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배 버는데, 기자님 같으면 안하겠어요?” 온라인 도박에 빠진 10대들

2017-11-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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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생은 하루에 적게는 1번에서 많게는 7번까지 베팅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A(16)군은 지난 7월 한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가입했다. 큰 돈을 번다는 친구 꼬임이 솔깃했다. 미성년자여도 별도 인증 없이 바로 가입할 수 있었다.

A군은 하루에 1~7번 돈을 건다. 최소 1000 원부터 최대 4만 원까지 주머니 사정에 따라 베팅한다. 학교에서 발급한 학생증 겸용 체크카드로 돈을 입·출금한다. 그는 "배당율은 최대 100배까지 나와요"라며 "만 원을 걸면 10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기자님 같으면 안 하시겠어요"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온라인 불법 도박에 빠진 10대 청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취미'처럼 도박 사이트에 드나들다가 중독돼 '도박 폐인'이 되기도 하고, 판돈을 키우다가 빚더미에 앉기도 한다.

B(18)군은 동네 형 소개로 불법 인터넷 도박을 시작했다. 도박을 하면서 약 600만원 빚을 지게 되자 B군은 불법 인터넷 도박 총판(홍보) 일을 했다. 지속적인 빚 독촉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C(16)군은 SNS 광고를 보고 불법 인터넷 도박을 시작했다. 도박으로 1500만 원을 잃었다. C군은 돈을 만회하려고 '중고나라' 사기에 가담했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C군은 현재 재판을 진행중이다.

지난달 16일 국회의원 박경미 의원실이 경찰청과 한국 도박문제 관리센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치유서비스를 받기 위해 등록한 19세 이하 청소년들은 2014년 8명에서 2016년 180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8월까지만도 99명이나 치유 서비스를 받기 위해 등록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치유서비스는 도박 중독자 재활 프로그램이다.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형사입건된 10대 청소년 숫자도 2014년 110명에서 2016년 347명으로 3년 새 3배 이상 급증했다.

박경미 의원실
박경미 의원실

◈ 클릭 몇 번만 하면...

고신대 의료경영학과 류황건 교수는 "불법 도박사이트에 접근하는 방법이 점점 다양화하고 용이해지고 있다"면서 "반면 인식 교육 등 수요를 억제하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공급은 늘고 수요 억제는 되지 않으니 자연히 도박에 빠지는 10대 청소년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 도박을 하려면 물리적으로 '도박판'을 찾아야 했다. 이젠 인터넷 몇 번만 클릭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구글에 '사설 토토'라는 단어를 치자 '광고' 마크를 단 수많은 불법 도박사이트가 등장했다. '홍보'도 전방위적이다. 일부 불법 도박사이트들은 유명 SNS 페이지나 커뮤니티 등에 홍보 글을 게시한다. 알바를 고용해 게시물과 댓글을 달고 퍼뜨리기도 한다.

Google '사설 토토' 검색 결과와 페이스북 게시물 속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Google '사설 토토' 검색 결과와 페이스북 게시물 속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이런 사이트들은 가입자가 미성년자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광고 마크를 단 불법 도박 사이트 5곳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시도해 봤다. 사이트에서 회원가입 신청 버튼을 누르자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는 창이 떴다. 구글 검색 당시 사이트 주소와 함께 명시돼 있던 코드를 입력하자 익숙한 가입신청서가 나왔다.

회원가입 신청서에는 이름, 휴대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을 기재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가입자 나이를 적는 공간은 없었다. 회원가입신청서 공란을 모두 채우고 '회원 가입하기' 버튼을 누르자 가입 상태가 '승인 대기'로 바뀌었다.

이후 입력한 핸드폰 번호로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국제전화로 발신된 전화를 받자 사이트 운영진은 입력한 가입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사이트 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줬다. 전화를 끊고 수십초가 지나자 사이트 이용이 가능해졌다. 확인한 5개 사이트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성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A군은 "사이트에 가입할 때 개인정보와 추천인 ID가 필요해서 친구 아이디를 입력하고 가입했다"라고 했다. 그는 "가입할 때 입력한 제 번호로 전화가 와서 나이를 묻길래, 스무살 호랑이띠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별도 인증절차 없이 가입이 승인됐다고 했다.

류황건 교수는 "아이들이 인터넷(도박)에 접근하는 속도 혹은 도박산업이 아이들에게 접근해 가는 속도를 제도가 쫓아 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청소년 도박문제 선별안내서 /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청소년 도박문제 선별안내서 /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학습 부진부터 경찰 조사까지

'재미'로 도박을 시작했다가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중학교 3학년인 D(15) 학생은 평소 이용하던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경찰에 검거되면서 얼마 전 경찰서 출석을 통보를 받았다. D군은 소액이용자에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입건은 유예됐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통장과 핸드폰을 모두 압수당했다.

불법 도박을 하는 학생들은 '배팅'과 '결과 확인'을 반복하기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A 군은 "보통 해외 스포츠 경기에 배팅을 하기 때문에 새벽 3시~4시 사이 경기 결과를 보고 잠에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족한 잠을 학교 수업시간에 보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개월 동안 불법 스포츠 토토를 해온 고등학교 1학년 E(16)군은 시험 기간에도 경기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많이 할 때는 7번 배팅을 하는데, 배팅 한 번당 (스포츠) 다섯 경기만 묶어도 35경기"라면서 모든 경기 결과를 확인하려면 휴대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0대가 쥘 수 있는 돈치고는 큰 돈을 잃기도 한다. F군은 한 달 용돈이 15만 원이지만, 지난 5개월간 약 40만 원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한번 6000 원을 배팅해서 16만 원이 된 적이 있다"면서 "돈을 잃어도 그때 생각하면서 또 한다"고 전했다. F군과 함께 인터넷 도박을 하곤 한다는 G군은 역시 "돈을 딸 때는 친구들에게 치킨과 고기를 사줄 정도였지만 지금은 친구들에게 만 원씩 돈을 빌리러 다닌다"라고 전했다.

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남부센터 이슬해 상담사는 청소년 불법 도박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슬해 상담사는 "도박 방식이 쉽고 소액 배팅도 가능해 학생들에게 충분히 유혹적이지만 사이트 접근은 이에 비해 너무 쉬운 상태다"라고 전했다. 그는 "불법 도박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청소년이 해당 사이트에 접근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도박문제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등 교육부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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