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먼저 보낸 70대 노모 '오열'…'종로 여관 화재' 눈물의 발인

2018-01-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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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모씨(55)의 발인이 24일 유가족의 오열 속에서 치러졌다.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종로 여관 화재' 참사 희생자 고(故) 김모씨(55)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하 뉴스1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종로 여관 화재' 참사 희생자 고(故) 김모씨(55)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하 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그만 울고 술 한 잔 주세요. 향이 빨리 타잖아.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새벽 술에 취한 남성이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며 홧김에 지른 불에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던 '종로 여관 방화'사건에 희생된 고(故) 김모씨(55)의 발인이 24일 유가족의 오열 속에서 치러졌다.

발인을 30분 앞두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 아들의 영정에 향을 올린 모친 A씨(79)는 이내 주저앉아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오열하며 슬픔을 삼켰다. A씨의 뒤에 선 친지와 지인 10여명도 고개를 숙이고 굵은 눈물을 떨궈야 했다.

상주를 맡은 사촌형 김모씨(64)는 오열하는 A씨를 다독이며 "그만 울고 술 한 잔 주세요. 생전에 그렇게 좋아한 술인데. 향이 빨리 타잖아.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라며 위로를 건넸지만 그도 끝내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사촌형 김씨는 고인을 유독 형제애가 강하고 가족에게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경기도 군포시에서 10년 넘게 냉면집을 운영했던 김씨는 한 푼 두 푼 모은 재산을 털어 몇 년 전 서울의 한 주상복합단지에 식당 세 곳을 마련하고 성실히 가계를 꾸려나가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모친은 물론 동생 가족과 큰 아버지에게도 매주 안부 전화를 빼놓지 않을 만큼 정이 많았던 김씨는 사고 전날인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있었던 모임에 참석했다가 이튿날인 20일 강원도 춘천으로 가기 위해 종로5가 여관에 짐을 풀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종로5가 여관 방화범 유모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종로5가 여관 방화범 유모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이날 밤 여관 2층 202호에 여장을 푼 김씨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20일 새벽 3시8분 술에 취한 채 여관을 찾아와 성매매 여성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유모씨(53)가 홧김에 지른 불에 변을 당한 것이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구조된 김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20일 새벽 서울 종로5가의 여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치솟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종로5가의 여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치솟고 있다.

고인의 사촌형 김씨는 "그래도 우리는 함께 슬퍼해 줄 가족이 있으니 행복한 것"이라며 "사고를 당한 사람 중에는 우리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을 텐데, 마음 같아선 찾아가서 향이라도 올리고 싶다"면서 다른 희생자를 걱정했다.

사고로부터 나흘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경찰이나 정부로부터 고인의 피해보상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태다.

김씨는 "피해보상은커녕 경찰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하다"며 "우리처럼 평범한 서민들에게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민변) 같은 시민단체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 주변이 화재와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게 됐다"며 "말 그대로 뭐가 터지면 죽게 되는 불 속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소방취약시설을 꼭 점검하고 이를 경고하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입건된 유씨는 지난 20일 새벽 3시8분쯤 종로 서울장여관에 불을 질러 1층에서 묶고 있던 세 모녀 박모씨(34·여)와 14살 11살인 이모 자매를 비롯해 투숙객 6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크게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1일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수감 중이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여관 방화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화재감식을 벌이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여관 방화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화재감식을 벌이고 있다.

특히 희생자 중 3명이 딸의 방학을 맞아 서울로 여행을 왔던 세 모녀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남 장흥군에 거주하던 어머니 박씨는 방학을 맞은 두 딸을 데리고 전국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이모씨는 업무를 이유로 장흥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집을 떠나 전국 각지를 여행하던 세 모녀는 여행 닷새째인 19일 서울 종로구에 도착, 하루 숙박료 1만5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서울장여관에 묵었다가 참변을 변을 당했다.

이들의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지만 가족이 신원확인을 할 수 없을 만큼 시신이 훼손된 탓에 추가적인 인적사항 검사가 진행 중이다. 세 모녀의 장례는 DNA 검사 결과가 나온 뒤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여관 방화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화재감식을 벌이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여관 방화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화재감식을 벌이고 있다.

한편 유씨는 술에 취한 채 여관을 찾아가 '성매매'를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와 여관 복도에 뿌린 뒤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유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관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요구했으나 거절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어 자수한 배경에 대해서는 "펑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도망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112 신고를 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유씨는 불을 지르기 전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며 소란을 피우다가 한 차례 경찰의 제재를 받고도 분을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던 사실도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사건 발생 1시간 전이었던 오전 2시7분 유씨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자 여관주인 김모씨(71·여)가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당시 유씨는 술을 마셨지만 만취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출동한 관할 파출소 경찰관에게 "성매매 및 업무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만 받은 뒤 훈방 조치됐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았던 유씨는 곧장 택시를 타고 인근 주유소로 가 휘발유를 샀고, 오전 3시8분쯤 여관 1층 복도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불은 1층과 2층 복도로 번지면서 6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고 박모씨(58) 등 4명이 전신에 화상을 입는 참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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