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만 왕복 6시간...통금까지 있다” 프로통학러들의 고단한 삶

2017-10-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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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대학생 최현준(23) 씨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난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shutterstock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shutterstock

서울 상계동에 사는 대학생 최현준(23) 씨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 통학하는 데만 왕복 5시간이 걸린다. 자취하거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며 강력히 반대한다.

최 씨가 학교까지 가는 데 거치는 지하철 정거장 수만 29개다. 7호선을 타고 경춘 전철이 있는 상봉역까지 약 20분간 이동한 뒤 기차를 타고 춘천역까지 1시간 40분을 간다. 학교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려면 약 10분을 더 소요한다. 최 씨는 "버스나 전철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실제로 드는 시간은 더 많다"라며 "축구를 좋아하는데 수업이 끝난 후 동기들과 경기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통학 시간도 긴데 '통금'까지 지켜야하는 경우도 있다. 통학시간이 1시간인 한 새내기 여대생은 “제일 늦게 귀가해본 시간이 밤 11시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이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해도 참석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참다못한 그는 “차라리 왕따가 되라고 고사를 지내시라”며 부모님에게 대들었지만 어머니는 “대학생이 되더니 기어오른다”고 말할 뿐이었다.

#전대숲이야기_684 '프로통학러'가 모든 대학생들에게 (제보자의 요청으로 학교 익명처리) "저는 올해 새내기, 스무살인 간호학과 여학생입니다. 전 여태껏 고지식한 부모님 밑에서 착하다면 착한 그런 딸로 살아왔습니...

전대숲-전국대학생 통합 대나무숲에 의해 게시 됨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최 씨처럼 '긴 통학시간'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가리켜 '프로 통학러'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Professional'과 통학하는 사람을 뜻하는 '통학러(통학+-ler)'를 합친 말이다. 본인이야말로 프로 통학러라고 밝힌 김모(여·26) 씨는 “오전 수업은 아예 포기했다. 주로 야간반을 신청해 듣는다”라고 했다.

김 씨는 경기도 파주시부터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한다. 왕복 6시간이 걸린다. 경의선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다시 3100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가 같은 방식으로 귀가하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김 씨는 “잠이 정말 부족하다. 주말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진이 빠져서 성적 관리가 힘들다”라고 했다.

◈ “걱정은 되는데...” 부모님이 밝힌 속마음

사정이 이렇지만 자식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부모님들이 많다. 대학 4학년 자녀를 둔 김명주(여·47) 씨는 "딸이 취업 준비에, 학업에 힘들어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면서도 "뉴스에 살인이나 강도 같은 사건이 나올 때마다 너무 걱정되고 불안해서 무조건 집에서 다니라고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힘든 걸 알면서도 곁에 두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자녀가 통학하고 있다는 학부모 40명에게 자녀의 자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상이 흉흉해서 자취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30명으로 압도적이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할까 봐”가 각각 5명, 3명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 2명은 “결혼이나 취업하면 어차피 따로 살 거라서”라고 답했다.

지난 2월 졸업한 딸을 둔 김치옥(여·50) 씨는 “딸이 4년 내내 통학했다. 이 문제로 정말 많이 싸웠다”라며 “그래도 자취는 허락 안 했다. 무서운 사건이 너무 많이 벌어져서다”라고 했다.

홍은희(여·47) 씨도 “이번에 딸이 신입생이 됐다. 환영회다 뭐다 술자리가 잦다”라며 “식당에서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간씩 일하느라 집에 잘 신경을 못 쓰는 편이다. 그래서 아예 걱정될 일 안 만들려고 딸 통금시간까지 10시로 정해 놨다”라고 말했다. 이어 “딸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하교하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난 적이 몇 번 있었다”라며 “그 이후로 더 불안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통합기숙사 '제중학사-법현학사' / 연합뉴스
연세대학교 통합기숙사 '제중학사-법현학사' / 연합뉴스

학부모들이 자취를 꺼리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 3월 전국 대학생 25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혼자 사는 학생 한 달 평균 주거비는 63만 원에 달했다.

대학들이 몰려 있는 신촌 지역 원룸 가격은 저렴한 곳은 보증금은 300~500만 원, 월세는 40~50만 원 정도였다. 지방은 더 싸지만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원도 원주 대학가 원룸 보증금이 최하 100만 원부터 최대 300만 원, 월세가 20만 원 후반대부터 30만 원 후반대까지였다. 결국 방세, 관리비, 전기세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40~60만 원 가까이가 주거비로 지출된다는 얘기다.

◈ 기숙사 들어가기도 쉽지 않아...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에게 '기숙사'는 좋은 대안이다. 기숙사는 한 달에 외박할 수 있는 횟수도 정해져 있다. 정확한 외박 사유를 제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른 학생을 기숙사에 데려오는 것도 안 되며 규칙을 일정 횟수 이상 어겼을 때는 바로 퇴실 조치가 내려진다. 통금 시간도 있다.

주거비용도 기숙사는 훨씬 저렴했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가 발표한 지난해 전국 대학 4인실 이상 기숙사비를 살펴봤더니 숭실대학교가 한 달에 28만 2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평균 월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한 달 기숙사비가 10만 원 이하인 대학도 58개나 됐다.

대학교 2학년 딸을 가진 이인상(52) 씨는 “딸이 불편해서 싫다고 하긴 했지만 기숙사라면 나가 살아도 괜찮다”라며 “자취하는 것보다 훨씬 안심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시간 통학생들에게는 기숙사에 입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기숙사에 성적순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 외에 취업 교육 프로그램, 동아리 등 학교 활동 참여 점수도 포함된다. 문제는 매일 몇 시간을 통학하는 데 허비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받으며 학교 활동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혜주(20) 씨는 “매일 4시간 정도를 통학하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한다”라며 “일단 통학을 시작하고 나면 성적을 나쁘게 받게 된다. 그럼 다음 학기에도 기숙사 입사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다시 장거리 통학을 해야 하고 또 좋은 성적을 못 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라고 토로했다.

여전히 낮은 기숙사 수용률도 문제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가 올해 5월 전국 186개 대학 기숙사 수용률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기숙사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학생이 약 14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학생 대비 기숙사 수용 가능 인원은 20.0%에 그쳤다. 물론 14.9%인 수도권 사립대에 비하면 지방 대학은 23.3%로 높았지만 여전히 기숙사에 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수용하기에는 낮은 수치였다.

◈ 시간 활용 달인?... "뻗어 자기 바쁘다"

하루 3시간 이상 버스나 지하철에서 보내는 '프로통학러'들은 주로 뭘 하며 그 시간을 보낼까?

장거리 통학생 10명에게 이동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물었더니 10명 모두 “자리에 앉으면 자고, 못 앉으면 휴대폰을 본다”라고 했다. 학생들은 “항상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라도 자야 버틸 수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평균 하루 통학시간을 4시간으로 잡고 주 5일 학교에 간다고 가정했을 때 일주일이면 20시간, 한 달이면 80시간이다. 일 년이면 960시간이나 된다. 장거리 통학생 대부분이 일 년에 960시간을 학교와 집을 오가며 ‘길거리’에서 보낸다.

통학 3년 차인 송민규(25) 씨는 “통학하면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일단 하루 몇 시간씩 오고 가는 거에 몸이 지친다. 집에 가서 과제까지 하고 나면 자정을 훌쩍 넘겨 자기 일쑤다. 당연히 잠은 버스에서 자게 된다”라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조우현(24) 씨도 “저녁에 집에 가는 학교 통학 버스를 타면 기사님들이 전부 불을 끈다. 40~50명 되는 애들이 전부 자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 스터디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싶다”라며 “여유가 전혀 없다. 매일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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