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상화는 세밀하고 사실적…75%에 피부병 흔적 표현”

2018-03-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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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는 흔히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표현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이론이 구현된 그림으로 평가된다.

이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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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초상화는 흔히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표현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이론이 구현된 그림으로 평가된다.

과거에 그려진 초상화는 대상이 대개 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미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인물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피부과 전문의이자 대학교수로 일하다 명지대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낙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신간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에서 조선 초상화가 실제로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저자는 조선 초상화 519점을 방동식 연세대 교수, 이은소 아주대 교수와 함께 분석해 노인성 흑색점, 천연두 흉터, 흑색 황달 등 20가지 피부병 흔적을 찾아냈다.

그는 보존 상태가 나빠 진단이 불가능한 회화를 제외하고 358점을 다시 조사해 전체의 74.9%인 268점에서 피부병변을 확인했다. 즉 그림 속 주인공의 피부가 깨끗한 초상화는 4점 중 1점에 불과했다.

예컨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어진은 현재 1872년에 모사한 작품이 남아 있는데, 용안의 오른쪽 눈썹 위에 작은 혹이 남아 있다.

저자는 "임금과 감독관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태조 어진의 진본이 14세기 말에 그려졌을 것을 고려하면 이때부터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라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제작 원칙이 확립됐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코가 부풀어 오른 홍진(1541∼1616) 초상, 왼쪽 이마에 흉터가 있는 이시방(1594∼1660) 초상, 피부가 까맣고 천연두 자국이 선명한 오명항(1673∼1728) 초상,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반증을 앓은 송창명(1689∼1769) 초상 등 다양한 그림을 소개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초상화에 피부병 흔적이 남아 있는 예가 드물었다.

중국의 명대 초상화에는 피부병 흔적이 더러 표현됐으나, 천연두 흉터와 흑색 황달 같은 심한 피부병은 제한적으로 그려졌다. 또 일본에서는 도식적인 초상화가 발달해 피부가 하얗게 채색된 작품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조선 초상화의 세밀함을 파악하기 위해 국보로 지정된 1710년작 윤두서(1668∼1715) 자화상과 1500년에 제작된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자화상을 비교했다.

그는 "입 주변 세 곳에서 2㎠당 털의 개수를 세어 윤두서 자화상은 25∼28개, 뒤러 자화상은 12∼17개라는 결과를 얻었다"라며 조선 초상화의 세밀함을 강조한다.

이어 "이렇게 정확한 초상화의 바탕에는 선비정신이 있다"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담백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주장한다.

눌와. 22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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