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러갔다가 도슨트에 치인다” 자코메티전 김찬용 도슨트 인터뷰

2018-01-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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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자코메티 유작인 '로타르 Ⅲ'을 꼽았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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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전시를 가면 사람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한 남자가 있다.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관람객 사이에서는 웃음소리도 이따금 터져나온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저렇게 재밌어 할까.' 호기심에 끌려 듣다 보면 어느 샌가 그를 따라 전시를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난 19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찾았다. 이날도 어김없이 전시 해설을 맡은 김찬용 도슨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짓, 몸짓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들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열 살 남짓한 한 어린 아이는 안내가 끝나고서도 도슨트를 붙잡고 끊임없이 질문을 늘어놓았다.

박혜연 기자
박혜연 기자

'도슨트계의 아이돌' 김찬용 도슨트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의 SNS에는 우연히 전시를 찾았다가 해설을 듣고 감동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댓글이 많다. 어떤 관람객은 "좋은 도슨트가 얼마나 다른 전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지 알게 해준다"고 후기를 남겼다. 전시 주관사 코바나컨텐츠 측은 "김찬용 도슨트는 팬들이 많다. 일부러 쫓아 들으시는 분도 있다"고 귀뜸했다.

도슨트(Docent)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전시해설가를 말한다. 김찬용 도슨트는 "미술계의 설명충"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제게 주어진 역할은 감상자들한테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줘서 전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거나 다시 오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코메티가 엄청나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국내에는 덜 익숙하다. 그냥 오신 분들 중에 낯설어 하시다가 도슨트 들어보시고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됐다, 덕분에 전시를 다시 오게 됐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럴 때 제가 어떤 역할을 한 것 같은 느낌에 뿌듯하다."

자코메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조각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지만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람객들에게 자코메티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어린 친구들은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 후기도 '꿈에 나올 것 같아요' 써 놓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이걸 무섭게 볼 필요는 없다는 걸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성인 분들의 경우 특히 마지막 두 작품('걸어가는 사람'과 '로타르 Ⅲ')이 각각 평가액 3000억 원, 3800억 원으로 소개되니까 '저게 왜 도대체 저렇게 비싼 겁니까?' 주로 이런 질문을 하셔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코바나컨텐츠 제공

도슨트에게는 수려한 말솜씨도 중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정확하고 친절하게 답할 수 있는 순발력도 필요할 법 하다. 문득 그의 센스가 궁금해졌다. 즉석에서 '자코메티'로 4행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김찬용 도슨트는 "이런 질문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자신이 없다"며 당황스러워 했다. 하지만 운을 띄우자 마치 평소 생각한 것처럼 곧바로 술술 읊는 모습에 오히려 기자가 깜짝 놀랐다.

자 : 자고 일어나서 눈을 떠 보니

코 : 코 앞에 자코메티의 작품이 있었다

메 : 메(매)일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티 : 티없이 맑은 그 시선에 오늘도 감동하는 듯

김찬용 도슨트는 "도슨트 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시 오픈 전에 아무도 없을 때 들어가서 작품들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같은 서민이 저런 작품들을 내 갤러리에 혼자 빌린 것처럼 볼 수 있다는 건 되게 행복한 일이다. 예전에 마크 로스코전 때도 그런 시간을 좋아해서 늘 한 시간씩 일찍 출근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자코메티 유작인 '로타르 Ⅲ'을 꼽았다. 그가 아침에 출근할 때면 잠깐씩이나마 독대하는 작품이다.

로타르 Ⅲ (1965~1966) / 이하 전성규 기자
로타르 Ⅲ (1965~1966) / 이하 전성규 기자

"기록들을 확인하다 보니 제가 느낀 자코메티는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은 생명력을 담아내기 위해 도전해나갔던 사람이다. 마지막 영혼이 담긴 작품이 본인에게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실제로 자코메티는 그 마지막 작품을 제작하다가 ‘더 만들거야’라고 얘기해놓고 병원 갔다가 못 돌아오고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저는 그 마지막 작품이 제일 애잔하다."

'로타르 Ⅲ' 외에도 자코메티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것은 '걸어가는 사람 Ⅰ'이다. 크기가 188cm에 달하는 이 대작을 위해 전시 공간 내부에 독방까지 마련돼 있을 정도다.

김찬용 도슨트는 "이 상황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두 대작을 동시에 빌려서 걸어놓은 상황과 맞먹는다. 이 연약한 석고 원본 두 작품을 동시에 본다는 경험 자체는 엄청난 일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작품 두 개를 보는 것만으로 이 전시는 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걸어가는 사람 Ⅰ (1960)
걸어가는 사람 Ⅰ (1960)

자코메티의 예술적 업적 외에도, 김찬용 도슨트는 전시 해설을 할 때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빼놓지 않는다. 자코메티에게 부러웠던 점을 묻자 그는 장난스럽게 "진지하게 갈까요, 재미있게 갈까요?"라고 되물었다.

"자코메티가 언변의 개념을 떠나 정말 박식하고 철학적으로 깊어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다 남녀불문하고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하더라. 공부하다 보면 늘 지식이나 철학적으로 스스로가 너무 얇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자코메티는 어떻게 저렇게 깊어질 수 있었을까 부럽다. 저도 그렇게 똑똑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진지한 답변이 될 것 같다.

"가볍게 말하면 어떻게 저렇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까 (부럽다). 제가 지금 고독에 휘말리고 있어서. (웃음) 저 노인네는 계속 연애할 때마다 상대방 나이가 두 배씩 줄어든다. 열 살에서 스무 살 차이 났다가 나중에는 거의 마흔 살 차이가 난다. 이런 걸 보면 '저 노인네는 참 남자로서 매력이 어마어마한가 보다' 생각이 든다."

서 있는 아네트 (1954)
서 있는 아네트 (1954)

만약 자코메티가 친구라면 어떨까. 그는 "되게 좋을 것 같다"며 "자코메티가 돈을 엄청 많이 벌었지만 자기한테 과투자 하지 않고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퍼줬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제 생존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런 친구가 한 명 있으면 대화도 즐겁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지지해주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햇수로 10년, 전업 도슨트로 나선 지는 7~8년 정도 됐지만 김찬용 도슨트는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다. 도슨트 일이 "행복하고 좋다"고 말하면서도 도슨트가 대우받는 현실을 이야기할 땐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후배들이나 누가 물어볼 때도 어두운 면을 먼저 얘기한다. 여기는 전혀 직업화가 안 돼 있고 생계 유지에 있어서는 정말 불규칙하고 힘든 일이다. 대부분 아직 자원봉사를 쓰거나 하루 만 원, 만 오천 원 이런 수준이다.

"전업 도슨트 선언하고 3~4년차 됐을 때까지도 당시 주 7일로 일을 했는데 한 달에 버는 돈은 6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을 30대 초까지 버텨야 했다. 지금은 물론 최저임금보단 많이 받고 특히 자코메티전은 도슨트의 중요성을 생각해주셔서 더 많이 배려받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그런 배려가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고 있다."

그래서 김찬용 도슨트는 오늘도 도슨트 후기를 수집하고, 더 좋은 전시 안내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전달자이자 한 명의 감상자로서 그가 관람객에게 마지막 전시 작품 '걸어가는 사람'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이 작품만큼은 제가 모시고 들어가서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 것보다 그냥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시간을 걸어왔고 남아 있는 나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 굴곡진 조각 속에서 굴곡졌던 그의 인생과 남아 있는 나의 시간에 대해 분명 고민하시게 될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왕 오신 김에 이 공간 안에서 최대한 시간을 투자하시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돌아보고 고민해주길 개인적으로 부탁드리며, 이제 전시 안내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시 안내를 맡은 미술전시 해설가, 김찬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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