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구명조끼 입으셔야...” 인천 낚싯배 사고 다음날 낚싯배를 탔다

2017-12-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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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배 산업이 성업 중인데 반해 안전 관련 규제는 부실하다.

지난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가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했다. 낚싯배에 탄 사람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다음날은 우연히도 내가 취재차 낚싯배를 타는 날이었다. 배를 탄 적은 많지만 왠지 긴장됐다.

4일 오전 10시 충남 태안군 남면 당암리 당암포구 선착장 앞은 한산했다. 이날 물때는 '8물'이었다. '8물'은 물살이 빨라 물고기가 미끼를 잘 물지 않는다고 해서 낚시꾼들이 피하는 물때다. 바닷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 7.5도였다.

혼자서 낚싯배 한 척을 빌리려면 최소 30만 원, 최대 60만 원을 내야 한다. 고민 끝에 입장료가 4만 원인 '해상 유료 낚시터'로 향했다. 배를 타고 계속 바다를 떠돌며 낚시를 하는 배낚시와 달리 해상 유료 낚시터는 바다 위 가두리 양식장에서 낚시할 수 있도록 목재와 스티로폼으로 지은 시설이다. 낚시터에 가려면 어쨌든 배를 약 3분간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낚시터와 선착장은 약 500~700m쯤 떨어져 있다.

승선 명부에 이름과 주소 등 신상 정보를 적고 3톤짜리 배에 올랐다. 배에는 나를 포함해 모두 3명이 탑승했다.

승객 명부를 적는 곳 / 이정은 기자
승객 명부를 적는 곳 / 이정은 기자

인천 낚싯배 사고 직후, 태안 당암포구 어촌계에서도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어촌계 소속인 선장 A씨는 "아무래도 큰 사고여서 마을 사람들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회의에서도 다들 한 번 더 시설을 점검하고 안전 관리에 신경을 쓰자고 했다"고 말했다.

당암포구 곳곳에 붙은 '알림'
당암포구 곳곳에 붙은 '알림'

배에 탄 후에도 난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었다. 조타실 안에 있던 선장 A씨는 밖으로 나와 "죄송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으셔야 갈 수 있다"며 배를 몰지 않고 기다렸다. 조끼를 완전히 여미고 나서야 배는 움직였다.

다행히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낚시를 마치고 육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간 낚싯배를 타면서 아찔한 경우가 없던 건 아니었다.

지난달 12일 제주 차귀도 인근에서 낚시를 할 때는 작은 충돌 사건이 있었다. 차귀도 주변은 배낚시 체험장으로 유명하다. 체험 시간이 1시간 남짓으로 짧고, 비용도 1만 원대로 저렴하다 보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날 정원 18명인 8톤짜리 어선에 탑승할 사람은 선장 1명과 낚시 체험객 14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린이도 있었다. 선장은 탑승객들 이름과 신상정보가 적힌 승객 명부를 해양경찰에게 건넸다. 포구에 나와 있는 해양 경찰 두 명이 탑승객을 일일이 호명하며 확인한 후에 배에 오르게 했다. 배에 오른 직후에는 선장 지시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었다. 바닷바람에 낡긴 했어도 버클은 잘 잠겼다. 큰 선실 안에 신체 크기 별로 골라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로 준비돼 있었다. 이 과정까지 안전 관리는 철저해 보였다.

배는 차귀도를 지나 바다 쪽으로 향했다. 물고기는 바다 전체에 넓게 퍼져 있는 게 아니다. 물살에 따라 물고기가 모여 있는 '포인트'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날 목표 어종인 고등어가 있다는 '포인트'에는 승객 십여 명을 태운 낚싯배 세 척이 바짝 붙어 모여 있었다. 각 배 선장들은 자기 배에 탑승한 승객들이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수 있도록 좋은 포인트에서 경쟁했다.

파도는 1~2m로 잔잔한 편이었지만, 배는 바다 위에서 앞뒤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옆 배와 거리는 불과 1~3m쯤 돼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물건을 던져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결국 10분쯤 지났을 무렵 '쿵' 소리를 내며 낚싯배가 부딪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어린아이는 놀란 듯 토끼 눈으로 엄마를 찾았다. 선장은 부랴부랴 배를 몰아 다른 포인트로 자리를 옮겼다.

옮겨간 포인트에서는 고등어 입질이 없었다. 결국, 승객 일부는 "여기 물고기가 안 문다. 다른 곳으로 가자"며 날 선 목소리로 선장을 재촉했다. 선장은 목소리 큰 승객들 불만에 대꾸 대신 담배만 뻑뻑 피워대며 다른 낚싯배들이 모인 곳으로 배를 몰았다. 한 여성은 자신이 탄 배가 또 다른 낚싯배와 부딪칠까 봐 두려워했지만, 함께 온 일행은 "괜찮다"며 낚싯대를 연신 바다에 드리웠다.

최근 낚시가 '국민 취미'로 꼽힐 만큼 인기를 끌면서 낚싯배 사업은 성업 중이다. 하지만 '안전'에 관한 한 여전히 미비한 점이 많다. 가장 시급한 건 낚싯배에서 승객들을 단속하고 책임질 수 있는 '바다 위 전문가'는 보통 선장 단 한 명뿐이다.

낚싯배는 최대 20명가량을 태우며 여객선 노릇을 한다. 현행법상 낚시어선어법에 속하는 10t 이하 낚싯배에는 선원이 1명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사고가 발생한 선창1호와 지난 2015년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침몰해 15명 사망자와 3명 실종자를 낸 돌고래호도 10t 이하 낚싯배였다. 불의의 사고 시, 선장 혼자서 승객 여러 명을 구조하고 보호하기가 역부족이라는 게 이미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낚싯배가 승객을 태운 이상, 여객선에 준하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5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진두선착장에 낚싯배들이 정박해있다 / 뉴스1
5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진두선착장에 낚싯배들이 정박해있다 / 뉴스1

임남균 목포해양대 환경공학교수는 "낚싯배가 여객선 노릇을 한다면, 그에 준하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낚싯배로 쓸 경우, 유사시 승객들이 탈출하기 쉽도록 선체 내부를 개조하고, 구조 장비를 반드시 싣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양 경찰의 업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 교수는 "해경은 이번 사고에도 대응이 느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낚싯배를 단속하거나 처벌하는 업무만큼 구조 활동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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