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중산층이라면…은퇴후 빈곤층 가능성 50%”

2017-12-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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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이 급증하고 있다.

이하 연합뉴스
이하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51)씨는 직장생활 25년 차다. 정년을 꽉 채우고 싶다는 그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40대까지 별걱정이 없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다 몇 번 실패하면 바로 빈곤층이 되더라"며 "남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 강사인 이 모(44)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씨는 "요즘 부쩍 미래가 걱정된다"며 "하루 10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은퇴하면 가난에 시달릴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들의 불안은 기우가 아니다. 최근 각종 지표에 따르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은 급증하고 있다. 중산층이 처한 현실을 짚어봤다.

◇중산층 절반 빈곤층으로 이동…"노후 준비 할 돈 없어요"

'월평균 366만 원(통계청 2015)을 벌고, 생활비로 220만 원을 지출, 47% 이상이 30평 이상 아파트를 소유, 하루 커피 두 잔 마시고 점심값으로 6천200원을 소비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밝힌 우리나라 중산층의 모습이다. 중산층은 통계청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150% 사이의 소득을 올리는 계층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은 65.7%다.

하지만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은퇴 후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중산층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으로 이동하는 탓이다.

보험연구원 정원석 연구위원과 김미화 연구원은 '은퇴 이후 중산층, 빈곤층으로 하방 이동 심각'이라는 보고서에서 "2004년 가구주 연령 50~65세인 중산층 866가구에서 2010년 빈곤층이 된 가구는 458가구로 52.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6년 뒤에도 중산층에 그대로 머무른 가구는 390가구인 45%에 불과했다"며 "소득이 있는 시기에 은퇴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산층의 실제 체감온도도 비슷하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 연구소가 지난달 30~50대 중산층 남녀 1천1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산층 10명 중 6명꼴로 은퇴 후 소득이 150만원 이하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현재 부부 기준(2인 가구) 중위소득이 277만원이고, 중위소득의 50%(139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를 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 된다는 의미다.

◇노후 준비 부족…75세 이후까지 일하는 한국인

실제로 중산층의 노후 준비는 부실하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74세 성인 2천명을 조사한 결과 노후 최소생활비는 가구당 177만원, 적정 생활비는 251만원이었다. 그러나 73%가 노후 최소생활비를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65세에 은퇴하고 싶지만, 부족한 노후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약 75세까지 일을 했다. 황원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25~74세의 절반가량은 경제적인 이유로 75세 이후까지 일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퇴 역시 은퇴 후 빈곤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반퇴는 장기간 다녔던 직장이나 직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새 일자리를 찾거나 옮긴 상태를 말한다. 한국의 반퇴 가구는 55세에 반퇴를 경험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반퇴 전후 74.8%가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중산층이 회사를 그만둔 이후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저임금이 대다수다"며 "만약 재산이 있다면 자영업을 시작하겠지만 없다면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55~70세 나이를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 비중은 53.8%였으며, 시간제 근로자 비중도 40%를 넘었다. 고학력자도 예외는 아니다. 55세 이상 대졸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근로자를 조사한 결과, 고령층(1954년 이전 출생자·실버칼라)의 3분의 1은 '단순노무종사자'이며 이 중 절반은 비상용직으로 일했다.

◇교육비, 주거비가 발목..."사회복지 확충해야"

그렇다면 왜 한국 사람들은 은퇴 전 노후 준비를 못하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교육비와 주거비라는 분석이다. 돈을 버는 기간에 노후 준비보다는 이 두 분야에 지출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이다.

여의도의 한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박 모(35)씨는 "월급 350만 원에서 집 대출금, 생활비, 교통비, 아이 교육비 등을 빼고 나면 저축할 돈이 거의 없다"며 "당장 현실이 벅찬데 몇십 년 후의 일까지 생각할 겨를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비로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계가 교육비로 지출한 금액은 40조3천896억원으로 2015년보다 1.4%(5천694억원) 늘었다.

주거비도 부동산 경기 호황에 따른 아파트값 상승과 전세의 월세 전환 등으로 늘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지난해 가구당 실제 주거비(월세 기준) 지출은 월평균 7만8천900원으로 전년보다 6.3% 증가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대비 교육비 비중이 1%포인트(p) 높아지면 연금·보험상품에 납입한 가구의 비율이 0.2∼0.4% 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주거비 역시 소득에서 월세, 전월세보증금 등의 비율이 높을수록 연금·보험 가입 비율이 낮았다.

이에 대한 우려는 높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출 측면에서 가계부채의 상황부담을 줄여주고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을 완화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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