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한령 풀렸지만... '유커' 반기지 않는 제주도민

2017-12-0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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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까지 와서 하루종일 면세점과 쇼핑센터를 '뺑뺑이' 도는 관광객들도 불만이 많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바오젠 거리. 25일 토요일 오후지만 거리는 한산하다. / 이하 박수정 기자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바오젠 거리. 25일 토요일 오후지만 거리는 한산하다. / 이하 박수정 기자

지난 10월 31일 한국과 중국은 사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국 공동 발표문을 냈다. 중국은 단계적으로 '금한령(한류 금지령)'을 해제하기로 했다. 여행업계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로 들떴다. 최근 중국인들이 '제2의 하와이'라 칭하는 제주도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달 25일 토요일 오후 6시쯤 찾은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 사람이 많이 붐빌 시간대이지만 거리는 휑했다. 중국인 개별 관광객 5명 정도만 눈에 띌 뿐이었다. 바오젠 거리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여) 씨에게 "평소에도 이렇게 사람이 없냐"고 물었더니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많다. 평일에는 파리 날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바오젠 거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2011년 9월 중국 건강용품업체 바오젠(保健)그룹은 우수 직원 인센티브 여행지로 제주도를 택해 1만 1000여 명에 달하는 여행단을 보냈다. 제주시는 화답으로 제주시 최대 번화가인 연동 은남로 일대 448m를 '바오젠 거리'로 지정했다. 이곳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자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과 안내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오젠 거리에 설치된 중국인 간판과 안내문
바오젠 거리에 설치된 중국인 간판과 안내문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던 바오젠 거리는 지난 3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을 본격화하면서 한산해졌다. 상가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중국인 관광객은 사라지고 중국어 간판만 남았다.

인삼 판매장 직원 고모(여) 씨는 "거리 간판은 온통 중국어인데 중국어는 하나도 안 들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또다른 화장품 가게 주인 최모(여) 씨는 "장사가 안 되어 죽겠다. 손님보다 기자가 더 많이 온다"고 토로했다. 금한령이 풀렸지만, 중국 단체관광객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상인들은 손님이 없어 힘들다면서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예전처럼 많이 오길 기다리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상권은 살겠지만 예전처럼 저가 관광 상품으로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인들 의견이다.

◈ 중국인 관광객이 달갑지 않은 제주도민

조만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다시 온다지만, 정작 제주도민들이 크게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한모(남) 씨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도 우리는 경제적 혜택을 누리지 못했었다"면서 "관광버스가 너무 많아 길만 막히고 오히려 일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사드 때문에 제주도 경제가 위축됐다는 건 뭘 모르는 소리"라며 "호텔, 면세점은 타격을 입었겠지만 우리 도민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한 씨는 "제주도 경기를 지탱하는 감귤 산업을 봐라. 중국인 관광객이 오든 안 오든 상관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홈페이지
서귀포매일올레시장 홈페이지

이날 방문한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내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내국인 관광객들은 흑돼지 꼬치구이, 오메기떡 등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라봉주스를 판매하는 한 상인에게 "금한령이 해제되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었냐"고 물었더니 상인은 고개를 저으며 "중국인들은 원래 여기 안 왔었다"고 말했다.

상인은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몇 백만이라고 난리를 칠 때도 우리는 아무런 혜택을 못봤다"며 "여기 와서 간식도 사 먹고 특산물도 사 가면 좋겠지만 가이드가 여길 데려오나. 사후 면세점에 가지"라고 했다.

제주 특산품 과자를 판매하는 상인도 "중국인들은 여기서 돈 안쓴다. 공항, 면세점에서 쓴다"며 "중국인 관광객 많이 오면 기업만 돈 벌지 우리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지난달 27일 오전 방문한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관광단지도 한적했다. 제주고등학교 학생들이 타고 온 대형버스를 제외하고는 관광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테디베어뮤지엄, 케이팝플레이 등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물관도 관광객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테디베어뮤지엄 직원 한모(26) 씨는 "박물관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사드로 인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관람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기념품을 많이 사 간다. 테디베어를 보고는 귀엽다고 사가고 선물한다고 사 가는데 그렇게 사가는 건 중국인 관광객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다른 박물관 직원 윤모(25) 씨는 "눈에 띄게 매출이 줄었다. 회사는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회사를 생각하면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야 하지만 도민으로서는 오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최현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주도 단체 관광은 제주도민들과 연관 없이 돌아가는 구도다. 외국인들이 단체로 관광을 오면 호텔, 면세점, 대규모 식당 등만 방문하게 돼 대기업으로만 혜택이 쏠린다. 도민들의 경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현 교수는 "대신 도민들 생활에는 영향을 끼친다. 단체 관광객이 오면 쓰레기 배출량이 늘어나고 교통 체증이 심화된다. 도민들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반기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 10만 원짜리 여행, 관광객들은 면세점만 뺑뺑이

지난해 10월 19일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여객국제터미널.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들이 제주 관광을 위해 입국하고 있다. / 이하 뉴스1
지난해 10월 19일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여객국제터미널.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들이 제주 관광을 위해 입국하고 있다. / 이하 뉴스1

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306만 1522명인데 도민들은 왜 경제적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고 말할까. 도민들은 원인이 '여행사'에 있다고 말했다.

성산일출봉 관광안내소 관계자 김 모(남·60) 씨는 "일부 여행사가 싼값에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적 이득을 연계된 면세점이나 쇼핑센터와만 나눈다"고 했다. 김 씨는 "도민들 불만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제주도 단체 관광 상품은 가격이 15만 원 안팎이다. 여행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단체 관광객은 몇 박 며칠을 오든 항공료만 지불하는 셈이다. 중국 여행사가 중국인 관광객을 모집해 제주도로 보내면 화청 여행사, 일진국제, 서울국제여행사 등 몇몇 여행사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전담하게 된다.

여행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단체 관광객을 면세점, 쇼핑센터로 안내하고 리베이트(송객수수료)를 받는다. 대형 면세점은 관광객들이 구매한 금액의 5~10%, 일반 쇼핑센터는 30~50%를 여행사에 지급한다.

제주도까지 와서 하루종일 면세점과 쇼핑센터를 '뺑뺑이' 도는 관광객들도 불만이 많다.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마(马·여·34) 씨는 "금한령이 내려지기 전에 단체 관광을 왔었는데 면세점을 돌아다닌 기억밖에 없다"며 "그땐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운지도 몰랐다. 개별 관광으로 다시 와보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전담 여행사는 관광객을 연계된 숙박업소, 식당으로 보낸다.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오모(여·54) 씨는 "전담 여행사와 연계된 호텔, 식당들은 대부분 중국계 자본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관광국 관계자는 "도민들 이야기가 사실"이라며 "전담 여행사가 직접 호텔을 운영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전담 여행사는 중국 여행사에 '인두세'까지 주고 관광객을 데려온다"며 "한중 FTA에 따라 한국 여행사는 중국에서 모객과 영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여러 차례 건의해서 국회에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관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로 상임위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민 양모(남·49) 씨는 "제주도가 쉽게 왔다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현 교수는 "최근에는 '입도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제주도도 '고부가가치 관광'으로 가야 한다"며 "사람을 너무 많이 받기보다는 일정 관광객이 즐겁게 있다 갈 수 있는 관광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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