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왜 여기서...” 애꿎은 피해자가 된 숙박업소들

2017-11-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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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부 고객들이 익명성을 악용할 때 생기는 피해를 업주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텔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시내 골목 / 이정은 기자
모텔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시내 골목 / 이정은 기자

70대 노인 A씨는 노후자금을 털어 경기도의 한 한적한 마을에 펜션을 지었다. 지난 7월, 그가 환영하며 맞이했던 손님 4명이 펜션에서 집단 자살했다.

이 사건 후 그는 다른 손님들 예약을 단 한 건도 받을 수 없다. 펜션에는 손님 대신 경찰과 기자들만 북적였다. 동네 주민들은 "이 집이 그 집단 자살한 곳이냐"며 수군댔다. A씨는 개업 1년 만에 펜션 문을 닫아야 했다.

숙박업소(기사에 나온 업소가 아닙니다) / 이하 셔터스톡
숙박업소(기사에 나온 업소가 아닙니다) / 이하 셔터스톡

A씨가 잃은 돈만 20억 원에 가깝다. 건강도 잃었다. 그는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새로운 곳에서 펜션을 지었는데, 이런 봉변을 당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펜션은 내놓았지만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 A씨는 "소문이 나서 집이 팔리겠냐”며 “이제 이런 대화도 성가시다"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국 대부분 펜션, 특히 모텔은 마음만 먹으면 투숙객들이 신상 정보를 숨길 수 있다. 이름이나 본거지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해 일부 고객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벌이곤 한다. 업주들은 보상받기가 어렵다.

'모텔 객실을 빌려준 걸 후회하게 만든 고객이 있냐'는 질문에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B모텔 관계자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침대 시트에 묻은 피를 보는 건 놀랍지도 않다. 한 번은 게이 커플이 '좋은 시간'을 보내러 왔는데, 관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침대와 이불 곳곳에 대변이 왕창 묻어 있었다. 충격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B모텔 입구에는 휴대전화 충전기가 들어있는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이 충전기는 신분증을 맡겨야 빌릴 수 있다. 관계자는 "전에는 객실에 비치해뒀는데, 손님들이 그냥 가져가는 일이 너무 많아서 빌려주는 방법으로 바꿨다. 컴퓨터나 드라이기는 아예 꽁꽁 묶어놨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모텔 입구에 놓인 휴대전화 충전기 / 이정은 기자
서울 시내 한 모텔 입구에 놓인 휴대전화 충전기 / 이정은 기자

C모텔에 들어가서 관리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얘길 다 들으려면 오늘 집에 못 가실 거다. 몇 주 전엔 술 취한 손님이 수도꼭지를 열고 잠들어 건물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손님은 휑 가버리면 끝이다"

서울 은평구 D모텔 업주는 "이상한 고객 가리자면 장사 못 한다. 아예 마음을 내려놓고 산다"고 했다.

"다른 건 좀 참겠는데 머리카락은 좀 안 자르면 좋겠다(헛웃음). 베개, 이불, 수건에 머리카락들이 다 박혀 있는데…. 일일이 빼다 결국 다 버려야 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E씨도 최근 장만한 새 침구류를 버려야 했다. E씨는 "음식인지 뭔지를 흘렸는지 닦았는지, 이불이 완전 걸레가 돼 있었다"며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서 알았다. 이미 떠나기도 했지만, 혹시 인터넷에 이상한 글이 올라올까 두려워 참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숙박업소 주인들이 고객으로 인한 애꿎은 피해를 이겨내는 방법은 ‘인내심‘을 기르는 것뿐이다. 어떤 손님이 했는지 짐작만 할뿐, CCTV가 없으니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

수사기관들도 대개는 도움이 안 된다. 경찰이 나선다면 머리카락이나 지문 등으로 신원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F모텔 업주는 "딱 한 번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게 큰 사건이 아니다 보니 우리더러 '재수 없었다 생각하고 참으라'더라.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 시작도 안 됐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피해를 보상받은 경우가 있긴 했다. 인터넷 방송 BJ가 부산의 한 모텔 객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 때다. BJ가 스스로 인터넷에 방송한 내용이 명백한 증거로 남은 덕분이었다.

지난 5월 BJ 박 모(26) 씨는 인터넷 방송에서 전자화폐를 많이 받기 위해 모텔 객실을 빌려 그 안에서 날달걀을 던지고 밀가루를 뿌리는 등 극단적 행동을 했다. 재산피해는 300만 원에 달했다. 경찰은 박 씨 등 3명을 모텔 방을 훼손한 혐의(재물손괴)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렇다고 투숙 전 고객들 신상 정보를 확보하는 것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는 업주들이 많다. 강원도 모처에 펜션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G씨는 "고객들이 자세한 개인 정보를 묻는 걸 불편해할 수도 있다. 널린 게 펜션, 호텔, 모텔인데 고객을 유치하려면 개인정보를 챙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개인정보를 공개해야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숙박업중앙회 관계자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경험을 전수받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했다. 숙박업중앙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고객에게 책임을 묻기는 한계가 있다. 대신 지역별로 나뉜 조직에 가입해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도움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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