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전 주인 찾는 연락에 매일 시달려요” TMI 사연 13개

2017-12-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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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20) 씨는 종종 모텔 예약 문자를 받는다. 번호 전 주인 예약 건이다.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 tvN '치즈인더트랩'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 tvN '치즈인더트랩'

살다 보면 전화번호를 바꿀 때가 있다. 보통은 남이 쓰던 번호를 받는다. 운이 없으면 번호 전 주인을 찾는 연락에 시달릴 수도 있다. 전 주인이 개인 정보 수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다. 새 번호 주인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새 번호 주인은 전 주인에 대한 온갖 정보를 알게 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샀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요새 유행하는 말인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를 알게 된다.

번호 전 주인과 연관된 다양한 사연과 문자를 모아봤다. 모두 실화다.

1. "오늘 레슨 쉬어도 될까요?" 예체능 교수가 쓰던 번호

이하 김 모 씨 제공
이하 김 모 씨 제공

군인 김 모(20) 씨는 교수가 쓰던 번호를 받았다. 예체능 계열 교수로 보인다. "오늘 레슨 쉬어도 될까요?"라는 메시지가 종종 오기 때문이다. 이따금 학생들 단체 카카오톡 방에 초대도 받는다. 교수 번호가 뜬 줄 모르고 말실수를 하는 학생도 있다.

얼마 전 그 교수는 생일을 맞았다.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김 씨는 "덕분에 모르는 사람한테 장문 축하 메시지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다만 카드사, 보험사에서 자꾸 연락이 온다. 그쪽에 자기 번호 변경 여부를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한탄했다.

김 씨는 "재미는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다음 달 중으로 번호를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2. "방 호수까지?" 모텔 예약 내용 날아와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트위터 사용자 한 모 씨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트위터 사용자 한 모 씨

트위터 사용자 한 모(20) 씨는 종종 모텔 예약 문자를 받는다. 번호 전 주인 예약 건이다.

한 씨는 "그 사람이 모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할 때마다 카카오톡과 문자가 넘어온다"라며 "예약 번호, 방 호수, 이름까지 날아온다"라고 말했다. 한 씨는 "큰 불편함은 없다. 다만 아무래도 '모텔' 문자다 보니 이상한 상상이 들 때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 씨는 "번호를 바꾸면 개인정보를 꼭 수정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번호 전 주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3. "당신은 스타벅스 홍보 대사?"

이하 트위터 사용자 뭰신창이
이하 트위터 사용자 뭰신창이

트위터 사용자 뭰신창이는 주기적으로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 결제 승인 문자를 받는다. 번호 전 주인 결제 건이다. 뭰신창이는 "이 분이 스타벅스에 꾸준히 가는 바람에 나도 매달 가게 됐다. 스타벅스 매출에 여러 가지로 기여하고 계신 듯하다"라고 말했다. 전 주인이 스타벅스를 홍보해준 셈이다.

뭰신창이는 "이 분이 체크카드 번호를 갱신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뭰신창이는 한 도서관에서 받은 문자도 추가로 제보했다. 번호 전 주인이 한 일본어 교재를 석 달 넘게 연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뭰신창이는 "(다행히) 책을 반납했는지 도서관 문자는 더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4. "성적 바꿔달라" 공대 교수가 쓰던 번호

대학생 김나연(20) 씨는 공대 교수가 쓰던 번호를 쓴 적이 있다. 김나연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학생들 연락이 왔다고 고백했다.

"맨날 학점 문의 아니면 수업 문의였어요. 전화에 문자에. 성적 정정 기간이 되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이메일을 안 보셔서 개인 문자를 드린다는 학생도 있었어요.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대학생 학사 일정을 꿰뚫게 됐어요"

김나연 씨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20대 남자 대학생이었다. 그는 김나연 씨가 전화를 받자마자 "선생님, 제가 성적을 확인했는데 저는 출석도 잘 했고 과제도 잘 했는데..."라며 항의를 시작했다. 김 씨는 이야기를 듣다가 "전화 잘못하신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사람은 머쓱해진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김 씨는 교수가 전공한 분야에 대해서도 잡다한 정보를 알게 됐다. 김 씨 앞으로 '공대인의 밤' 같은 행사 스케줄 일정이 자주 날아왔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가 상을 당했다는 연락이 온 적도 있다.

김나연 씨는 결국 몇 달도 가지 못해 새 번호를 얻었다. 지금은 그 번호를 누가 쓰는지 모른다고 한다.

5. "열심히 사나 봐요" 수강신청 내용 알게 돼

이정아 씨 제공
이정아 씨 제공

대학생 이정아(20) 씨는 지난달 24일 충남에 있는 한 학습 기관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ㅇㅇㅇ님 발전정비사(기계) 3급과정(수탁) 과정 수강신청이 정상적으로 완료됐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ㅇㅇㅇ'은 이정아 씨 번호 전 주인 이름이다.

이정아 씨는 "전 번호 주인이 열심히 살고 있다. TMI다"라고 말했다.

6. 하모니카 교실 출석하는 할머니

한희서 씨 제공
한희서 씨 제공

직장인 한희서(25) 씨는 2주에 한 번씩 하모니카 수업 단체 문자를 받는다. 경북에 있는 한 마을 하모니카 교실에서 오는 문자다. 한희서 씨 번호를 쓰던 한 할머니가 하모니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한희서 씨는 가끔 할머니 친구들 전화도 받는다. 한희서 씨는 "할머니들이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몇 번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라고 말했다.

한희서 씨는 "할머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친구분들에게 번호도 잘 전달해주셨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7. "당신 사생활 알고 싶지 않아" 유흥 업소 문자

이하 박은주 씨 제공
이하 박은주 씨 제공

대학생 박은주(23) 씨는 번호 전 주인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박은주 씨 번호 전 주인은 30대 남성이다. 그는 유흥 업소 단골로 추정된다.

박은주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강남, 역삼 룸살롱 안내 문자가 온다"라고 한탄했다. 박 씨는 "끔찍하다. 이런 업소에서 내 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라고 덧붙였다.

박은주 씨는 "동네방네 업소 들락날락한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업소에 번호 바꾸었다고 전화라도 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이 남자 사생활을 더 알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8. "안경원 할인 문자" 생일을 알게 됐다

홍혜은 씨 제공
홍혜은 씨 제공

작가 홍혜은(29) 씨는 한 안경원에서 꾸준히 행사 문자를 받는다. 경북 구미시에 있는 안경원에서 번호 전 주인 김 모 씨에게 보내는 문자다. 얼마 전에는 생일맞이 할인 문자까지 왔다. 의도치 않게 생일을 알게 됐다.

홍 씨는 번호 전 주인에게 "7월생 ㅇㅇㅇ 씨,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 달라"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9. "방울토마토 한 팩 2980원" 다른 동네 물가 정보까지

이하 권희지 씨 제공
이하 권희지 씨 제공

직장인 권희지(27) 씨는 충남 공주시 일대 마트 물가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번호 전 주인이 그 동네 마트 멤버십 회원이기 때문이다.

권희지 씨는 "문자 오는 마트가 한두 곳이 아니다"라며 "상당히 알뜰한 분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권 씨는 "우리 동네랑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라고 덧붙였다.

10. "KFC 기프티콘 감사합니다"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트위터 사용자 신케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트위터 사용자 신케

트위터 사용자 신케는 KFC 햄버거 세트 기프티콘을 받은 적 있다. 번호 전 주인 앞으로 온 기프티콘이었다.

신케는 "그가 웹사이트 비밀번호를 변경하다가 얻은 우연히 기프티콘으로 추정된다. 마음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케는 "가끔 대출이나 주식 문자도 온다. 제발 그가 개인 정보를 바꾸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11. "고추 모종 이야기" 마을 이장이 쓰던 번호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김희진 씨 제공
사용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김희진 씨 제공

시민 김희진(23) 씨는 몇 달 전 아침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농사 이야기를 접했다. 번호 전 주인은 시골 마을 이장이었다.

김희진 씨는 "이른 새벽 5시쯤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봉계(지명)보다 울산이나 경주 쪽이 모종이 괜찮다' 같은 문자였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그분이 저수지 공사를 한다는 정보를 접했다. 저수지 공사 잘 마쳤는지 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12. "형님이라고?" 끔찍한 룸살롱 문자...택시 내역까지

이하 트위터 사용자 솔한데
이하 트위터 사용자 솔한데

트위터 사용자 솔한데는 종종 유흥 업소 문자를 받는다. 단체 문자도 아니다. 번호 전 주인 앞으로 오는 개인 문자다. 번호 전 주인을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모시는 직원이 있다. "깨끗한 환경에서 새로운 아가씨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솔한데는 "번호 전 주인 교통카드 내용도 날아온다"라고 말했다. 솔한데는 티머니 번호 전 주인 앞으로 오는 체크카드 승인 문자 내용을 보여줬다. 그가 언제 택시를 탔는지 빠짐없이 나와 있었다. 솔한데는 "30대 남성으로 추정된다"라고 덧붙였다.

솔한데는 "그 사람한테 룸살롱 끊으라고 전해주고 싶다"라고 한탄했다.

13. "내 이름으로 포인트 적립하게 해주세요"

트위터 사용자 댄싱튀김
트위터 사용자 댄싱튀김

트위터 사용자 댄싱튀김은 올여름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그는 전화번호를 바꾼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온갖 알림에 시달렸다. 대부분 소셜커머스나 신용카드 결제 알림이었다.

댄싱튀김은 "물건을 사고 포인트 적립을 하려다 난감했던 적이 많다. 이 분이 아직 번호를 안 바꾸는 바람에 내 번호를 입력해도 이 분 성함으로 적립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댄싱튀김은 "이 분이 나이가 조금 있는 듯하다. 부고 문자가 일주일에 한 번은 오더라. 모친상, 부친상, 동창 부고를 알리는 문자까지 다양했다"라고 밝혔다. 댄싱튀김은 "그런 문자를 받으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댄싱튀김은 "다른 문자는 모르겠지만 이 분이 신용카드랑 쇼핑몰 번호만큼은 바꾸면 좋겠다. 포인트 카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댄싱튀김은 "(이제는) 내 이름으로 포인트 적립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