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필리핀 도우미, 강남에선 흔한 일" 불법이지만 인기 많은 '외국인 가사 도우미'.

2018-05-1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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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는 필리핀 도우미는 인기가 많다.

이하 연합뉴스
이하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강애란 기자 = "요새 필리핀 사람도 구하기 힘들어요. 영어가 되니까 애들 있는 집에서 많이 찾아요. 에티오피아나 이집트 사람은 어떠세요? 요새 '있는 집'에서 심부름꾼으로 많이 써요. 비자요? C-3(단기방문비자)죠. 숨어서 하는 거예요."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강남을 비롯해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는 외국인 도우미 불법 고용이 만연한 것으로 파악됐다.

◇ 대부분 불법…"인기 많은 필리핀 출신은 구인난"

14일 연합뉴스가 복수의 가사도우미(베이비시터 포함) 소개업체에 도우미 소개를 문의한 결과, 여러 업체가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고 일부 업체는 아프리카 국적의 도우미까지 있다고 밝혔다.

한 소개업체는 통화에서 "필리핀 도우미는 영어가 되니까 아이들 있는 집에서 많이 찾아서 지금은 (남은 사람이) 없다"면서 "에티오피아, 이집트, 몽골 사람은 구할 수 있다. 연령대는 30대 초반∼50대 초반"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프리카 출신 도우미들은) 원래 농장에 많이 간다. (집에서는) 심부름시키기에는 화폐 가치 같은 걸 잘 몰라서 어렵지만, 쌀 씻고 채소 썰고 청소하는 건 잘한다. 월급은 180만원선"이라며 추천했다.

비자 문제는 없느냐고 묻자 "C-3(단기방문비자)다. 숨어서 하는 것"이라며 "들어온 지는 오래된 사람들이다. 돈 벌려고 버티고 있는 거다. 한국 정보도 많이 안다. 말은 잘 못 하니까 집안 얘기 몰랐으면 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다른 소개업체에서도 "필리핀 출신으로 찾아봐 줄 수 있다. 영어는 기본으로 다 잘하고 대학 나온 사람도 있다"면서 "비자는 여행 비자로 그냥 불법으로 하는 거다. 신분 확인은 친척 전화번호 갖고 계시면 된다"고 말했다.

가사도우미 구인구직 사이트 화면 캡처
가사도우미 구인구직 사이트 화면 캡처

가사도우미 구인구직 사이트에도 '강남구 신사동, 착실한 필리핀 여성 구합니다', '인천 연수구, 필리핀 입주형 가사도우미 구함' 등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찾는 글이 여럿 있었다.

한 가사도우미·베이비시터 구직 사이트는 아예 인기검색어란에 '동남아'를 따로 클릭할 수 있도록 분류하고 있었다. 클릭하자 일자리를 구하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의 자기소개서를 볼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F-4 비자)나 결혼이민자(F-6)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로 제한된다. 현재 약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가사도우미 중에 중국 동포가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아프리카 출신 가사도우미들은 대다수가 관광비자나 단기 비자로 들어와 체류하면서 불법으로 일터에 나간다.

불법임에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알음알음 찾는 이유는 아이가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일단 임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에 따르면 현재 입주형 가사도우미가 우리나라 사람일 경우에는 월 250만원, 중국동포인 경우에는 월 200만원 안팎을 줘야 한다.

그러나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월급이 150만∼18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낮다. 소개업체를 거치지 않을 경우 보통 매달 월급의 10%인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므로 월급이 더 낮아진다.

실제로 가사도우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글을 보면 "가족 같은 분을 찾는다"면서도 '주 6∼7일 오전 8시∼오후 7시 근무'에 월급은 '100만원∼150만원' 수준을 주겠다는 광고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소위 '있는 집' 담장 속에 감춰진 채 불법으로 일하고 있어서 실제 몇 명이나 되는지 통계도 없다. 저임금 등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성폭력·인권침해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 고개 드는 합법화 요구…"'갑질' 우려, 실태 파악이 먼저"

일각에서는 외국인 도우미를 합법화 해 가사노동의 길을 터주면 부부 맞벌이가 용이해져, 여성 경력단절이 해결되고 출산율도 높아질 거라는 주장이 나온다.

홍콩에서는 저출산 해소 등을 위해 이미 수년 전 필리핀·인도네시아 국적 가사도우미를 합법화해 한화로 월 50만∼60만원이면 도우미를 채용할 수 있다. 일본도 지난해 일부 지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시범적으로 합법화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사도우미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면서 "수요는 늘어나는데 불법으로 막혀 있으면 가격이 음지에서 형성돼 수요자들의 부담만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은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여성 인권 현실을 고려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공동대표는 "남녀 임금 격차가 별로 나지 않아야 가사도우미를 많이 쓰게 되는데, 우리나라 현실상 여성이 일해도 가사소득이 별로 늘어나지 않아서 일부 상류층만 도우미를 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가사·돌봄노동 영역에 여성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갑질'과 성폭력이 우려되므로, 당국이 기초적인 실태 파악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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