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추억을 미니어처로” 변화하는 납골당 안치 문화

2018-01-12 16:10

add remove print link

최 씨는 “아버지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물건을 넣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인다”고 말했다.

납골당 안에 실물과 똑같은 유품을 넣는 미니어처 장례문화가 주목 받고 있다.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물건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납골당 안에 넣는 형식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책을 아주 좋아하셨어요. 하늘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책 많이 읽으시라고 납골당 안에 안경이랑 책 미니어처를 같이 넣어드렸습니다"

최형일(49)씨는 평소 책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좁은 납골당 안에 진짜 책과 안경을 넣는 대신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니어처를 넣었다.

최 씨는 "아버지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물건을 넣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인다"고 말했다.

고 신해철 씨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에도 그가 생전 작품 활동을 한 작업실 미니어처가 놓였다.

고 신해철 씨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 안에 그가 생전 작품 활동을 하던 작업실 미니어처가 놓여 있다 / 이하 미니미소 홈페이지
고 신해철 씨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 안에 그가 생전 작품 활동을 하던 작업실 미니어처가 놓여 있다 / 이하 미니미소 홈페이지

신해철 씨 작업실 미니어처를 제작한 '미니미소' 구승연 대표는 “납골당 미니어처가 ‘핫’한 아이템으로 보여질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장례 문화가 진중해야 하기 때문에 ‘납골당 미니어처’가 최근 인기있는 ‘유행 아이템’처럼 다뤄지는 게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구 대표는 “고인한테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제작할 때 하나라도 신경 쓰려고 하고 실제랑 더 비슷하게 해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납골당에 들어가는 미니어처 종류는 다양하다. 고인이 생전 즐겼던 취미 생활부터 좋아하던 음식은 물론 노트북, 태블릿PC 등 첨단 기기까지 모두 만들어 넣을 수 있다. 유족이 직접 원하는 물건이나 상황 등을 주문 제작할 수도 있다. 가격은 몇 천원부터 몇 만원까지 다양하다.

드럼세트도 미니어처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
드럼세트도 미니어처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
납골당 안에 들어갈 좌식 책상세트. 라디오, 담배, 소주 등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물건을 직접 주문 제작할 수 있다
납골당 안에 들어갈 좌식 책상세트. 라디오, 담배, 소주 등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물건을 직접 주문 제작할 수 있다
삼겹살, 햄버거, 피자, 콜라, 초콜릿 등이 미니어처로 제작됐다
삼겹살, 햄버거, 피자, 콜라, 초콜릿 등이 미니어처로 제작됐다

미니어처 전문업체 '쪼만한 마을' 마을지기는 "아무래도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취미 활동들, 골프라거나 낚시 등을 미니어처로 주문 제작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유족은 납골당 안에 들어갈 미니어처 차례상 주문을 하기도 한다 / 이하 '쪼만한 마을' 홈페이지
유족은 납골당 안에 들어갈 미니어처 차례상 주문을 하기도 한다 / 이하 '쪼만한 마을' 홈페이지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삼겹살 한 상 차림'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삼겹살 한 상 차림'

고인이 생전 아끼던 물건을 납골당에 미니어처로 제작해 넣는 문화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한국 미니어처 돌하우스 협회 이상임 협회장은 "8년 전부터 납골당 안에 넣을 미니어처를 찾는 분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찾은 건 3년 전부터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이 주로 납골당 미니어처를 주문 한다"며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설날 되면 떡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어하고, 추석이면 송편을 납골당 안에 넣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명절이나 새해 등 특별한 날, 그날 먹는 음식을 주문 제작하는 경우다.

이 협회장은 "기억에 남는 미니어처가 있는데"라며 "고인이 생전 특정 카페 회원이셨다. 그 카페를 자주 들어가서 활동을 했다고 하시더라. 납골당 안에 미니어처로 만든 컴퓨터를 넣고 그 화면에 카페 대문을 띄웠다"고 말했다.

그는 "노잣돈 하시라고 미니어처로 돈다발을 만들어서 넣어달라는 분도 계셨다"고 덧붙였다.

미니어처로 제작된 만원짜리 돈다발, 짜장면, 캔음료 / 이하 한국 미니어처 돌하우스 협회
미니어처로 제작된 만원짜리 돈다발, 짜장면, 캔음료 / 이하 한국 미니어처 돌하우스 협회
붕어빵이 미니어처로 제작됐다
붕어빵이 미니어처로 제작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9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장례방법을 조사한 결과 '화장 후 자연장'(수목장) 45.3%에 이어 '화장 후 봉안'(납골당, 납골묘 등)이 38.3%로 2위를 차지했다.

납골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곳에서 고인을 추억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유족들은 단순히 사진이나 액자를 넣는 것이 아닌, 고인이 생전 즐기던 취미, 음식 등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납골당 안에 놓아 둠으로써 고인을 추억한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지난해 떠나 보낸 최모(30)씨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넣어드렸다"고 말했다. 최 씨는 "특별한 건 아니고 달걀말이, 쌀밥, 김치찌개 같은 '집밥' 메뉴다. 앞으로 2~3년 마다 다른 메뉴를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넣어드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 씨는 "이렇게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넣어 드리는 게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됐다"고 덧붙였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