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썸남·썸녀는 어디에..." 청춘남녀가 요새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이유

2018-05-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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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결혼까지 할 줄 정말 몰랐어요.”

*권택경, 김보라, 조영훈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결혼까지 할 줄 정말 몰랐어요.”

결혼을 앞둔 이 모 씨와 박 모 씨는 연애 1주년을 맞아 강원도 강릉에 있는 A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다. 이곳은 그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1년 전 해당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최한 '짝파티'에서 두 사람 인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원래 게스트하우스는 민박의 일종으로 다른 방문객과 침실이나 거실 등 생활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방문객끼리 교류할 기회도 많아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나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원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어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러한 특성을 극대화해 '숙박'이 아니라 '만남과 사귐'에 초점을 맞춘 게스트하우스들도 많이 생겨났다. 숙박 여부와 상관 없이, 게스트하우스가 파티나 모임을 주최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티형 게스트하우스’ 주 이용층은 연애 상대를 찾는 젊은 남녀들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단체 미팅' 같은 형태로 파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 사례에서 이씨와 박씨가 만났던 A 게스트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전국에 12군데 지점을 둔 A 게스트하우스는 ‘짝파티’라는 콘셉트의 대규모 단체미팅 행사를 기획해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파티에서 남녀에게 나눠주는 목걸이 / 이하 솔게스트하우스 제공
파티에서 남녀에게 나눠주는 목걸이 / 이하 솔게스트하우스 제공

지난 2016년에 시작된 '짝파티'에는 매번 거의 200명에 달하는 남녀가 참석한다. 참석자 전원은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메고 파티장으로 입장한다. 소지품 선택을 통해 파트너를 정한 후 바비큐 파티와 전문 진행자에 의한 레크레이션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는다.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 방송에서 본 듯한 프로그램이나 입술로 종이를 옮기기 등 다소 수위가 높은 게임이 진행되기도 한다. 행사가 종료된 후에는 별도 공간으로 이동하여 펍 파티도 즐길 수도 있다.

A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는 "원래는 게스트하우스 이용객들끼리 인연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했는데 이용객들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연인으로 발전하거나 결혼하신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파티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A 게스트하우스는 아예 숙박 없이 '파티'만 여는 형태의 게스트하우스 지점도 지난 1월 서울 명동에 열었다.

제주도와 같은 주요 관광지에도 파티형 게스트하우스가 대거 영업 중이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김 모 씨는 “제주도는 야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나 유흥업소가 적다 보니 저녁 10시만 돼도 여행객들이 갈 곳이 별로 없다”며 “여행객들은 일찍 잠들기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파티형 게스트하우스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희대 호텔관광학과 변정우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주로 온라인으로 교류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호기심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며 “특정한 목적이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거기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사드 문제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며 숙박업이 어려워지기도 했는데, 파티 같은 문화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단체 미팅' 같은 행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인기가 한풀 꺾인 측면도 있다. 이에 대응해 업체 측에서는 행사 규모를 줄이거나 새로운 콘셉트도 시도하고 있다.

A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는 “여성의 경우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타인과 짝을 맺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이용객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최근에는 커플 매칭보다는 명함을 교환하는 네트워킹 파티 콘셉트의 행사를 많이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제주도에서 발생한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 했다. 제주도 지역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들은 사건이 알려진 3월 이후 여성 이용객들 발길이 뜸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달 초 서귀포시 남원읍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 이 모 씨는 “안전 문제에서 아무래도 여성분들이 불안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8년 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김 모 씨도 "파티형 게스트하우스 경우에는 파티 참여자들 성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비가 맞지 않으면 이용객들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다. 결국 전체 이용객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객들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게스트하우스 측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김 씨는 “CCTV를 추가로 가동하고,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도미토리 룸의 경우 도어락을 설치해 출입을 제한한다거나 출입시간에 제한을 두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씨 역시 “개업할 때부터 안전 문제에 유의해 방마다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남성 이용객과 여성 이용객의 동선을 100% 분리했다”고 말했다.

home 권택경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