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엄마 마음으로 혈당측정기 구해다줬을 뿐인데...” 눈물 쏟은 당뇨병 환아 엄마

2018-02-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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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억울함을 넘어 너무 화가 나요”

"아이는 이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 아닐까. 매일 잠자리에 들 때면 아이와 이대로 일어나지 않고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 김미영 씨 글 중

김미영 씨는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9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 1형 당뇨는 면역기능 이상으로 스스로 인슐린 분비를 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혈당을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김미영 씨 아들이 직접 혈당을 체크하고 주사를 놓는 장면.  / 김미영 씨 제공
김미영 씨 아들이 직접 혈당을 체크하고 주사를 놓는 장면. / 김미영 씨 제공

만 3살 무렵 당뇨 진단을 받은 아이는 4살 때부터 혼자 혈당을 체크하고 5살부터는 제 스스로 인슐린 주사 놓는 법을 배웠다. 혹여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짐이 될까, 김 씨가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아이를 가르쳤다.

밤에는 잠도 못 자고 두 시간마다 아이를 깨워가며 혈당을 확인했다. 채혈침으로 자꾸 손가락을 찌르다보니 아이 손끝이 헐고 노인 손보다 더 거칠어졌다. 그런 생활이 수 년간 이어졌다. 엄마도, 아이도 모두 피폐해져만 갔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할까. 김 씨는 해외 커뮤니티까지 가입하며 방법을 찾은 끝에 유럽에서 연속으로 혈당 흐름을 볼 수 있는 의료기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한국으로 들여왔다. 몸에 부착된 센서가 거의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해주니 혈당 관리가 더 쉬워졌다. 신세계였다. 헐어 있던 아이 손끝에 새살이 돋고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 "남편은 오지랖이라고 말렸지만..."

주변에 같은 소아당뇨병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보였다. 김 씨 사례를 보고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며 연속혈당측정기 구매를 도와달라고 절실하게 부탁해왔다.

김 씨는 "주변에 있는 1형 당뇨 아이들 부모들은 자신이 무능해서 아이에게 이런 기기도 못 구해준다고 자책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저희 아이를 마냥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당장 주변에 있는 아이들만 도와주려고 했다. 사용자가 늘어나자 입소문이 나면서 김 씨에게 점점 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온라인 주문이 불가능하고 영어로 메일을 써야 한다는 점이 장벽이었다. 공동구매처인 체코에서도 일대일 주문은 힘들다고 꺼려했다. 김 씨가 발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김 씨가 도운 1형 당뇨 환우회 가족들은 100여 가구에 달한다.

TV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연속혈당측정기. 약 5분 간격으로 혈당이 기록되고 스마트 기기를 연동해 원격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 이하 KBS1 '생로병사의 비밀'
TV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연속혈당측정기. 약 5분 간격으로 혈당이 기록되고 스마트 기기를 연동해 원격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 이하 KBS1 '생로병사의 비밀'

"의료기기 불법 판매라고요?"

그러던 김 씨가 최근 뜻밖의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법 위반'이라며 김 씨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별 일 아니겠지 싶었다. 지난해 3월 관세청으로부터 부가세 문제를 지적받은 이후 세관에 모두 개별적으로 정식 수입신고를 하고 세금도 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약처에서 김 씨는 일순간 처벌 대상이 됐다. 식약처는 김 씨가 다른 환자들을 위해 혈당측정기 구매대행한 일을 무허가 의료기기 수입 판매(의료기기법 26조 1항 위반)로 보았고, 측정기 사용법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에게 알린 일을 광고(의료기기법 24조 위반)라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김 씨를 조사해달라는 민원이 여러 건 접수돼 조사를 시작한 일"이라며 "곧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식약처에 3차 출석하고 나온 김 씨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김 씨는 "(식약처에서) 댓가를 바라든 안 바라든, 물품 대금을 받고 판매처에 금액을 전달한 과정이 판매라고 했다"며 "저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고 사업이나 장사는 준비한 게 전혀 없다"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환우회 회원 중에도 변호사, 세무사, 변리사, 의사 등이 있었지만 이 부분이 판매라고 생각하는 분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그저 같은 처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받는다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에서는 법 위반 여부만 조사할 뿐이다. 사익을 편취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판단해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검찰이나 법원이 할 몫"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김 씨는 식약처가 법조문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식약처에서 사용허가를 받으려면 개인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자가 사용이 아니라 임상실험을 위해 마련된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사용 후기나 사용법을 남길 수 있다는 식약처 주장은 의료기기법 규정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 "이젠 억울함을 넘어 너무 화가 나요"

김 씨는 "식약처가 환우회에서 그렇게 계속 (합법적 수입을) 요청할 때는 모른 척 하다가 이제 와서 법 위반을 따지고 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몇 년 전부터 식약처에 연속혈당측정기 구매를 요청했지만 식약처에서는 '그런 업체가 한국에 들어와 출시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어떻게 하냐. 필요한 사람들이 신청해서 한국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해라'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나몰라라' 하는 식약처 대신 환우회가 직접 나서서 최근 8개월 동안 지난한 노력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제조하는 업체 애보트(Abbott)와 덱스콤(Dexcom) 사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정식 수입을 요청했고, 지난해 본사 담당자와 여러 차례 한국에서 미팅도 가졌다.

환우회에서도 각자 재능을 모아 국내 당뇨환자 수요를 조사하고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했다. 환자 가족들의 절실함을 알리는 동영상도 제작했다. 그 결과 덱스콤 사에서 올해 안에 한국 출시를 결정했다. 현재 국내 인허가업체와 계약까지 마쳐 식약처 인허가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유튜브, 김미영 / 1형 당뇨 환우회에서 제작한 영상
김 씨가 해외 의료기기 업체에 보낸 영문 이메일 / 이하 김미영 씨 제공
김 씨가 해외 의료기기 업체에 보낸 영문 이메일 / 이하 김미영 씨 제공

김 씨는 "만약 이걸로 수익을 남길 의도였다면 굳이 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업체에 정식 출시를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목표는 국내에서 당뇨환자들이 이 기기를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2월 27일 국회 토론회에도 출석해 수입절차 간소화와 보험 지원 필요성을 주창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13일 청와대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기기법과 제반 제도들을 개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미영이 이모를 도와주세요" 김 씨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

김 씨 사정을 알게 된 환우회 회원들과 당뇨 관련 의료진 일부가 선처를 요청하기 위해 탄원서를 모았다. 고사리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부터 국내 전문가가 쓴 것까지 300장이 넘는다.

1형 당뇨 환우회 아이들이 쓴 탄원서
1형 당뇨 환우회 아이들이 쓴 탄원서
1형 당뇨병 자녀를 둔 부모 탄원서
1형 당뇨병 자녀를 둔 부모 탄원서

1형 당뇨병인 12살 아이를 키우는 오유나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오 씨는 위키트리와 전화 통화에서 "김미영 씨는 우리 가족의 은인"이라며 "그 분이 없었으면 국내 어느 누구도 그 기기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김 씨가 구매대행을 하며 소정의 수수료를 환아 부모들에게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오 씨는 "김 씨 친정어머니가 우체국 택배로 (부모들에게) 보낸다. 택배비와 포장 박스 비용, 그리고 추위에 고생하시는 거 생각해서 우리들이 수고비로 각자 1만 원씩 더 드린 거다. 1년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돈 벌자고 누가 그 고생을 하겠나"라고 해명했다.

김 씨 친정어머니가 수고비로 받은 돈은 총 22만 원이다. 집으로 직접 찾아와 물건을 받아간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오 씨는 "오히려 국가적으로 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상황이다. 범법자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너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전공인 IT기술을 이용해 영문으로 된 앱을 한글로 번역해 공유했고, 외국사이트를 뒤져가며 최신 자료를 모았다. 오 씨는 “새벽에 급하게 질문을 해도 (김 씨가) 일일이 다 받아줬다”며 고마워했다.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재현 교수도 탄원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저는 김미영 씨가 자신의 아들이 ‘덱스콤 G4’를 사용하며 혈당 조절에 큰 도움을 받는 것을 보며 다른 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덱스콤 G4’가 선진국에서 의사 및 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알려드리고 외국에서 직접 구입하여 사용 경험이 있는 김미영 씨를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김 씨의 사연은 온라인과 SNS에도 확산돼 선처와 의료기기법 완화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 시작된 이 청원은 14일 기준 현재 4만 5595명에게 동의를 얻었다.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