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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 송봉규 / 이하 전성규 기자 


"지금까지 주어진 길을 갔다면, 이젠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 길을 찾아서 가려는 것이 목표가 됐다."

마라토너 송봉규(48) 씨가 국내 최초로 열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응원하기 위해 청주에서부터 서울까지 135km를 뛰었다. 

지난 8일 오후 1시 45분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도착한 송봉규 씨를 만났다. 송봉규 씨는 매년 국내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알리기 위해 이같은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다. 

 


그가 이렇게 전시 응원 달리기를 한 건 이번이 서른 한 번째다. 지난해 1월에도 같은 곳에서 열린 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전시도 응원했다.

한 마라토너가 충청북도 청주에서 서울까지 `르 코르뷔지에 전시` 포스터를 들고 달렸다.


송봉규 씨는 지난달 27일 국립 청주박물관에서 출발했다. 청주박물관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건축가 고 김수근(1931~1986) 선생이 설계한 기념비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디자인으로 과거와 현대를 매개한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봉규 씨의 <자코메티전 응원 달리기> 일정


1월 27일 국립 청주박물관~병천우체국 28km

1월 29일 병천우체국~천안터미널 18km

1월 31일 천안터미널~평택터미널 23km

2월 1일 평택터미널~오산터미널 19km

2월 4일 오산터미널~수원한일타운 20km

2월 5일 수원~과천시민회관 17km

2월 8일 과천시민회관~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0km


송봉규 씨가 자코메티전 응원 프로젝트를 위해 달린 코스 / 네이버지도


총 7일 동안 그가 뛴 거리는 135km다. 7일로 나누어 뛴 건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옛날에는 하루에 풀코스(42.195km)를 넘겨서 뛰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저 달리기 자체를 즐기고 싶다"며 "마지막날은 작품을 보는 데 지장이 없도록 체력 소모를 조절해 나에게 딱 맞는 거리만 뛴다"고 설명했다.

이번 겨울은 유독 혹독했다. 최근 며칠 간 날이 조금씩 풀렸지만 지난주와 이번주 초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한파 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칼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약 스무 킬로미터씩 뛰는 게 힘들지는 않았을까.

"한파에 춥긴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노천탕에 들어갔다는 기분으로 뛰었다. 바람을 직접 맞는 얼굴만 차갑지 몸에서는 땀이 나니까. 제가 노천탕을 좋아하는데 그게 딱 그 기분이더라. 보통 사람들은 파도가 오면 움츠러들지 않나. 서퍼는 오히려 파도가 오길 기다린다. 용기가 중요하다."

밝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추위 때문에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얼굴이 너무 얼어서 눈물이 막 났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당시 2~3km를 걸어다니며 출퇴근을 하셨는데 아주 추웠던 어느 겨울날,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 때 '아,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추운 상황에서 걸어오셨던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마음이 조금 짠했다."

송봉규 씨가 자코메티 특별전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23년 전 승효상 건축가 특강에서 들었던 자코메티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당시 유명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1906~1989)와 절친한 사이였다. 자코메티는 사무엘 베케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를 꾸몄다.

 이하 전성규 기자

 


"승효상 선생님이 해주신 자코메티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넓은 무대에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만 딱 세워놨는데 그게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하더라. 그 후로 자코메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자코메티의 대표 걸작인 '걸어가는 사람'을 원본 석고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라톤 선수가 본 '걸어가는 사람'은 어떨까. 

 


그는 "학창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미래가 불안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난 언제 저렇게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게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큰 물음표였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최선의 삶을 살고 나서 걸으면 그 걸음걸이는 여유로운 걸음걸이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다 완주하고 나서는 바로 쉬는 게 아니라 천천히 걷는다. 그 걸음걸이가 그렇게 좋다. 올해가 풀코스 입문한지 11년차인데, 올해부터는 풀코스를 뛰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

송봉규 씨는 전시 응원 프로젝트처럼 달리기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오는 3.1절에는 청주 용두사지 당간지주와 같이 지역마다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거점으로 코스를 뛴다. 이른바 '독립 기념' 나무 프로젝트다. 8월 15일 광복절에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를 중심으로, 빛을 테마로 한 달리기를 할 예정이다.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것'. 송봉규 씨는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자코메티처럼 자기다운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작가 제임스 로드가 쓴 '작업실의 자코메티' 책을 보면 그런 문구가 나온다. '자코메티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생전 처음으로 보는 것처럼 본다는 것을 의미하고, 만약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도 자코메티에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자기만 볼 수 있는 영혼을 찾아 조각했던 자코메티처럼 청소년들도 자기만의 길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키워드 자코메티,송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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