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지는 곳” 홍콩 관주택 체험기

2017-12-0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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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관주택을 체험하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다.

집주인 수지와와 함께 묵은 저녁. 필자는   침대 아래층을 사용했다
집주인 수지와와 함께 묵은 저녁. 필자는 침대 아래층을 사용했다

선잠이 들었을까. 얼굴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분명 ‘바퀴벌레’였다. 침대를 박차고 나가 문가에 서서 파르르 떨었다. 맨발이 닿은 방바닥은 습한 공기 때문인지 축축하고 차가웠다. 하필 얼굴이라니. 온 몸이 오그라들었다. '이대로 문을 박차고 나갈까'를 수십번 고민했다.

집주인 수지와(Sujeewa)는 아랑곳않고 코를 골았다. 내 비명 때문일까. 코골이는 조금 잦아드는 듯했다. 한참 뜸을 들이다 침대 쪽으로 다가가 자고 있던 그녀를 깨웠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켜자 07:40이라는 숫자가 깜박였다. 홍콩 출장 첫날, 소위 '관주택(Coffin Home)'에서 맞은 아침은 이렇게 시작했다.

홍콩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높다. 1평 당 7억 원에 거래되는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빌딩 하나가 무려 5조 7000억 원이라는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서민들은 치솟는 집값 때문에 좁은 집으로 내몰리고 있다. '관주택(Coffin Home)'은 홍콩 주택난을 상징하는 단어다. 말그대로, 관처럼 간신히 몸만 눕힐 공간이 집의 전부다.

지난 2016 홍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20만 여 명이 이런 최악의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 지난해 홍콩 사진 작가 베니 람(Benny Lam)은 관주택에 사는 빈민들 삶을 사진으로 공개해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홍콩에 도착한 나는 '관주택'이 어떤 곳인가 알고 싶었다. 하룻밤 재워 줄 사람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관주택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녀 이름은 수지와 프리양가니(Sujeewa priyangani·44)였다. 홍콩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짐정리 하는 수지와
집에 도착하자 마자 짐정리 하는 수지와

수지와를 만난 곳은 홍콩 중심가의 랜드마크 '청킹맨션'에 있는 청킹 교회였다. 검은 피부에 맑은 눈, 160cm가 안되는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를 가진 그녀는 날랜 발걸음으로 좁은 예배실 복도를 오갔다. 교회를 찾는 빈민들이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교회를 나섰다.

좌/ 수지와 집으로 가는 입구, 우/ 집 입구. 한 층에 얇은 벽으로 구분된 방이 8채 가량 있다
좌/ 수지와 집으로 가는 입구, 우/ 집 입구. 한 층에 얇은 벽으로 구분된 방이 8채 가량 있다

수지와 집은 홍콩 몽콕역 템플스트리트 야시장 인근에 있었다. 편의점과 미용실 사이에 집 건물로 들어가는 은색 철문이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계단이 보였다. 나는 앞장서서 올라갔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은 낡은 형광등 불빛 때문에 어둡고 음침했다. 굳게 닫혀 있는 2층 마사지샵을 지나 3층 수지와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나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나왔다. 습한 공기와 어두침침한 방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건물 지하에서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도 더해졌다. 페인트칠 된 벽에는 금방이라도 벌레가 기어 나올 것 같았다. 방은 1.5평(4.96㎡) 정도였다. 하지만 방 안에 화장실과 간이 부엌 공간이 있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평수는 고작 1평(3.3㎡)밖에 되지 않았다. 수지와는 이 집 월세가 한 달에 3600 홍콩달러(약 50만 원)라고 했다. 이런 방을 한 달에 50만 원이나 주다니. 돈을 받고 자도 모자를 판국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부엌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소박한 공간이 펼쳐졌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위에는 휴대용 가스 버너와 낡은 밥솥, 누렇게 색이 바랜 전기포트가 놓여있었다. 벽 쪽에 붙어있는 은박지 재질의 벽지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고 기름때가 끼어있었다. 수지와는 선반 아래 찬장에서 컵을 꺼냈다. 혼자 사는 집이라 그릇과 숟가락 등 식기구는 단출했다.

부엌
부엌

부엌 옆 화장실이 보였다. 수지와는 나에게 샤워를 하겠냐고 물었다. 변기 하나만 있기에도 좁은 그 공간에 세면대 겸 개수대가 자리를 차지했다. 수지와는 이곳에서 샤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마실 물도 얻었다. 당연히 식사 준비도 이곳에서 한다고 했다. 문은 없었다. 커튼처럼 생긴 미닫이문으로 대신했다. 나는 챙겨온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미닫이문을 닫자 도저히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샤워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몸을 뻗고 옷을 벗을 공간이 없었다. 화장실 사용에 예민한 탓인지 배설 욕구마저 사라졌다. 샤워를 포기하고 대충 양치와 세수만 한 채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수지와는 저 개수대에서 샤워, 설거지, 식수 등 거의 모든 것을 해결했다
화장실. 수지와는 저 개수대에서 샤워, 설거지, 식수 등 거의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내 눈치를 살피던 수지와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로 나를 안내했다. 따로 앉을 공간이 없던 그 집에서 가장 번듯한 장소는 아무래도 침대였다. 이 층으로 된 철제 침대는 내가 앉자마자 삐그덕 쇳소리를 냈다. 침대 시트는 새로 빤 것이지만 군데군데 묵은 때가 보였다. 수지와는 아까 꺼낸 컵에 냉장고에서 막 꺼낸 오렌지 주스를 따라 주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수지와가 짐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수지와는 '난민' 신분이었다. 스리랑카에서 홍콩으로 온 지 올해로 19년, 이 집에 산 지는 1년 반 정도 됐다고 했다. 난민 신분으로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일하다 경찰에게 적발되면 3년 이상 징역형을 받는다고 했다. 정부에서 주는 3500홍콩달러(약 50만 원) 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교회 등 봉사단체에서 보조해 주는 돈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녀가 이 좁은 집에서 사는 이유였다. 올해 초 캐나다로 옮기고 싶다고 홍콩 정부에 신청했지만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지와는 이 집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지 기약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나에게 주려고 했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그녀는 “배고프지 않아요?", “요거트 좀 줄까요?” 라며 나에게 주전부리를 권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지와는 기독교 단체나 몇몇 NGO 등으로부터 음식을 기부받았다. 그녀는 그 음식 중 가장 좋은, 그러니까 주스나 요거트 같은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공산품들을 나에게 주려고 했다. 속사정을 알고 나니 거절했던 것이 미안했다.

필자가 사용했던 침대.
필자가 사용했던 침대.

그녀는 소음에 무감각했다. 수지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집에서 갑자기 '탕탕' 벽을 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누구냐고 묻자 수지와는 "옆집에 사는 인도 남자들"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온 건물이 울릴 정도로 큰소리였지만 늘상 있는 일인 양 수지와는 소음에 아무 반응 없었다. 5분 이상 소음이 계속되자 머리가 울리는 듯 괴로웠다. 그 후로 10분이 지나서야 소음이 멈췄다. 그 사이 시간은 자정이 훌쩍 넘어있었다. 자리에 누웠다. 수지와가 내 머리맡에 있는 계단으로 위층 침대로 올라갔다. 여전히 침대는 삐그덕 그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단 하룻밤이야. 하룻밤. 몇 시간 안남았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은 사라졌지만 이번엔 습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눅눅한 침대 시트가 피부에 닿자 꿉꿉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피부에 뭔가를 닿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챙겨온 긴 팔 후드티를 가방에서 꺼내 뒤집어썼다. 짧은 잠옷 바지 대신 긴 청바지를 도로 입었다. 한술 더 떠 이제 더위와의 싸움도 시작됐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만 감고 있었다. 수지야는 어느새 잠들어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깊게 잠들었다. 거친 숨소리는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나는 더위, 습기, 수지와 코콜이 이 삼중고에 시달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수지와 집으로 가는 계단, 밤과 낮의 분위기가 다르다
수지와 집으로 가는 계단, 밤과 낮의 분위기가 다르다

다음날, 나는 부쩍 퀭해진 몰골로 짐을 챙겼다. 아침에 겪은 바퀴벌레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지와는 해맑은 얼굴로 하룻밤 더 자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취재 일정 핑계를 댔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를 알기에 칼같이 거절할 순 없었다. 수지와 도움을 받아 옆집에 사는 이웃들을 취재한 후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음침한 기운이 감돌던 계단은 어제와 사뭇 달랐다. 으스스했던 계단은 햇빛이 비치자 평범하게 변했다. 문득 창문이 없는 수지와의 집은 낮밤조차 구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를 두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체험기를 위한 하룻밤이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시작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 집에 남겨질 수지와 때문이었다.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지는 집에서 나는 고작 하루를 지냈다. 부엌과 변기가 나란히 있는 집에서 단 하루 버텼을 뿐이다.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수지와가 준 요거트 먹을걸' 후회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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