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쓰레기 문제로 속앓이 하는 제주도민

2017-12-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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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들은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에 대한 책임을 도민에게 전가한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시에 설치된 재활용 분리배출시설 '클린하우스'/ 박수정 기자
서귀포시에 설치된 재활용 분리배출시설 '클린하우스'/ 박수정 기자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으면 버리는 데는 일주일이 걸려요"

제주도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최모(여·42) 씨는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가 불편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 씨는 "지난 주말에 치킨을 한 마리 시켜 먹었다"며 "먹다 남은 치킨은 월요일, 치킨이 담겨온 종이박스는 화요일, 콜라캔은 수요일, 비닐봉지는 목요일에 버렸다"고 말했다. 최 씨는 "치킨 한 마리 먹고 버리는 데 일주일이 걸린 셈"이라고 덧붙였다.

제주도가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를 실시한 지 1년이 지났다. 제주도 쓰레기 매립장, 소각장이 가득 차자 쓰레기 매립량, 소각량을 줄이고 재활용량을 늘리자는 취지로 지난해 12월 1일(서귀포시는 2017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에 따라 제주도민은 플라스틱, 종이, 캔 등 재활용 쓰레기를 지정된 요일에만 배출할 수 있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는 매일 버릴 수 있다. 배출 시간은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민은 쓰레기 매립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너무 불편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난 김모(남·36) 씨는 "클린하우스(재활용 분리배출시설)가 깨끗해진 대신 집이 더러워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비닐류를 버리는 목요일에 사정이 생겨 버리지 못했다면 다음주 목요일까지 집에 비닐류 쓰레기를 쌓아둬야 한다"고 했다.

제주시 연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연모(여·45) 씨는 "쓰레기 버리는 게 불편해지다 보니 손님들이 화장품 포장 케이스는 매장에 버리고 가기도 한다"며 "쓰레기를 줄이려고 만든 정책인데 '누가 언제 버리냐'는 눈치 게임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시내에 거주하지 않는 도민은 더욱 불편하다. 제주시 구좌읍에 거주하는 장모(여·32) 씨는 "클린하우스가 집 근처에 없어 차를 타고 다녔는데 요일별 배출제로 바뀌면서 거의 매일 차를 타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클린하우스는 약 400~500m마다 설치되어 있지만 주택이 밀집되어 있지 않은 읍면 지역에서는 클린하우스가 이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도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제주도 골칫거리인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일별 배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제주도 거주 1명이 하루 배출하는 생활쓰레기가 제주시 1.79kg, 서귀포시 2.14kg으로 전국에서도 높은 편"이라며 "매립장, 소각장이 꽉 찼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생활환경과에 따르면 요일별 배출제를 실시한 결과 1일 매립량이 2016년 288.7톤에서 2017년 243톤으로 16% 감소했다. 1일 재활용량은 437.3톤에서 525.2톤으로 20% 증가했다.

요일별 배출제에 반대해 '쓰레기산 만들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제주도민들 / 뉴스1
요일별 배출제에 반대해 '쓰레기산 만들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제주도민들 / 뉴스1

시행 취지에 맞게 매립량은 줄고 재활용량은 늘었지만 도민들은 '성공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 쓰레기 정책에 분노하는 시민들'이라는 모임까지 생겨날 정도로 불만이 크다. 이들은 지난 1월 13일 제주시청 인근에 위치한 클린하우스에서 '쓰레기산 만들기' 퍼포먼스를 하며 반대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주도민들은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에 대한 책임을 도민에게 전가한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 거주하는 김모(남·58) 씨는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면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관광객들은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고 쓰레기 배출 시간도 당연히 지키지 않는다. 제재가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민을 대상으로만 엄격한 정책을 시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제주도 공무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 기자
지난 2월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공항에 버리고 간 쓰레기 / 뉴스1
지난 2월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공항에 버리고 간 쓰레기 / 뉴스1

제주공항 청소노동자 이모(여) 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품을 어마어마하게 구매하고는 부피를 줄이느라고 쓰레기를 다 버리고 간다"며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올 때는 쓰레기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공항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확실히 줄었다. 그런데도 제주도민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문제라고 할 수 있냐"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배출되는 쓰레기도 늘어났다. 관광객이 757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2010년에는 쓰레기 발생량이 84톤이었다. 2013년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기며 쓰레기 발생량도 165톤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홍기철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쓰레기 감량) 주요 대책을 보면 요일별 배출제, 배출시간 제한, 종량제 봉투값 등 대부분을 제주도민들이 부담하고 있다"면서 "원인자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도민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관광객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제한하기는 쉽지 않다"며 "아무 것도 먹지 말고 하지 말고 눈요기만 하다 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제주도민 권모(남·58) 씨는 "청정지역 제주가 쓰레기섬으로 전락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요일별 배출제를 꼬박꼬박 지키는 것"이라면서 "도민들한테만 부담을 주지 말고 관광객 전용 쓰레기 배출 시설을 설치해 함께 깨끗한 제주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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