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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이 등장하는 영화 '헤드윅' / '헤드윅' 스틸컷


드랙퀸은 ‘크로스드레싱’을 일컫는 ‘드래그(drag)'와 ’퀸(queen)'을 합친 말이다. 크로스드레싱이란 반대 성별이 입는 옷을 입는 행위를 말한다. 즉 '드랙퀸'은 화려한 여장을 하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여장남자를 지칭한다.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 화려한 화장, 화려한 춤

흥겨운 팝음악에 맞춰 춤 추던 100여 명 클러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나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지난달 29일 홍대 클럽 '명월관', 새벽 1시가 될 무렵이었다. 

시계가 1시 정각을 치자, '드랙 퀸' 쿠시아 다이멍이 무대에 등장했다. 쿠시아는 검은 생머리 가발을 머리에 쓰고, 강렬하게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검고 진한 인조 속눈썹을 눈에 달았다. 검은 색과 황금 색이 뒤섞인, 일본 전통 의상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었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립싱크를 하며 춤췄다. 관객들이 열광했다.

공연하는 쿠시아 디아멍 / 이하 박수진 기자


약 5분 정도 공연이 끝나자 다음 공연자가 등장했다. 공연 초반 드랙퀸들은 대체로 로브 같은 겉옷으로 노출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연이 점점 고조에 이르자 겉옷을 하나둘 벗었다. 마침내 노출이 심한 의상이 등장하면서 관객들은 또 다시 환호했다.



이 여장남자들은 자신이 어떤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아는 듯했다. 무대 위 그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자기자신’이었다.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공연 중간쯤, 커다란 금발머리 가발을 쓴 드랙퀸이 등장했다. 화려한 춤을 추는 드랙퀸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십자가를 들이밀며 등장했다. 드랙퀸은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퀴어 문화를 억압하는 일부 종교단체에 대한 풍자 같았다.

무대 위 드랙퀸에게 자연스레 현금을 건네는 관객들도 있었다. 드랙퀸들은 지폐를 받아들고 기뻐했다. 그들은 종종 앞으로 다가와 관객과 악수도 했다. 관객들을 향해 큐피드 화살 모형을 날리기도 하고, 벗은 겉옷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명월관에서 열린 공연은 ‘미트마켓 파티(MEET MARKET PARTY)'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미트마켓 파티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LGBT 파티다. 올해로 6년째 열리고 있다. 

이날엔 드랙퀸 9명이 공연을 펼쳤다. 클럽에서 만난 인디가수 채 모(24) 씨는 "드랙퀸 쇼를 처음 본다. 오늘 공연을 보고 가수로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채 씨는 "그저 ‘노래에 맞춰 립싱크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쇼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위대한 아티스트 같았다. 그들이 자유롭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고 했다.


◈ "무대에 설 때면 최면에 걸린 느낌" 

환상적인 무대를 선 보인 4년차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은 한국에서 유명한 드랙퀸이다. 명월관에서 DJ 활동도 한다. 나이는 27살이다. 쿠시아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첫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을 때 메인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드랙퀸을 "스스로 정체성을 당당히 표출하고 LGBT 커뮤니티를 대신해 소리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이하 쿠시아 디아멍 인스타그램


쿠시아는 “아는 레즈비언 누나가 명월관에서 미트마켓 파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몇 없는 LGBT 파티였다. ‘드랙쇼’라는 콘텐츠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도맡게 된 지는 3~4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명월관에서 진행하는 파티는 모두 쿠시아가 기획한다. 공연 콘셉트를 잡고 다른 드랙퀸들을 섭외한다. 쿠시아에 따르면 미트마켓 파티는 1년에 3~4번 정도 개최된다.

공연 반응은 뜨겁다고 했다. 쿠시아는 "미트마켓은 다른 파티들과는 달리 비교적 친근한 하우스 파티 같은 느낌"이라며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게 얼굴에 보이고 공연도 굉장히 반응이 좋다”고 했다. 미트마켓 공연에서 한 레즈비언 커플이 탄생해 결혼까지 했다고 했다. 

쿠시아는 무대 위에 있을 때는 "최면이 걸린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공연하기 전에는 정말 보통 사람이었다가 무대로 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부터 나에게 최면이 걸리는 것 같다. 무대에서 내가 뭘 했는지는 팬들이 찍어준 영상을 보고 알 수 있다. 무대에 선 내 모습을 보면 이게 정말 내가 맞나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부산 퀴어문화축제 당시 쿠시아 디아멍 / photo.zoe


드랙퀸 공연을 하며 힘든 적도 있었다. 쿠시아는 “퀴어 문화 축제에서 (동성애) 혐오 세력 분들이 내 공연 영상을 따다가 ‘사탄 악령이 씌었다’고 퍼뜨린 적이 있다"며 "우리는 그저 축제를 위해 놀자고 하는 공연인데, 안 좋게 보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이 멋있다고 해줄 때, 연습하고 준비한 공연이 성공했다는 걸 알게 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쿠시아는 공연자로서 ‘항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공연을 본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스스로도 행복해진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드랙퀸 공연을 할 거냐는 질문에 쿠시아는 망설임 없이 "죽을 때까지"라고 대답했다. 쿠시아는 우선 한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될 때까지 열심히 드랙퀸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쿠시아 디아멍 일상 사진


드랙퀸 분장을 하지 않은 쿠시아는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청년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쿠시아에게 성 정체성 혼란을 느낀 적은 없냐고 물었다.

"어릴 때는 그랬어요. 어렸을 적 엄마 립스틱을 한번 발라보며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살면서 남자와 연애를 해보니 굳이 여자가 될 필요는 없겠다고 느꼈어요. 남자로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니까. 내 젠더에 관해 딱히 혼란은 없습니다." 

쿠시아는 "꼭 하나의 성별에만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지금 남자로도 살고 있고, 여자로도 살고 있고, 드랙퀸을 하며 제3의 성도 살고 있어요. 구분이 없죠. 사람들이 왜 하나의 성으로만 살지 않느냐고 물어도 내 인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남자인 모습으로 드랙퀸 공연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쿠시아는 체코에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다른 사람이 부른 노래로 공연하지만 훗날 내 목소리가 담긴 노래로 꼭 월드 투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쿠시아는 수줍게 웃었다.


◈ 드랙퀸 '정글'이 말하는 드랙문화 현실

좌=지난 8월 이태원 클럽 '트렁크'에서 진행된 드랙퀸 파티 '수퍼볼'에 참여한 정글, 우=분장하지 않은 정글 / 정글 인스타그램


'쿠시아' 말고 다른 드랙퀸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드랙퀸 ‘정글’을 만났다.


간단한 자기소개

정글이라고 한다. 2016년 6월부터 드랙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작업들을 하며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이는 30대.


예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연극영화과 전공이었다. 좀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일을 하고 싶어 대학을 자퇴하고 노래를 했었다. 이후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 한국 지사에서 10년 정도 일했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재미있게 일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드랙을 시작한 계기는?

10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한국을 떠나 파리로 갔었다. 처음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사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해외에서 1년 정도 지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다 우울증에 걸렸다.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반년 정도 지나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메이크업도 좋아하고 드랙쇼도 좋아하니까 드랙퀸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공연 예약이 잡히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드랙퀸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드랙에 대해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나?

어릴 때부터 드랙쇼 보는 걸 좋아했다. 미국 예능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도 시즌 1부터 꼬박꼬박 챙겨봤다. ‘루폴 안드레 찰스 (RuPaul Andre Charles)’라는 유명한 드랙퀸이 진행하는 여장남자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시즌 9까지 나왔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드랙퀸 '김치' /유튜브, Logo


이런 걸 보며 나도 드랙쇼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험도 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장기자랑을 할 때나 핼러윈 때 직접 드랙쇼를 했었다.


도전하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나?

내가 어느 수준까지 드랙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기에 망설여졌다. 그리고 사회가 부여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다. 그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내 정체성이 왜곡돼 비치는 게 조금 염려됐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여성성'이라는 것을 쉽게 비하하곤 한다. 이와 관련해 안주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유는 뭔가?

대개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게이인 사람들은 '여성스러운 남자'에게 매력을 덜 느낀다고 한다. 여성스러운 게이 남성은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드랙퀸 활동을 시작하기 전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드랙을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더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드랙퀸 생활을 하며 현실적으로 힘든 점?

한국에서는 드랙퀸 활동으로만 먹고 살기 힘들다. 일단 드랙은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이다. 어떤스타일의 드랙을 하게 되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비주얼적으로 욕심이 많은 나 같은 경우에는 돈이 좀 많이 든다. 드랙을 통한 수익금은 의상, 신발, 헤어에 거의 재투자해왔다. 생활을 위해 낮에는 향수 매장에서 일한다.


드랙을 하며 가장 기쁘고 보람찼던 순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난 8월 미국 시카고에 가서 공연했을 때.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미국까지 가서 공연을 할 줄은 몰랐다. 뿌듯했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에게 퀴어 동화책을 읽어줬을 때. 지난달 15일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드랙퀸 낭독회가 있었다. 그때 어린아이들 앞에서 치마 입는 걸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었다. 내 앞에 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도 치마입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야기를 시작하니 아이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바라봤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그 아이에게 제대로 잘 전달되고 있는지 걱정됐다.

지난달 15일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정글이 아이들에게 퀴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유튜브, 닷페이스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그 아이가 자기 정체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았으면 했다. 학교에서 놀림 받고 괴롭힘 당해도 당당히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자기 정체성을 억누르고 살아가면 놀림은 덜 받겠지만 훨씬 불행할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용기를 줬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퀴어 동화책을 읽어준 건 확실히 드랙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다.


드랙퀸 분장을 할 때 메이크업은 어떻게 배우는가? 의상은 어디서 마련하나?

사람마다 다르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에 대한 정보는 유튜브에 정말 많이 나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누구든지 예쁘게 꾸밀 수 있다. 옷은 조금 다른 문제다. 나 같은 경우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와 함께 의상을 직접 만든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어떤 룩이 가장 잘 맞을지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드랙퀸 신은 크지 않다.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드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셰익스피어 때다. 그 후 드랙이 미국에서 메인스트림 수준으로 올라갈 때까지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렸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로 드랙에 대한 편견이 전환된 덕분이다. 한국 드랙퀸 시장이 더 커지려면 이와 같은 전환점이 필요한 것 같다. 전망은 밝다. 며칠 전 핼러윈 이태원은 여장남자들 물결이 대단했다. 몇 년 사이 웬만큼 분칠하고 립스틱 바르고 나가면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졌다. 미국만큼 시장이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주어지면 분명 성장하리라 본다. 적어도 복장도착자로만 보진 않을 것 같다.


◈ “누군가 ‘나는 왜 남자가 여장을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한다면...”


드랙퀸으로 살아가며 차별받았던 경험?

드랙을 하고 거리를 걸을 때 ‘캣 콜링(길거리 성희롱)’을 당하거나 ‘아, 씨X. 남자야, 여자야?’ 같은 소리를 종종 듣는다. 내가 드랙을 하고 있으면 말을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드랙을 작업으로 하니 괜찮지만, 예컨대 트랜스젠더인 경우 길거리에서 내내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 건지 염려됐다. 그들이 매일매일 마주하고 살아가는 폭력들이 얼마나 힘든 건지 깨달았다. 드랙하며 많이 배운다.


드랙퀸 활동을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물론 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모두를 즐겁게 할 수는 없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 늘 이해 받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큰 기대인 것 같다. 그보다는 조금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나는 왜 남자가 화장하고 여장을 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 무지함이 오히려 측은하다. 그렇기에 나는 상대에게 ‘너는 머리가 왜 그 모양이고 왜 그런 식으로 입고 집밖을 나왔니?'라고 묻지 않는다.

지난 7월 홍대 '롤링홀'에서 진행된 드랙퀸 파티 '네온밀크' 당시 정글 / 정글 인스타그램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이해는 그들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내면 깊이 존재하는 스토리와 가치관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드랙을 이해하지 않는 건 본인 선택이다. 이해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알아보고 학습하며 이해해 나아갈 수 있다. 이해하기 싫어서 외면하거나 쉽게 비난한다면 그냥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다. 드랙이 가진 역사(왜 이런 방식들을 채택하게 되었는지)나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은 ‘이해 못해’라는 말을 할 단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성 정체성에 대해 알았나?

학교에 다니기도 전인 어린 나이일 때부터 알았다. 부모님이 바빠 집에 잘 계시지 않아서 성 정체성에 대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누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니 혼자 생각을 키웠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고백도 했었다. 남성을 향한 애정이 내 속에 넘쳐나는 걸 굳이 숨기고 왜곡시키지는 않았다. 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완전한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나는 앞으로도 게이일 것 같다. 육체적인 끌림을 생각하면 그렇게 답변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아는가? ‘완전히’라는 단어가 가진 허점이 많다. 내가 앞으로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미래에 만나게 될 사람을 ‘남-여’가 아닌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상대가 여성이거나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지 않은가?


드랙퀸으로서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상관없다. 오빠든 언니든. 장미는 장미로 불리지 않아도 여전히 향기를 지닌 장미다. 그런데 ‘남자야, 여자야?’ 같은 말은 불쾌하다. 나는 누군가가 날 부를 때 ‘의도’가 중요하다. 조롱하듯 부르면 싫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원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 사람들은 커밍아웃을 하기 전 두려움 때문에 나쁜 영향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통해 돌아오는 좋은 영향도 분명 있다. 나는 사람들이 보다 '긍정적인 가능성'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자신 있게 인정해라. 자기 모습을 부정하는 건 얼마나 불행한가. 행복은 결과물이 아닌 '마음 상태'다.


앞으로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

음악을 하고 싶다. 내가 외롭고 혼란스러울 때 늘 음악이 도와줬다. 내 이야기를 풀어서 노래하고 싶다. 노래를 하며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길 원한다. 예컨대 커밍아웃을 못 하고 있는 사람처럼. 그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 “우리가 살면서 하는 건 모두 ‘드랙’이다”

인터뷰 끝 무렵, 정글은 말했다.

“루폴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상태로 태어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살면서 하는 건 다 드랙이라고. 벌거벗은 몸 위에 여성의 복식, 남성의 복식, 학생의 복식, 성인의 복식 등이 입혀지죠. 우리가 회사원으로 살며 정장을 입는 것도 드랙입니다. 우리는 역할을 ‘입고’ 살아가지 무언가가 ‘된’ 상태로 태어나지 않아요." 

정글은 “‘남자가 여장을 왜 해’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더 큰 세상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화를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 문화에서는 그릇을 들고 밥을 먹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그릇을 손에 들고 밥을 먹는다. 그렇다면 식사할 때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게 옳은 일인가, 내려놓고 먹는 게 옳은 일인가?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정글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어떤 문화를 ‘틀렸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감히 당신이 이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글 / 박수진 기자

키워드 드랙퀸,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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