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 배워보자”... 중국·일본 당황하게 만든 문 대통령 '큰 그림'

2018-03-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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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지만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 / 이하 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 / 이하 청와대 페이스북

한국과 북한, 미국 주도로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자 한반도 주변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외교 무대에서 중국과 일본 역할이 축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재팬 패싱(Japan Passing)', '차이나 패싱(China Passing)'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북한 갔다 '빈손'으로 돌아온 중국

중국은 과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서 의장국을 맡는 등 한반도 외교무대에서 '중재자'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되는 과정에서 중국 역할은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북 특사인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6일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특사단을 평양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과 한국 특사단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통 큰' 합의까지 이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북한이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 대신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 외교무대에 나온 점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는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 소식통은 지난 7일 연합뉴스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차이나 패싱은 없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지난해 시진핑 주석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위원장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대북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6자 회담 방식을 원하는 중국으로선 자국이 빠진 작금의 상황은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미국에 버림받았다"... 일본의 걱정

일본 역시 남북, 북미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재팬 패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북한 위협을 '국난'으로 규정 짓고 국제사회 대북 압박과 제재에 동참해왔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 한국과 함께 '한미일 공조'라는 틀 안에서 이 문제를 대응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뉴스1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뉴스1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10일 "북미가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강경파로 북한에 대한 압력 노선을 주도해온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불안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이 '재팬 패싱'을 우려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정치 문제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 위협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북풍(北風) 물이'를 한 끝에 압승했다. 이를 빌미로 방위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재팬 패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된 지난 9일,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위해 북한이 구체적 행동을 취할 때까지 최대한 압력을 가해 나간다는 미일의 입장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급기야 다음달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곤혹스러운 일본 정부 입장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1일 3.1절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 이하 청와대 페이스북
지난 1일 3.1절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 이하 청와대 페이스북

◈ 한반도 문제... 문 대통령이 그린 '큰 그림'

한국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지만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 외교력에 기대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방향타를 우리 손으로 결정하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고 나섰다. 한반도 운전자론 핵심은 북미 대화 성사 등을 위한 '중재 외교'다. 이는 한반도 문제 우리 주도로 풀어나겠다는 문 대통령의 '큰 그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다양한 형태의 양자·다자 외교를 추진하면서 '북미 대화' 성사에 공을 들여왔다.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실질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 앞에 놓인 외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모두 '강경론자'였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핵·미사일 시험을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고강도 압박'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 외교적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북제재와 압박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며,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는 외교적·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문재인 대통령 '중재 외교'는 지난달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탄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기간 김정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국내에서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방문을 요청한 김여정에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김영철에게는 한반도 비핵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 평창에서 평양으로, 그리고 워싱턴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지난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 특사로 한 대북특사단으로 북한 평양으로 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며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은 이 자리에서 다음달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도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특사단을 지난 8일 미국 워싱턴으로 보냈다. 정의용 실장 등 특사단은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나 북미 대화에 응할 것을 설득했고 결국 5월 전까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9일 파이낸셜뉴스에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트럼프-김정은 과감한 결단 (+딱 떨어진 이해관계)

이번 남북, 북미 대화 성사는 문 대통령 중재 외교 노력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극적인 외교 성과가 나온 데는 두 지도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눈길을 끌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0일 서울신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군사 공격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압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과를 얻는다면 중간선거에서 큰 이점이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같은 매체에 "김정은 위원장이 바라는 건, 체제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군사 위협 해제와 경제개발이 필요하다"며 "경제개발은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안 되고, 여기에 다리를 놔줄 한국 정부도 보수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모든 조건이 맞았던 상황"이라고 했다.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