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의 동생으로 사는 법”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동생 디에고

2018-04-05 12:20

add remove print link

디에고는 거의 한 평생 형 알베르토의 헌신적인 조수이자 모델 역할을 했다.

(왼쪽부터) 알베르토 자코메티, 디에고 자코메티, 알베르토 아내 아네트 자코메티 / 핀터레스트 =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왼쪽부터) 알베르토 자코메티, 디에고 자코메티, 알베르토 아내 아네트 자코메티 / 핀터레스트 =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에게 바로 한 살 아래 동생 디에고(Diego)는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거의 한 평생 형 알베르토의 헌신적인 조수이자 모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좁디 좁은 8평짜리 작업실에서 디에고는 알베르토와 함께 생활하며 그의 작업을 도왔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그의 형제들. 알베르토가 장남, 디에고가 차남이다. 그 뒤로 동생 오틸리에와 브루노가 있다.  / 핀터레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그의 형제들. 알베르토가 장남, 디에고가 차남이다. 그 뒤로 동생 오틸리에와 브루노가 있다. / 핀터레스트

디에고는 조각상의 철골을 만들고, 작업 중인 석고가 마르지 않도록 젖은 천으로 덮고, 청동 주물을 뜨는 등 온갖 잡다한 일을 했다. 가끔은 작품을 사러 오는 큐레이터나 화상을 상대하고 작품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알베르토가 스위스 제네바로 몸을 피신해 있을 때에도 파리 작업실에 남아 작품들을 끝까지 지킨 것도 바로 디에고였다.

또 디에고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 매우 중요한 모델이기도 했다. 디에고는 말 그대로 수천, 수만 번 알베르토를 위해 모델을 섰다.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워 모델에게 오랜 시간 부동자세를 요구하는 알베르토 성격상 디에고가 얼마나 고역을 겪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 중에는 디에고를 모델로 한 작품이 가장 많다.

이하 전성규 기자
이하 전성규 기자

왜소한데다 팔만 길쭉해 외모는 초라했던 알베르토와 달리, 디에고는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알려졌다. 알베르토는 물질적인 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반면 디에고는 젊은 시절 꽤 방탕하게 놀아 부모와 형의 걱정거리가 됐다. 알베르토가 디에고를 조수로 삼은 것은 방황하는 동생을 붙잡아 두고 가까이에서 지켜보고자 했던 의도였다. 물론 디에고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수이기도 했다.

디에고는 손재주가 좋아 그 자신도 뛰어난 조각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만든 조각상이나 가구를 보면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들과 닮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형태를 최소한으로만 남겨 깡마르고 거친 인간상을 주로 만들었는데, 시그니처나 다름 없는 이런 형상은 디에고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디에고 자코메티의 작품 / 이하 아트넷 홈페이지
디에고 자코메티의 작품 / 이하 아트넷 홈페이지

디에고는 동물 애호가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그의 조각상은 대부분 동물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형 알베르토가 주로 인간을 모델로 그리고 조각한 것과 상반되는 지점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한 쪽에는 디에고의 작품 '고양이 급사장(CHAT MAÎTRE D'HÔTEL·1967)' 청동상이 전시돼 있다.

이하 전성규 기자
이하 전성규 기자

이 전시 작품 위에는 디에고가 여우를 키웠던 일화가 나와 있다. 알베르토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디에고는 파리에 남아 있던 시절, 디에고는 우연히 이웃을 방문했다가 새끼 암여우가 묶여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을 때 우연히 잡아서 키우기 시작한 여우였다.

디에고는 이웃에게, 수용소에 갇혀 그토록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떻게 어두운 아파트 안에 동물을 사슬로 묶어둘 수 있냐고 화를 내며 따졌다. 무안해진 이웃은 디에고에게 여우를 데려다 키우라고 주었다.

디에고는 여우에게 '미스 로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집안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었다. 동물과 교감 능력이 탁월했던 디에고는 미스 로즈에게 강한 애착을 보였고 미스 로즈도 디에고 말을 잘 따르고 장난을 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알베르토가 파리 작업실에 돌아왔다. 디에고는 알베르토에게 열심히 미스 로즈에 대해 설명했지만 알베르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알베르토가 디에고의 당부를 잊고 거리로 통하는 문을 열어둔 틈에 미스 로즈는 작업실을 나가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매우 상심했던 디에고는 형이 일부러 문을 열어놓았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 일로 형제는 한동안 불편한 감정으로 지내기도 했다.

디에고와 고양이 / 페이스북 Cats Museum of San Francisco
디에고와 고양이 / 페이스북 Cats Museum of San Francisco

디에고는 알베르토가 죽고 난 후 그가 마지막으로 손 보고 떠난 유작 '로타르 Ⅲ'에서 청동 주물을 떠 형 무덤 옆에 헌사했다. 자신의 형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 한 번도 의심치 않았던 동생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전성규 기자
전성규 기자

두 형제 이야기와 디에고의 얼굴이 그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들은 오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자코메티 특별전에서 볼 수 있다.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