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한 기차역 천장, 옆으로 기운 아파트... 잠 못드는 포항

2017-11-16 18:10

add remove print link

조 씨 옆에 앉아있던 딸 A 씨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5일 오후 경북 포항을 강타한 진도 5.4 규모 지진으로 16일 오후 3시 현재까지 부상자 62명과 이재민 1537명이 발생했다. 15일과 16일 만난 포항 시민들은 “이런 난리는 처음 경험해 본다. 무서워서 집에도 못 들어가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물리적 피해도 피해지만, 지진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지역민들 마음을 휩쓸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 남아있는 피해 흔적… 노후한 주택가는 극심

지진 발생 당일 오후 11시 30분쯤 부랴부랴 도착한 포항 역은 어딘지 부산스러웠다. 조끼와 헬멧을 쓴 안전 요원들이 역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포항역 일부 공간은 출입을 통제하는 띠로 막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역 천장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볼품없이 난 구멍 사이로 천장 안 구조물이 훤히 드러났다.

지난 15일 오후 11시 30분쯤 도착한 포항역. 역 천장 곳곳이 휑하니 뚫려 있다. / 이하 박은주 기자
지난 15일 오후 11시 30분쯤 도착한 포항역. 역 천장 곳곳이 휑하니 뚫려 있다. / 이하 박은주 기자

역에서 나와 피해가 심했다는, 포항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한동대로 곧장 향했다. 동영상이 확산되며 화제가 됐던 붉은색 건물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건물 아래로는 떨어진 벽돌이 산산조각 나 흐트러져 있었다. 부서져 내린 건물은 철근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15일 밤 지진피해를 입은 한동대 건물 앞을 촬영했다. 잔해가 바닥에 어지러히 떨어져 있다. /유튜브, 위키트리

주변에는 학생들이 세워둔 듯 보이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쓰러져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고 학교를 나올 때쯤, 정문에 있는 버스 승강장 벽이 부르르 떨렸다. 여진이었다.

"(작년) 경주 지진은 지진도 아이라.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아이가"

흥해읍내로 가는 택시에서 19년 차 베테랑 택시 기사 정중건(66) 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지진났을 때 정 씨는 운전 중이었다고 했다. 정 씨는 "처음에 뒷바퀴 타이어 두 개가 다 펑크 난 줄 알았다. 온몸이 다 흔들리고 머리가 어지럽더라"라고 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흥해읍을 다시 찾았다.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는 건물 위쪽 벽이 무너진 듯 크레인을 탄 한 남성이 수리에 한창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민속박물관은 기와가 전부 산산조각 났다.

이하 건물 윗쪽이 무너진 흥해종합문화복지관
이하 건물 윗쪽이 무너진 흥해종합문화복지관
이하 기와가 부서진 민속박물관
이하 기와가 부서진 민속박물관

골목길마다 금이 간 벽, 그 아래 어지럽게 떨어진 벽돌이 많았다. 특히 한 가게 앞에는 떨어진 간판과, 부서진 벽 잔해, 유리 조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여러 아파트 벽에도 균열이 생겼다. 흥해공고 2학년 윤 모 군은 “물리치료 받던 중에 지진이 왔다. 침대에 누워계시던 어르신들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고, 기계들은 전부 엎어지고, 아수라장이었다"라고 말했다.

간판이 떨어진 흥해읍 한 가게 모습
간판이 떨어진 흥해읍 한 가게 모습

오래된 주택이 많은 이곳 주택가는 특히 피해가 컸다. 심노미(72) 씨 집은 2층짜리 단독 주택인데, 일층 한 켠을 창고로 쓰는 구조다. 심씨 집 창고에 들어가니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벽이 무너져 출구를 다 막고 있었으며, 옷가지 등 살림살이 등은 벽 아래에 어지럽게 깔려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장독대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심씨 언니는 “동생이 겁에 질려서 곧장 대구에 있는 딸네 집으로 갔다”라며 “지금 이 근처 오래된 집들은 다 이 상태”라고 했다.

이하 심노미 씨 집
이하 심노미 씨 집

◈불안에 떠는 시민들… “여진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진원지와 가까워 유독 피해가 심했던 흥해읍 주민들은 앞으로 밤에 잠은 어떻게 자야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16일 오전 읍내 편의점에서 만난 조경희(52)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자려고 하면 ‘쿵’ 소리가 들려서 깨고 그러고 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오고. 지금 너무 정신이 없다”라고 했다. 조 씨 옆에 앉아있던 딸 A 씨는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조 씨가 대신 답하며 “지금 우리 딸 인터뷰 못 해요.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했다.

조 씨는 흥해사거리 인근에 있는 ‘대성아파트’에 산다. 대성아파트는 총 6동이다. 지난 15일 밤 수십차례나 되는 여진이 오면서 2개 동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1개 동이 기울었다. 조 씨는 다행히 피해가 적은 나머지 3개 동 중 한 곳에 살고 있다. 그래도 집이 편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잠을 이뤘지만 결국 여진에 시달리다가 날이 밝자마자 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조 씨는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필요한 물건만 꺼내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살짝 기울어진 대성 아파트
살짝 기울어진 대성 아파트
흥해읍에 있는 한 아파트
흥해읍에 있는 한 아파트

흥해중 2학년인 서 모 양도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 간격으로 여진이 계속 왔다”라며 “본진 때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지진 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서 양은 짐을 싸 근처에 있는 어머니 가게로 가는 중이었다. 서 양은 “집에 있기 불안해서 생필품을 챙겨 나오는 길이다. 당분간 엄마 가게에서 지낼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흥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주부 이 모 씨는 “어제 본진 이후로 계속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놀라서 진정이 안 된다”라며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너무 불안하다”라고 했다.

현재 흥해 실내체육관에는 시민 700명 정도가 집을 나와 대피해 있다. 얇은 담요로 몸을 덮고 추위와 싸우며 버티고 있다. 이 씨는 “불편하고 춥지만 그래도 집보다 마음이 편하다. 집에 있으면 언제 또 여진이 와서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아수라장 된 매장에 상인들 울상

갑자기 찾아온 지진에 상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흥해시장 바로 앞에 위치한 한 브랜드 화장품 가게 주인 B 씨는 “지진이 오자마자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뛰쳐나갔다. 그 이후로 손님이 뚝 끊겼다”라고 했다. B 씨는 “지금도 시장 근처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매출에 타격이 크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지진 때문에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화장품들이 문제였다. 다행히 본사에서 피해 입은 화장품은 보상해준다고 했지만 문이나 벽 등에 생긴 균열은 사비로 수리해야 했다.

화장품 가게 천장
화장품 가게 천장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는 한 남성도 피해를 호소했다. 매장을 살펴보니 한쪽에는 휴대폰 케이스를 담은 봉지 대여섯 개가, 한쪽에는 벽면에서 떨어져 나온 케이스 진열대가 위치해 있었다. 이 남성이 보여준 피해 당시 사진을 보니 매장 전체에 휴대폰 케이스가 어지럽게 쏟아져 있었다. 사진 한쪽에는 매장에 있던 손님이 놀라 주저앉아 있었다.

휴대폰 매장 제공
휴대폰 매장 제공

시장 안쪽에서 몇십 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 피해는 더욱 컸다. 장사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노후한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집을 운영하는 김경진(70) 씨는 “장사하고 있는데 지진이 왔다. 그릇이며 뭐며 다 떨어지고 아내는 놀라서 주저앉아 울었다”라며 “가게 문도 못 잠그고 뛰쳐나왔다”라고 했다. 그는 “집도 엉망이라 대충 정리하고 겨우 가게에 나왔다”라며 “아내는 아직까지도 무섭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