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부터 비어 걸까지” 일본 도쿄돔에서 야구를 봤다 (직관 후기)

2018-04-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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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사뭇 다른, 일본 야구장 풍경을 직접 느껴봤다.

이하 오세림 기자
이하 오세림 기자

지난 11일부터 휴가차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비행기 표를 구매한 후 일정을 짜려는데 문득 단 한 번도 일본에서 야구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3년 차 야구 팬이면서 일본을 10번 넘게 다닐 동안 도쿄돔에서 야구 한 번 본 적이 없다니. '야빠'로서 자존심에 불이 붙었다.

일본 야구와 한국 야구가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얼마나, 어떻게 다른 지는 몰랐다. 직접 체험해봐야 직성이 풀리겠다 싶었다.

◈유니폼 입고 음식 사고...한국과 비슷한 입장 전 풍경

마침 12일 도쿄돔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경기가 있었다.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구장인 도쿄돔에서 일본 야구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곧바로 표를 예매했다.

도쿄돔은 1988년 개장한 일본 최초 돔 구장이다. 명실상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홈 경기장으로 쓰고있다. 약 4만 6000석 규모로 콘서트 등을 하면 5만 명 이상도 수용 가능한 크기다.

경기 시작을 앞둔 4시 30분쯤 도쿄돔 근처 코라쿠엔(後樂園) 역에 내렸다. '빅 에그(Big egg)'라는 별명답게 둥그런 모양 돔이 곧바로 눈에 띄었다.

야구장 근처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삼삼오오 모여 야구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근처에 위치한 마트에서 먹을 음식을 챙기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도쿄돔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5시 30분쯤 다시 야구장으로 향했다. 경기 직전이 되니 평일 저녁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관중들은 당일 표를 판매하는 부스에 줄을 서있기도 했고, 음식점이나 기념품 숍에서 경기를 위한 막간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성별도 연령대도 다양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부터 회사원,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 외국인들까지 다채로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20대부터 30대까지 젊은이들 비율이 많이 늘어난 한국에 비해 비교적 연령대는 높아 보였다. 특히 연세 지긋하신 여성분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 여성 팬 대다수가 50대 이하 젊은 층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먹거리 지도까지 '완벽'...처음 온 관객도 즐길 수 있는 도쿄돔

경기 시작 직전 출입구를 찾아 입장했다. 출입구가 많아 들어가는데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티켓 확인을 받은 후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한 뭉치 종이를 나눠줬다. 야구장을 찾은 이들을 위한 각종 안내서가 들어있었다. 홈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 일정이나 선수 목록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어디에서 무얼 파는지 위치와 가격 등이 빼곡히 적힌 먹거리 지도도 있었다. 도쿄돔에 처음 방문한 필자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였다.

선수별, 상황별 응원법이 모두 적혀있는 안내지도 있었다.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한 팬이라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비용은 들겠지만 한 번 야구장에 온 이를 열성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닐 것 같다.

열성 팬을 늘리기 위한 전략은 또 있었다.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는데 이상한 기계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팬클럽 회원들이 야구장에 직접 방문할 때마다 포인트를 주는 기계였다.

직원은 일정 포인트를 모으면 기념품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22번 게이트에 가면 유료나 무료 회원 가입을 할 수 있어요. 시간 되시면 생각해 보세요. 마침 바로 여기 밑이 22번 게이트네요."

지나치게 적극적인 태도에 당황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직원은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해 보시라"며 영업을 했다.

◈프로듀스 도시락부터 도쿄돔 모나카까지...'먹방 천국' 도쿄돔

야구장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거리를 사기로 했다. 앞서 받은 전단지를 보다 보니 도시락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나 도시락을 먹는 나라답게 야구장에도 도시락이 있었다.

도쿄돔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은 '프로듀스 도시락'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었다. 선수들이 직접 프로듀스 한 도시락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선수 인기와 도시락 인기가 비례할까? 직원에게 어떤 도시락이 제일 잘 나가는지 물었다.

"이게 새 상품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고민하던 직원은 "역시 가라아게(일본식 닭튀김)가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직원은 "오늘 함박 스테이크도 꽤 나갔다"고 덧붙였다. 결국 선수보다는 메뉴가 중요했다.

가장 인기가 많다는 가라아게 도시락을 구매해 자리에 앉았다. 주장인 사카모토 하야토 선수가 프로듀스했다는 제품이다. 닭튀김 종류가 다양해서 맛이 괜찮았다.

도시락을 다 먹고 경기 후반, 디저트를 찾아 나섰다. 원래 선수들이 추천했다는 파르페를 먹고 싶었지만 찾지 못해 도쿄돔에서만 판다는 도쿄돔 모나카를 골랐다. 가격은 300엔. 평범한 아이스크림 모나카 맛이었다.

이외에도 도쿄돔에는 김치 떡, 스시, 롤 등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했다. 이날 속이 좋지 않아 더 많이 먹지 못한 게 아쉬웠다.

◈역시 야구장 하면 응원전이지

필자는 경기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포수 뒤 자리를 원래 좋아한다. 도쿄돔에서도 포수 뒤 높은 자리를 골랐다. 가격은 2400엔(한화 약 2만 4000원). 확실히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정말 크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중앙 펜스가 122m, 좌우 펜스가 100m 규모이니 국내 유일 돔 구장인 고척돔(중앙 펜스 122m, 좌우펜스 99m)과 경기장 사이즈는 비슷했지만 좌석 수나 전체적인 규모가 압도적이기는 했다. '도쿄돔'이라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다.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응원석이 외야에 있었다. 주로 내야 중앙에 응원석이 위치한 한국과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3루 쪽 한 칸을 제외하고는 전부 홈 팀 응원석이었다. 자이언츠 팬들은 주황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주황색 응원도구로 열심히 응원전을 펼쳤다. 주로 노래 중심인 우리나라 응원가와 다르게 브라스밴드를 활용한 구호가 중심인 힘 있는 응원이었다.

치어리더가 보이지 않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일본 치어리더들은 3회가 끝난 후 클리닝 타임에 그라운드에 등장해 관객석을 향해 춤을 췄다. 상대팀 응원석 앞에는 나오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또 있었다. 나눠준 안내문을 읽어보니 응원석에서는 다른 팀의 응원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있었다. 한국에서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홈 팀 응원석에 앉는다면 눈총은 받겠지만,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홈런이 나오자 응원 슬로건을 돌리는 팬들
홈런이 나오자 응원 슬로건을 돌리는 팬들

주로 사용하는 응원도구도 달랐다. 우리나라 야구장에서는 긴 풍선을 응원도구로 주로 사용하는데, 일본은 주로 천으로 된 슬로건을 활용했다. 홈런을 쳤을 때는 슬로건을 홈런 사인하는 심판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왜 예쁜 날 두고 가시나~"

유튜브, WIKITREE - 위키트리

아무 생각 없이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선미의 지난해 히트곡 '가시나'였다. 이날 2번 타자였던 자이언츠 2루수 요시카와 나오키가 등장곡으로 '가시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가시나'가 끝이 아니었다. 5번 타자였던 1루수 오카모토 카즈마가 등장하자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가 흘러나왔다. 응원단은 '내가 제일 잘 나가'에 맞춰 오카모토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순간 한국 야구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실 오카모토 선수는 트와이스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밝힌 적이 있는 한류 팬이다. K팝 인기를 야구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나라 노래를 듣고 있자니 괜한 자부심도 들었다.

◈'비어 걸'만 있는 게 아니다...땀 뻘뻘 흘리며 음료수 배달하는 여성들

시간을 살짝 돌려 오후 4시 30분쯤, 경기장 옆을 지나던 필자는 특별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사히, 기린 등 맥주 상표가 적힌 형광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독특한 의상을 입은 야구 팬들인가 했는데, 이윽고 그들이 일본 야구장에만 존재하는 '비어 걸(ビ-ルガ-ル)'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야구장에도 생맥주 기계를 들고다니며 맥주를 파는 '비어 보이'들이 있지만, 일본은 여성들만 생맥주를 판다.

막상 야구장 안에서 보니, 그들은 맥주만 팔지 않았다. 하이볼이나 일본주를 팔기도 했고 콜라나 아이스크림도 팔았다.

비어 걸은 모두 회사 이름이 쓰인 모자와 의상을 입고 돌아다녔다. 귀여운 머리띠를 하기도 하고 꽃 모양 핀을 꽂는 등 개성을 줬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목에 걸고 있는 수건.

무거운 생맥주 기계나 음료수를 맨몸으로 이고지고 다니니 땀이 흐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다니다가 잠깐 멈춰 서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너무나도 힘들어 보였지만 힘든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어 걸들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얼추 8~10구역 정도를 맡아 경기 내내 본인이 맡은 구역을 돌았다. 그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관중석을 오르내리며 "맥주 어떠신가요", "레몬 사와 있어요"라며 홍보를 했다. 음료를 사는 관객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미안해서라도 뭔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왠지 맥주가 끌리지 않아 콜라를 마셨다. 가격은 한 잔에 260엔(한화 약 2600원). 참고로 생맥주는 보통 800엔(한화 약 8000원) 정도였다. 비어 걸, 아니 콜라 걸은 생글생글 웃으며 콜라를 전해줬다.

콜라를 전해준 '콜라 걸'에게 손님들이 말을 거는 경우가 많냐 물었다. 콜라 걸은 "말도 많이 걸고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같은 비어 걸에게 몇 번이고 맥주를 사며 계속해서 말을 걸고 사진을 찍는 관객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100% 남성이었다.

8회 말이 되자 비어 걸들은 "곧 끝난다"며 마지막 홍보를 했다. 9회 초가 되자 대부분 비어걸들이 출구로 향했다.

경기장 바깥 복도로 따라나가 보자 마지막으로 맥주를 사며 말을 거는 남성들이 많았다. 비어 걸들은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손님을 대했다. 얼굴을 아는 손님에게는 “내일은 안 오시냐”고 묻기도 했다. 비어 걸과 만나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야구 팬이든, 팬이 아니든 한번 쯤은 경험해볼 만한 야구장

이날 자이언츠는 6대 4로 패했다. 짜릿한 홈 승리를 즐길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도쿄돔에서 야구를 봤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혹시 일본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야구장에 들러 보면 어떨까.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즐거움이 많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야구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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