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어 미투 선언했으나..." 2차 피해 시달리는 사람들

2018-05-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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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사실이 소문나면서 A씨는 오히려 동료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직장 내 성추행과 2차 피해를 겪어보니 '미투 운동'이 홀로 싸우는 저 같은 여성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임을 절감했습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여직원 A씨는 "지난 1월 29일 오후 4시께 업무를 보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남성 직원 B씨가 근무교대 시간에 다가와 '손이 시리다'고 말하며 뒤에서 양손을 들이 밀고 몸을 만졌다는 것이다.

A씨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자신에게 B씨가 "'예뻐서 보듬어 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사건 직후 A씨는 성추행당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속병을 앓았다.

수습 기간인 데다 용역회사 직원 신분으로 괜히 문제를 일으켰다간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더구나 가해자는 무기계약직 전환의 평가 권한이 있는 관리직 직원이다.

A씨는 성추행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뛰고 불안한 증상을 보였지만, 한 직장 안에서 B씨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또 B씨가 부당한 업무지시를 반복하는 등 상급자의 위압으로 성추행 사실을 숨기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 방지 교육'을 받은 A씨는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깨닫고 지난 4일 뒤늦게 경찰에 B씨를 고발했다.

미투ㆍ#MeToo(PG)
미투ㆍ#MeToo(PG)

경찰 고발 이후에는 2차 피해가 A씨를 괴롭혔다.

고발사실이 소문나면서 A씨는 오히려 동료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식의 동료직원들의 비난 섞인 뒷이야기를 전해 들은 A씨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결국 고발 후 지금까지 불면증과 불안장애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전당 측의 안이한 대응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당 측은 고발이 이뤄지고 며칠이 지나서야 찾아와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내놓으며 지원방안을 제시했지만, A씨를 도울 실질적 방도는 없었다.

전당 측이 B씨의 근무장소를 바꿔주긴 했지만 A씨는 작은 직장 안에서 수시로 B씨와 마주쳤고, B씨가 하는 업무지시도 SNS를 통해 받았다.

관리부서 담당자에게 고통을 호소하기도 해봤지만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하니, 현재로써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성추행 혐의로 입건된 B씨를 지난 28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거친 경찰은 A씨가 성추행당했다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봤다.

A씨는 "직장 내 권위적인 수직 구조 안에서는 여성 혼자 성폭력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며 "미투 운동을 계기로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홀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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