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희를 찾습니다” 실종 7000일째, 애달픈 아버지의 눈물

2018-04-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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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어버린 지 19년하고도 2개월 3일째 되는 그날도 송길용(66)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현수막을 교체하기 위해 탑차를 몰고 이동하는  송길용(66) 씨 / 이하 박송이 기자
현수막을 교체하기 위해 탑차를 몰고 이동하는 송길용(66) 씨 / 이하 박송이 기자

19년하고도 2개월 3일이 흘렀다. 딸을 잃어버린 지 정확히 7000일이 되는 지난 15일 새벽. 아비는 여느 때처럼 흰색 탑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왔다.

송길용(66) 씨는 오전 5시쯤 서울 종로 3가 인근에 차를 세웠다. 차에는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 십여 개와 새로 뽑은 전단 2박스가 실려있었다. 송 씨는 종로3가 전철역 길거리 난간에 걸려있던 현수막을 새 현수막으로 갈아 끼웠다. 너무 자주 했던 일이라, 설치하는 손놀림이 능숙했다.

종로3가 앞에 걸려있는 딸을 찾는 현수막. 새 현수막으로 교체중이다.
종로3가 앞에 걸려있는 딸을 찾는 현수막. 새 현수막으로 교체중이다.
종로 5가에 있는 현수막 교체 중인 송길용 씨.
종로 5가에 있는 현수막 교체 중인 송길용 씨.

지난 1999년 2월 13일, 송길용 씨 딸 송혜희(실종 당시 17세) 양이 사라졌다. 당시 고2 학생이었던 송혜희 양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 있는 송 양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거리가 멀었다.

밤 10시 10분쯤 버스에서 내린 송혜희 양은 그 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술 취한 남성이 송혜희 양과 함께 내렸다는 버스 기사 증언이 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송길용 씨는 딸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딸을 찾는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전단을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7000일이 됐다.

◈ 7000일 동안 딸 찾아 지구 18바퀴 돈 아빠

청량리에 있는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송길용 씨
청량리에 있는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송길용 씨

송길용 씨 하루는 길었다. 송 씨는 새벽 자택이 있는 평택시에서 1시간가량 탑차를 몰고 서울까지 올라온다. 서초 IC를 시작으로 강남,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까지 현수막이 붙어 있는 도로를 빠짐없이 돈다.

서울에는 약 80개 현수막이 붙어있다고 했다. 그는 큰길과 골목을 오가며 현수막이 있는 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저 현수막은 아직 깨끗하네", "이건 내가 묶은 매듭이 아닌데 누가 현수막을 다시 달아줬다"며 꼼꼼하게 체크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19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이 일을 반복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시내 곳곳 운전자들 눈길이 많이 갈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송혜희 양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6차선 도로 옆 나무 위, 지하철 입구 위 기둥 등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곳들이었다.

송길용 씨는 그곳을 거침없이 오르고 매달렸다. 5년 전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두 번이나 허리 수술을 했다. 뇌경색이 겹쳤다. 그는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조했다.

뇌경색과 허리 수술 후유증으로 많은 약을 복용 중이다.
뇌경색과 허리 수술 후유증으로 많은 약을 복용 중이다.

◈ "사기꾼에게 당하기만 하고..."

송혜희 양이 귀가하지 않자, 가족은 다음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단순 가출로 치부하고 있다가, 3일 뒤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송혜희 양과 함께 내린 술 취한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찾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이라 당시에는 CCTV도 없었다.

경찰이 마을을 수색했지만, 수사가 진전되지 않았다. 결국 2014년 2월 공소시효도 끝났다. 송길용 씨는 "경찰한테 매주 이야기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혜희가 버스 타기 전 마지막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 남자친구다. 그 남자친구까지 찾아서 경찰에게 알려줬지만 제대로 수사해주지 않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현수막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다. 딸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았다. 송 씨는 "'딸 송혜희를 데리고 있으니 돈을 가져오라'는 사람 말에 속에 몇 번이나 사기당해 수 천 만 원을 잃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세는 기울었다. 송길용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한 달에 30만 원씩 정부로부터 보조받았다. 그는 "한 달에 10만 원으로 생활비를 하고 나머지 20만 원으로 전단지와 현수막을 제작한다. 돈이 부족하면 급한 대로 막일을 하거나 때때로 들어오는 후원금이 숨통을 틔워줬다"고 했다.

함께 딸을 찾던 아내는 2006년 전단을 품에 안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송길용 씨는 "자식을 잃어버리고 편하게 산다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가 죽어야 혜희 찾는 것을 놓을 수 있다"라고 호소했다.

◈ 수사 인력 부족으로 골든타임 놓쳐...'실종 수사 전담팀' 꾸려져야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실종자 찾는 전단지.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실종자 찾는 전단지.

송길용 씨처럼 가족을 잃어버린 채 수년째 찾지 못하는 장기 실종아동수는 매년 늘고 있다. 장기 실종아동은 신고 접수한 지 48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수사 기법 발달로 대부분 실종사건은 접수 후 바로 해결된다. 그러나 초기 대응이 중요한 실종아동 사건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찾지 못하는 장기 실종아동이 된다.

보건복지부 실종아동전문기관에 의하면 2017년까지 18세 미만 장기 실종아동이 518명이며, 10년 이상 실종 상태 아동은 386명이나 된다.

장기 실종자를 오랜 세월 끝에 찾아낸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실종 16년 만에 위암 말기 노모를 찾은 아들 사연이 화제였다. 모자의 극적인 상봉은 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 수사 전담팀이 이뤄낸 성과다.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11월 부산 지역 일선 경찰서에 실종전담팀 또는 실종 전담 요원을 배치한 이후 실종자 및 가출인 발견 건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478건에 불과했던 전년도에 비해 41% 증가한 674건으로 발견 건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회의적인 시선도 많다. 인력부족과 대형사건이 터질 때만 일시적으로 신설된 후 다시 통폐합되는 문제에 시달린다는 이유다.

지난 2015년 2월부터 실종사건 수사는 여성청소년수사팀이 맡고 있다. 성폭력·학교폭력을 담당하는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실종자 수색까지 맡으면서 업무가 과중되고 실종업무는 후순위로 밀린다. 특히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읍, 면단위 소도시에서 실종 수사 전담팀을 꾸릴 수 없는 것도 한계다.

◈ 실종, 예방이 최선이다

지문 등록 서비스 / 경찰청 '안전Dream' 앱
지문 등록 서비스 / 경찰청 '안전Dream' 앱

장기 실종아동 사건이 늘면서 사전에 실종 예방 중요성이 대두됐다. 보건복지부 실종아동전문기관은 4~7세 미취학 아동에게 실종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실종 위험에서 스스로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경찰청은 지문, 사진 사전 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보호자 동의하에 18세 미만 아동, 장애인, 치매 환자 사진과 지문을 등록하는 제도로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됐다.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를 방문하거나 스마트폰 앱 '안전Dream' 에서 사진과 지문 등록이 가능하다.

지문, 사진 등록제의 등록률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이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현재 지문, 사진 사전 등록제는 보호자가 신청하는 경우에만 등록할 수 있어서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난 1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서울 마포구갑)은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아동의 연령이 4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까지 지문 등 정보를 등록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노 의원은 "아동의 지문 등 정보를 의무적으로 사전등록 하도록 하여 실종사건 발생 시 신속한 신원확인 및 보호자 인계가 가능하게 하여 실종아동을 조기 발견하고 장기실종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송혜희 씨를 찾는 전단지.
송혜희 씨를 찾는 전단지.

송길용 씨는 실종자들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가 실종자 가족은 등한시한다. 실종자 사건도 세월호처럼 주목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자들이 국가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면 내가 질기고 모질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포기하면 영원히 묻혀버릴 테니까"

주먹 한 움큼 가득한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그는 다시 운전대를 붙잡았다.

home 박송이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