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인데 학대라니?” 경찰서로 불려간 부모들

2017-11-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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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2대 때린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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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초등학생 자녀를 둔 청주의 한 학부모는 지난 9월 자신이 자녀를 학대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전 아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2대 때린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친구의 돈을 훔치고 학교 앞 문구점에서 물건을 몰래 가져온 아들을 혼내는 것을 때마침 집을 방문한 상담교사가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조사 후 훈육으로 판단한 경찰은 사건을 종결 처리했지만, 이 학부모는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혼낸 것이 학대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자초지종도 파악하지 않고 덜컥 신고부터 한 걸 알고 황당했다"고 그 교사를 원망했다.

청주의 또 다른 초등학생 학부모도 얼마 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6월 남의 자전거를 훔쳐 집에 가져온 아들을 회초리로 때린 게 문제였는데 이 역시 경찰은 훈육으로 판단해 사건을 종결했다.

'없던 일'이 됐지만 이 학부모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신고자가 바로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초·중·고교가 조치한 가정 내 아동학대 사건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86건인데 이중 절반인 43건은 단순 조사만 이뤄진 채 종결됐다. 학대가 아니라 훈육이라고 결론지어진 것이다.

아동학대나 학대를 의심할만한 정황을 알게 된 교사는 현행법상 수사기관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를 받은 경찰과 기관 직원은 현장에 출동해 조사해야 한다.

아동학대 방치를 막기 위한 조치이지만 이러다 보니 섣부른 신고와 조사로 애먼 학부모가 '죄인' 취급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일로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는 부모들 가운데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한 고교 담임교사는 어머니한테 맞았다는 제자의 얘기를 듣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인형 뽑기를 한 번만 했다고 거짓말했다가 아버지한테 장난감 방망이로 맞았다는 초등학생의 얘기를 들은 담임교사 역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두 경우 모두 가족 내 사소한 다툼이나 훈육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나 경찰 조사로 종결 처리됐지만 이들 학부모는 자신들이 '자녀 학대' 주범으로 몰렸다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아동이 신체적·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았다는 정황을 알게 된 경우에는 바로 신고하도록 의무화돼 있어 사안이 경미해도 방법이 없다"며 "만에 하나 가정 내에서 혹독한 학대를 받는 아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단순 훈육을 한 부모들이 억울한 처지에 놓일 수 있지만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혹심했던 가정 내 아동 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학대에 대한 신고·처벌 조항만 있을 뿐 훈육은 정의하지 않고 있다. 학대인지 훈육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에게 맡긴 것이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체벌할 수도 있다"며 "현장 조사 때 이런 점을 고려해 교육적 차원인지 여부를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소한 가정사까지 신고 대상이 된 세태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런 신고 덕분에 학대받는 아동들이 구제받을 수 있으니 소홀히 할 수도, 규정을 완화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훈육이 억울하게 학대로 몰렸다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녀 교육에 대한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자녀 체벌이 대표적인 논란거리다.

한 아동보호기관이 아동학대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자녀에 대한 가벼운 체벌은 훈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부모들이 겪었던 훈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9∼10월 '아동·청소년 인권 국제기준 인식도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 중에서 아동·청소년 인권에 관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비율이 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자녀 훈육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며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아동학대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자녀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부모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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