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갇힌 학생도 찾아냈다“ 지진 때 기지 발휘한 한동대 총학생회

2017-11-23 17:50

add remove print link

“지진이다” 누군가 외치자 총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단원 5명은 벌떡 일어나 구호 물품이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지난주 역대 두 번째 규모 지진이 포항을 강타했다. 진앙에서 겨우 3km 거리였던 한동대는 직격타를 맞았다. 그런데도 부상자가 4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경주 지진 후 지진에 철저히 대비한 한동대 총학생회 공이 컸다. 총학생회는 '안전 매뉴얼'을 작성해 효율적인 대피 경로를 학생들에게 미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위기 순간에 적절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지난 15일 촬영된 한동대 건물 /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지난 15일 촬영된 한동대 건물 /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는데 모두 집결 장소로 달려오더라고요”

지난 15일 오후 2시 22분쯤 강한 진동이 한동대에 두 차례 느껴졌다. 본진을 예고하는 각각 규모 2.2, 2.6짜리 전진이었다. “지진이다” 누군가 외치자 총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학생 5명은 벌떡 일어나 구호 물품이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지난해 경주 지진 후 다시 지진이 왔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안전모, 모포, 구급상자 등이 창고에 있었다.

약 7분 뒤, 규모 5.4 본진이 한동대를 강타했다.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강의실 곳곳에 금이 갔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물품을 챙긴 이 5명은 미리 약속된 1차 집결지인 학생회관 옆으로 달려갔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대학교 외벽이 지진으로 떨어져 있다.  / 뉴스1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대학교 외벽이 지진으로 떨어져 있다. / 뉴스1

도착해 주변을 살피니 학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총학생회 소속 학생 75명이 집결지로 뛰어오고 있었다. 총학생회 총무국장 이진희(24·경영경제학부 4학년) 씨는 “매뉴얼 교육 때 제일 강조했던 게 ‘지진이 나면 무조건 1차 집결지로 모여 물품을 받고 임원진 지시에 따라라’였다”라며 “전화나 문자 한 통 하지 않았는데 전부 집결지로 달려오더라”라고 했다.

학생 75명은 총학생회장을 주축으로 구성된 임원 5명 지시에 따라 물품을 나눠 갖고 흩어졌다. 각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건물 입구를 막고 학생 출입을 통제했다.

총학생회를 제외한 전교생은 이미 운동장에 모여있었다. 지난해 경주 지진 후 학기당 한 번씩 진행했던 사전 대피 훈련 덕분이었다. 학생들은 훈련으로 대피 경로를 미리 파악한 덕분에 약 10분 만에 운동장에 모일 수 있었다.

임원진은 학생들이 모여있는 운동장에서 대내외팀으로 나뉘어 학생들을 통솔했다. 대내 팀은 각 기숙사별로 학생들을 줄세우고 운동장에 없는 인원을 파악했다. 대외팀은 기상청, 국민안전처 등에 전화해 추가 지진은 없는지 확인했다.

지진 발생 후 운동장에 모여있는 한동대 학생들 / 이하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지진 발생 후 운동장에 모여있는 한동대 학생들 / 이하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인원을 파악하는 데 몇몇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대내 팀원들은 해당 학생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봐 마지막 목격 장소를 파악한 뒤 학교에 도착한 119 구조대에 알렸다. 학교 학생지원팀도 인원 파악을 적극 도왔다. 구조대는 제보받은 장소로 곧장 향해 강의실, 엘리베이터 등에 갇혀있던 학생들을 구했다. 덕분에 엘리베이터에 갇혀 두려움에 떨고 있던 학생 3명이 부상 없이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매뉴얼에 없는 내용이었어요. 매 순간 필요한 걸 찾아서 했죠”

총무국장 이진희 씨는 매뉴얼도 매뉴얼이지만, 상황에 맞춰 재빨리 판단한 게 더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경주 지진 후 14쪽짜리 지진 대피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긴 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해 어설픈 부분이 있었다”라며 “때문에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대처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한동대 총학생회가 만든 '안전 매뉴얼'
한동대 총학생회가 만든 '안전 매뉴얼'

총학생회는 우선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에게 모포, 응급약, 핫팩 등을 나눠줬다. 몇몇 학생들이 공포에 질려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한 학생은 겁에 질려 온몸을 내내 떨었다. 다른 학생은 모포를 뒤집어쓰고 오열했다. 학교에 요청해 천막을 치고 공간을 만든 뒤 한동대 상담 심리 센터 선생님을 모셔 학생들 안정을 도왔다.

주저 앉은 학생들 / 이하 원주찬 씨 제공
주저 앉은 학생들 / 이하 원주찬 씨 제공

휴교 결정 후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낼 때도 총학생회의 판단력이 빛을 발했다. 당시 교내 셔틀버스가 포항역, 버스 터미널 등으로 학생들을 이송하고 있었지만 전교생 3600명을 신속히 이동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총학생회장 김기찬(26·경영경제학부 4학년) 씨가 포항 전세버스 회사인 ‘영신 관광’에 전화했다.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니 학교로 와 포항역이나 버스터미널까지만 학생들을 이동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버스 30대가 신속히 학교로 들어왔다.

영신 관광 사장 양상엽(32) 씨는 “우선 학생들부터 구해야겠단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양 씨는 “그때 버스 기사들 집도 지진 때문에 엉망이었다. 근데 학생들 돕겠다고 집 치우는 건 전부 뒤로하고 다들 회사로 달려왔다”라며 “손님을 태우고 있던 버스는 양해를 구하고 손님을 도착지 부근에 내려준 뒤 바로 학교로 갔다”라고 했다.

당시 포항 시내 교통은 지진 때문에 마비 상태였다. 학생들은 “포항 교통을 잘 아는 기사님들이 아니었으면 학교를 벗어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 거다”라고 입을 모았다.

본진이 발생한 지 약 3시간이 지난 오후 5시 30분쯤, 학생들을 태운 버스 3대가 포항역, 시외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로 동시에 출발했다. 마지막 차가 학교를 벗어난 시각은 오후 7시 10분쯤이었다. 3000명이 넘는 학생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건물 벽이 무너져내리는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교환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인근 교회로 대피했다. 인명피해는 경미한 부상을 입은 4명이 다였다.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4학년 원주찬(26) 씨는 “총학생회 대처가 큰 도움이 됐다”라며 “덕분에 다치지 않고 빨리 대피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국제법률대학원 1학년 이자연(여·24) 씨도 “지진이 나자마자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안전봉을 들고 지휘해 줘서 빨리 운동장으로 나갈 수 있었다”라며 “집으로 돌아갈 때도 신속히 갈 수 있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외벽이 무너지는 모습이 영상으로 전해져 화제 됐던 한동대 건물 /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외벽이 무너지는 모습이 영상으로 전해져 화제 됐던 한동대 건물 / 한동대 총학생회 제공

학생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지역사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동대 총동아리연합회는 총학생회 제안을 받아 시민들에게 응원을 전할 길거리 공연을 기획 중이다. 학교가 휴교 상태라 학생들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3~4개 정도 팀이 지원했다. 보컬, 댄스, 관현악 동아리 등이다.

총동아리연합회 회장 박은준(22·법학부 4학년) 씨는 “약 2시간 공연을 준비 중이다.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다음 주 토요일로 계획하고 있다”라며 “지진으로 고생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작지만 위로를 건네고 싶다”라고 밝혔다.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