료는 뭐지? 2002년 만든 그 치킨은 조리 방식이 어떻게 되지? 이 모든 내용을 이곳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비밀 실험도 하죠. 모든 실험과 연구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해둡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제 매뉴얼이 됩니다"

내부가 궁금했다. 들어가고 싶었다. 주 원장은 자물쇠를 보여주며 웃었다.

"아무도 못 들어와요. 전 세계에서 두 명만 들어올 수 있죠. 저랑 회장님. '비밀의 방'입니다"

◈ 후학에게 '바통' 넘겨줄 순간을 꿈꾸며

주상집 원장은 고집 센 원칙주의자다. 고집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가 일생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도 "실패"한 메뉴가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3월 '꼬꼬넛 치킨'을 출시했어요. 10년 넘게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치킨입니다. 맛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반응이 크지 않았어요"

주 원장은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30년 넘는 제 연구 인생 첫 실패였습니다. 아주 힘들었습니다. 아주 반성했습니다.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죠. 연령대별 맛 검사를 소홀히 했더군요. 내가 생각했을 때 맛있으니까, 연구원들도 맛있다고 하니까 무조건 맛있을 거란 확신을 가져버렸던 거죠"

지난달 26일 BBQ는 신메뉴를 내놓았다. 시리얼, 양파, 마늘 플레이크가 올라간 '서프라이드' 치킨이다. 양념과 프라이드를 섞은 맛이 난다. 주 원장은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만들었다"라며 "표본 검사를 철저하게 거쳤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맛을 날카롭게 보는 건 사실입니다. 치킨 맛은 누구보다도 잘 본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혼자 모든 판단을 하지는 않아요.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단맛을 선호하고 신맛을 멀리하게 됩니다. 통계적으로 그래요. 내 입맛은 '5000만분의 1'입니다. 교육생들에게도 늘 이리 말합니다"

주 원장은 아들에게도 자주 치킨을 사준다. 아들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아들은 대학생이다.

"애가 제 아빠 닮아서 치킨 맛을 잘 보더라고요. '아빠, 이게 맛은 좋은데 플레이크 자꾸 떨어져서 별로야' 이런 식으로 조언 많이 해줍니다. 물론 집에서 치킨 시켜 먹으면 아내가 한마디 하죠. 닭 장사하는 사람이 집에서도 닭 먹는다고. (웃음)"

주상집 원장은 이제 6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꿈이 많다. 요즘은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50개가 넘는 나라를 돌아다녀 보니 중국어만 할 줄 알면 어디서든 문제가 없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동시에 그는 후학에게 이 자리를 물려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는 소싯적 마라토너를 꿈꾸던 사람답게 "바통"이라는 단어를 넣어 포부를 말했다.

"슬슬 후학에게 마라톤 바통을 넘겨줄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제일 앞에 있지만 언젠가 후배들이 앞장서는 순간이 올 겁니다. 저는 역사의 뒤안길로 가야죠. 하지만 제 목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만들고 죽을 겁니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