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있는 수상한 구멍...내가 실리콘을 들고 다니는 이유”

2018-07-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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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카메라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책.

최근 공중 화장실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잇따르면서 대학생 정희연(23)씨는 공중 화장실 이용할 때마다 불안하다. 정 씨는 몰카가 있을까봐 바닥에 떨어진 휴지도 한 번 건드려 본다고 했다.

정 씨 걱정이 괜한 건 아니다. 최근 나사 형태 카메라, 경첩 형태 카메라, 초소형 카메라 등 감쪽 같은 몰래 카메라가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 씨는 최근 '휴대용 실리콘'을 들고 다니게 됐다고 했다.

“‘화장실 몰카 범죄’에 대한 뉴스를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어떻게 막지?’라는 말이 나왔어요. 친구 한 명이 휴대용 실리콘을 들고 다니며 막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길로 함께 있던 4명이 다이소에 들러 휴대용 실리콘을 구입했죠”

정 씨와 친구들이 구입한 '실리콘'은 화장실 내부에 뚫린 수상한(?) 구멍을 막는데 사용된다. 화장실 문 경첩 부분 홈이나 나사, 문에 나 있는 구멍 등에 갖다 대고 꾹 짜면 된다. 바로 구멍이 메워진다.

실리콘 뿐 아니라 벽면, 마루, 가구의 보수용 충전제로 사용되는 '홈 빠데'도 화장실에 뚫린 미심쩍은 구멍들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정 씨는 “실리콘을 들고 다니면서 몰카 구멍을 막는다니. 몰카 범죄가 대중화하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사회 현상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휴대용 실리콘'이나 '홈 빠데'는 여성들 사이에서 실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2호선 홍대입구역 여자 화장실 내부에는 '홈 빠데' 자국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여자 화장실 내부. 구멍을 메운 '홈 빠데' 자국을 볼 수 있다  / 이하 박민정 기자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여자 화장실 내부. 구멍을 메운 '홈 빠데' 자국을 볼 수 있다 / 이하 박민정 기자

취업 준비생 최현아(25)씨는 실리콘 대신 '휴지'를 이용해 몰래 카메라로 의심되는 것들을 가린다고 했다. 최 씨는 “모든 구멍이 몰래 카메라와 연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라며 “구멍 안에 몰래 카메라를 넣는 방식보다 휴지걸이나 방향제 등 화장실 내부에 붙어 있는 시설물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돼 있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내부 시설물에 붙어 있는 나사나 홈 부분을 휴지로 가린다"라며 "가끔 이 과정이 번거로워 ‘차라리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을 갈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여자 화장실 내부. 구멍을 메운 '홈 빠데' 자국과 스티커를 볼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여자 화장실 내부. 구멍을 메운 '홈 빠데' 자국과 스티커를 볼 수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형 성폭력 범죄는 2011년 1523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6년 3.6%에서 2015년 24.9%로 급증했다.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범죄(몰카)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해당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몰래 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가벼운 실정이다. 몰래 카메라를 촬영한 피의자의 70% 정도가 100만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3일 대전 동구 용전동 한 극장 여자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조사 결과 카이스트 석사 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인 것으로 밝혀진 이 남성은 여장을 하고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에는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몰래 카메라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는 지난달 15일 ‘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 근절 특별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특별 재원 50억원을 들여 몰래 카메라 탐지기를 구입하는 등 공중 화장실 5만여곳을 상시 점검한다.

광주 남부경찰과 남구청은 몰래 카메라 방지 스티커 '불법 카메라 마그미'를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인 스티커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이 몰래 카메라가 의심이 되는 구멍을 발견하면 붙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경찰은 공중 화장실 25곳에 이 스티커를 비치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불법 카메라 마그미'  스티커 / 광주 남부경찰서
'불법 카메라 마그미' 스티커 / 광주 남부경찰서

최현아 씨 남자친구 김정현(27)씨는 “여성들이 화장실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씁쓸하다”라며 “저는 개인적으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몰래 카메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고 말했다.

김 씨는 “몰래 카메라 범죄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여자친구나 어머니, 여동생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정부가 발표한 ‘특별 대책’이 잘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