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으로 커플들ㄱㄱ” 새 데이트 코스로 떠오른 '배틀그라운드'

2017-10-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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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에서 같이 배틀그라운드하는 커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블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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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배틀그라운드' 열풍이 만든 신(新) 풍속도 중 하나는 피시방이 '데이트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배틀그라운드를 즐긴다는 직장인 오원창(28) 씨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를 두어 번 같이 해봤지만 여자친구가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배틀그라운드는 처음부터 외우거나 공부해야 할 게 별로 없어 같이 시작해봤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배틀그라운드에는 금방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오 씨 커플은 1달에 2번 정도 피시방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며 데이트를 한다.

피시방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오원창 씨 커플 / 김원상 기자
피시방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오원창 씨 커플 / 김원상 기자

유튜브에서 '제라드의 게임방송'을 운영 중인 '제라드' 씨는 아내와 함께 배틀그라운드 방송까지 하고 있다. 아내는 게임과 친하지 않은 소위 '겜알못'이었다. 그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방송 때문에 혼자 게임할 때마다 아내가 많이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오버워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게임을 해봤지만, 아내는 매번 시큰둥해 했다. 그러던 중 어쩌다 배틀그라운드를 같이 하게 됐고 의외로 아내가 매우 맘에 들어했다. '제라드' 씨는 '이참에 컴퓨터를 하나 더 구입해 집에서 부부가 같이 하자'고 결심했다. 아래 영상은 부부가 같이 처음으로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한 방송 영상이다.

유튜브, 제라드의 게임방송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배틀그라운드'가 커플에게 좋은 여러 요인들이 있다. 일단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이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더 많은 대화를 해야 생존에 유리하다. 서로 필요한 아이템을 말해주고 총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정보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를 논의하는 등 게임은 끊임 없는 대화를 이끌어낸다.

게임을 하다가도, 게임 외적인 대화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배틀그라운드는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아니다.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 한숨 돌릴 수 있다.

집에서 부부끼리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블로거 '꼼지락곰냥' 씨는 게임에서 남편과 나눴던 특별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녀는 "거의 20분 넘게 한 장소에 갇혀 있었다"며 "둘이 있다보니 서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녀는 블로그에 함께 즐거웠던 순간을 녹화해 기록하기도 했다.

꼼지락곰냥 블로그

커플들은 보통 배틀그라운드에서 듀오(2인), 스쿼드(4인) 모드를 즐긴다.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 모드는 얼마나 유기적으로 팀 플레이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꼼지락곰냥 씨는 "배그는 생존게임이다보니 꼭 샷발(사격 능력)로만 승부보는 게 아니다"며 "서로 의논하고 구급 아이템이나 총알을 나누고 서로 뒤를 봐주는 등 '같이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 "언제 어디서 적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긴장과 공포감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게임을 함으로써 두 사람은 심리적으로 더 긴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원창 씨는 "안개 낀 맵에서 처음 우승한 순간 피시방이라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 동작을 했다"며 "여자친구 표정이 정말 기뻐보였다"고 그 순간을 기억했다.

꼼지락곰냥 씨는 "둘 다 산 채로 1등을 하면 너무 기뻐서 서로 안고 고함지르고 난리가 난다"고 했다. 배틀그라운드는 희노애락을 밀접하게 함께 할 수 있어 더 돈독한 사이가 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고 했다.

배틀그라운드 경쟁작인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를 비롯한 많은 게임들은 두 팀이 붙어 한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플레이어 절반은 승리를 거둬 즐겁고 다른 절반은 패배 스트레스를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패배 스트레스는 팀원간 불화를 일으키곤 한다. 종종 채팅이나 음성을 이용해 팀원끼리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게임을 그만두기도 한다. 커플도 마찬가지다. 재밌자고 한 게임에서 서로 잘못을 탓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조금 다르다. 남자친구와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임모 씨는 "배틀그라운드는 100명 중에 한 명, 듀오로는 50팀 중 한 팀, 스쿼드는 25팀 중에서 한 팀이 우승한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꼭 이겨도 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생긴다"고 말했다.

배틀그라운드는 다수가 경쟁한다. 이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승리에 대한 강한 강박에서 자유롭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또 중요한 요소는 '운'이다. 게임에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좁아져 플레이어를 죽이는 자기장이 있다. 이 자기장은 무작위로 좁혀진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과 뛰어난 사격 솜씨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장이 불리하게 좁혀지면 사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배틀그라운드에서 지더라도 플레이어는 화를 받거나 큰 스트레스를 겪지 않는다. "어쩔 수 없네"라는 아쉬운 말 한 마디면 된다. 커플들이 승부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셈이다.

home 김원상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