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사건 벌어졌지만... 동정 대신 질타받는 청와대 기자들

2017-12-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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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싸늘한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 뉴스1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 뉴스1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방중 일정을 취재하던 한국 언론사 사진기자 2명이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 해외 순방지에서 폭행사건으로 기자가 '중상'을 입은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피해 기자들은 모두 청와대 출입기자다. 해당 언론사에서 경비를 내고 대통령 방중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이번 사건에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기자들'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지난 15일 한국 기자 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충격" "분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하게 항의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사진기자들 집단폭행 사태에 대해 동료 언론인들로서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국빈 수행단 일원으로 취재 중인 외국인 기자들 인권을 보란 듯이 짓밟는 행위에 대해 중국 정부는 공식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들에 대해 강력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번 사건에 대한 국내 SNS 여론은 생각보다 싸늘했다. 물론 피해 기자들 상태를 걱정하고 중국 경호원 만행을 비판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맞아도 싸다"라는 원색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국 기자 폭행 사건에 냉소적인 댓글을 단 일부 SNS 이용자들 / 페이스북
한국 기자 폭행 사건에 냉소적인 댓글을 단 일부 SNS 이용자들 / 페이스북

SNS 이용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사회 인사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냉소적인 의견을 밝혔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폭력을 써서라도 일단 막고 보는 게 경호원의 정당방위 아닐까?"라는 글을 남겼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16일 페이스북으로 "대중국 외교에 막대한 지장을 야기한 해당 기자를 징계하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청와대 기자단, 해외 수행 기자단 제도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18일 오전 현재 4만5000여 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기자단, 해외 수행 기자단 제도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기자단, 해외 수행 기자단 제도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을 올린 네티즌은 일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지나친 취재 경쟁과 권위의식 등을 비판했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런 '구태'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글쓴이는 "이젠 해외에서조차 국내에서 하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기본적인 에티켓이나 시스템에조차 적응하지 못해 추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이어 "저는 현재 청와대에 상주하는 기자단을 최소화하고, 해외 순방 시 수행기자단 제도를 폐지해주시기를 간곡히 청원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사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들이 중국 현지에서 행사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기자를 폭행하고 있는 중국 경호원들 / 뉴스1(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한국 기자를 폭행하고 있는 중국 경호원들 / 뉴스1(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성명을 내는 등 이번 사건을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라는 한탄과 함께 '싸늘한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지난 15일 "청와대 순방취재진 수난과 언론의 현주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청와대 순방취재진 수난과 언론의 현주소
해당 기자는 "청와대 풀(POOL) 기자단이라 불리는 기자들은 역대 정부부터 기득권을 쥐어온 집단"이라며 "새 정부 들어서도 달라진 게 없다.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은 기본 배경"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자는 이어 "현실이 이러니 국민들은 타국 땅에서 자국 기자가 '얻어맞거나', '놀림 당해도' 상대국을 욕하기보다 '맞은 기자들'에게 역정을 낸다. '웃픈' 현실"이라며 "언론적폐를 청산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언론 스스로 변하고 달라져야 한다. 기자가 '완장' 차고 활보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라고 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도 지난 15일 성명에서 "취재기자 폭행을 엄중 규탄한다"면서도 "차제에 청와대 출입기자 취재시스템 상 그간 관행으로 유지돼온 불합리하며, 우리 국민의 시대적 여망을 반영하지 못한 일부 구시대적 취재시스템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청와대 출입기자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나서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 일부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자체 페이스북 라이브에 대해 "영역 충돌"을 주장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