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글 올리기만 해도 처벌받나” 미투 열풍 속 난처한 익명플랫폼

2018-03-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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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대나무숲 등은 앞으로 미투 관련 제보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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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미투 제보자들이 바란 것이 그렇게 큰 것인가요?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쳐있다고, 익명의 힘을 빌려 용기 내 올린 글을 그저 올려주기만을 바란 것일 텐데…."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피해자의 익명이 보장된 공간에서 폭발력을 발휘한다. 대학 내 성폭행 사건을 폭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이 그 중심에 있다.

대학에서 발생한 교수-제자, 선배-후배, 동기 간 성폭행 사건은 대부분 제보 글을 선별하는 관리자가 있는 '○○대 대나무숲'이나, '○○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와 같은 페이지에 올라와 공론화된다.

이러한 익명페이지에 글을 게시할지 말지는 '대숲지기'로 불리는 운영진에 달렸다. 온도 차는 있지만 '미투' 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글은 대부분 가해자의 신원이 가려진 채 올라온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양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미투 제보 글에 등장하는 당사자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밝혀온 데 따라 운영진이 해당 글을 삭제하자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한양대 대나무숲은 앞으로 미투 제보를 받지 않기로 했다.

운영진은 "사실이 아닌 제보를 올렸을 때는 그 게시글을 대숲지기들이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몇몇 제보는 허위제보가 아니었는데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고소를 당하고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일부 학생들은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공간을 아예 빼앗아가려고 한다거나 유독 '미투' 제보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운영진의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한 구독자는 "논란을 피하려고 대나무숲의 본질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릴 게 아니라 가해자가 어떤 지점에서 허위사실 유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제보를 올리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구독자는 "어차피 대부분의 신상정보는 필터링 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사회적 논란이나 일으키고 싶어서 자신의 아픔을 지어낼까 의문스럽다"며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용기를 내서 글을 올렸을지 헤아려달라"고 댓글을 달았다.

전문가들은 익명의 제보 글을 전달받아 올리는 것만으로 게시판 관리자를 명예훼손죄 또는 방조죄로 처벌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함께 범행을 저지르면 공범,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게 도와주면 방조범인데, 미투 제보 글을 대신 올린 대나무숲 관리자는 공범, 방조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조현욱 회장은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애초에 알 수 없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에 대신 게시해줬을 뿐인데 그걸로 처벌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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