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명동 일대 화장품 매장 찾은 국내 소비자들 “대화가 힘들어요”

2018-03-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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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설명은 듣지 못할 것 같아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건조한 피부가 걱정이던 대학생 최선영(23)씨는 서울 이화여대 앞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을 찾았다. 최 씨는 촉촉한 메이크업을 도와주는 메이크업 베이스와 수분 크림을 추천 받기 위해 직원에게 문의했다.

“제가 피부가 건조해서 화장이 잘 뜨는데 이 제품 쓰면 괜찮을까요? 촉촉한가요?”

최 씨 질문을 들은 직원은 웃으며 “네… 그 제품 촉촉하고 좋아요”라고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최 씨는 “저는 속당김이 심한데 이 제품이 피부에 도움이 될까요?”라고 재차 물었다. 직원은 “음… 네네 좋아요. 건조한 피부에 좋은 제품이에요”라고 말했다.

최 씨는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설명은 듣지 못할 것 같아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그는 “모든 화장품에는 제품 설명서가 있지만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면서 직원과 상담도 하고 그러다보면 제가 원하는 제품을 더 잘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직원이 제가 하는 말을 메아리처럼 맞받아치는 수준이라 아쉬웠어요”라고 말했다.

최 씨가 들른 이 매장은 중국 교포가 손님을 응대한다. 한국 관광을 온 중국인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서다. 교포라고 해서 모두가 한국말을 잘 하는 건 아니다. 유창한 중국어에 비해 한국말은 아직 서투른 교포들이 많다. 특히 강한 악센트 때문에 불친절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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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상권으로 한국어가 서툰 직원이 있으니, 따뜻한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대, 홍대, 명동 일대 화장품 매장에서는 이같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어가 서툰 직원은 손님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중국인 교포 우모(23)씨는 홍대 앞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다 한국인 손님과 있었던 일을 전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한지 6개월째라고 밝힌 우 씨는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 아무래도 서투른 부분이 많다”며 “매장에 한국어를 잘 하는 매니저님이 계셨는데 마침 그때 다른 손님을 응대 중이셨다”고 말했다.

우 씨는 “손님이 시트팩 종류에 대해 물어 봐서 대답을 했는데 제가 한국말 발음이 서툴러서 손님이 잘 못 알아들으신 것 같았다”며 “손님이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 계산해달라’며 짜증을 냈다”고 전했다.그는 “아마 제 말투가 거슬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말이 원활하지 않은 직원이 손님을 응대하는 건 왜일까. 이대·홍대·명동 일대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지난해 2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대 정의당 의원, 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발표한 ‘사드 배치로 인한 상인 체감 경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인들이 이곳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걷고 있는 외국인들 /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걷고 있는 외국인들 / 연합뉴스

이 설문은 서울 홍대·명동·동대문·이대 등 주요 상권의 상인 463명을 상대로 실시됐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7월 사드배치 결정 이후 전년대비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는 응답이 41.3%를 기록했다. 최소 20% 이상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도 70%가 넘었다. 홍대·이대·명동 일대 상권에서 중국인 관광객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명동, 홍대 등은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높은 상권"이라며 "중국인 고객이 많아서 중국어 잘하는 중국인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보통 한국말도 같이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많은데 서투른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안내판을 부착해놓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직원만 있는 게 아니라 잘하는 직원도 상주하고 있다"며 "단, 직원들의 언어 실력에는 편차가 있기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고객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매장에 '양해 부탁드린다'는 안내판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고지를 드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부분들을 어떤 고객들은 따뜻한 광경이라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 많아지는 추세니 그것에 대해 배타적인 시각을 갖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거니까"라고 덧붙였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