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거리' 된 하숙집 골목…누나 “종철이 숨결 느껴져”

2018-01-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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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도화선'으로 불리는 박 열사의 대학시절 하숙집 앞 거리를 '박종철거리'로 명명한 선포식이 열렸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박종철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가 현판제막을 마치고 박 열사 현판을 만지고 있다. / 이하 연합뉴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박종철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가 현판제막을 마치고 박 열사 현판을 만지고 있다. / 이하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하나! 둘! 셋!" "와아!"

13일 오후 2시40분께 서울대 인근 관악구 대학5길 9 골목. 사회자의 구령 소리에 맞춰 참석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노란색 끈을 잡아당기자 안경을 낀 다부진 얼굴의 20대 청년이 동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판에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대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박종철 열사(1965∼1987)'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박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는 모습을 드러낸 동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만히 한 손을 갖다 대고 쓰다듬었다. 박 열사의 서울대 선배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원장은 누나 박씨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좁은 골목길에 가득 모인 정치인, 지역 주민, 박 열사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시민들 약 400명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라는 가사를 담은 이 노래는 원래 전태일 열사의 추모곡이지만 박 열사가 생전에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에서 열린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박종철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에서 열린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박종철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서울 관악구가 '6월항쟁 도화선'으로 불리는 박 열사의 대학시절 하숙집 앞 거리를 '박종철거리'로 명명하고자 개최한 선포식이다.

누나 박씨는 동판 제막식에 앞서 선포식 참석자들 앞에 서서 "종철이가 살던 길이나 한번 보려고 왔는데 그때와 너무 많이 변해 화려해졌다"며 "1987년에 이 길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종철이가 새벽에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종철이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행사를 주최한 관악구의 유종필 구청장은 "박 열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자 자랑스러운 역사의 시작"이라며 "녹두거리는 1987년 당시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라고 박종철거리 선포의 의미를 설명하고, 박 열사의 기념관을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1987년) 6월의 정신이 30년 뒤 지금까지 이어져 촛불혁명을 만들었다"며 "더 높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행사장 앞에서는 김학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사업회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박 열사가 숨진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힘을 보태달라며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에서 열린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종철 거리를 알리는 현판을 제막하고 박수치고 있다.
13일 서울 관악구 대학5길에서 열린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종철 거리를 알리는 현판을 제막하고 박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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